[Review] 리얼 뱅크시 -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익명으로 No Where, 언제나 우리의 곁에 Now Here
글 입력 2024.07.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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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예술을 정의하겠지만, 나는 예술에서 미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의미가 아무리 좋더라도 미학적이지 않으면, 예술로서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유로 뱅크시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는 화풍과는 거리가 멀어서, 가는 길에서조차 관람을 망설였었다. 물론 괜한 걱정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리얼 뱅크시』전은 내가 굳게 믿고 있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흔들어 놓은 전시였다.

 

현대예술은 관객에게 충격을 줌으로써, 깨달음과 반성의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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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양 쌓는 것을 좋아하지만 뉴스, 정치, 역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교양과 시사 모두 정보 습득의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존재한다. 교양은 깊이 있는 사색과 공부를 요구하지만, 시사는 단순하게 세상 추세를 인지하는 정도의 가벼운 느낌이어서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나 요번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시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다짐하게 되었다. 나는 자기주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치관을 남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기본적인 세상 흐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상해 보면, 뉴스에 가장 관심 많았던 시기 역시 내가 백신패스를 강력하게 반대하던 시기였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위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은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백신에 관한 여러 연구 자료와 함께 세계 동향을 열심히 분석했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지인한테 뉴스를 좀 보라는 잔소리를 듣는 편이다. 그림 몇 점 감상한 것뿐인데, 들리지 않던 잔소리가 바로 와닿았다. 그만큼 뱅크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하고 효과적이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잔소리가 아닌, 예술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

 

뱅크시의 작품들은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정치에 밝았더라면 더욱 재밌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워낙 정치 비판 수위가 높아서 신변 위협을 받는 건 아닐지 괜스레 걱정되기도 했다.

 

뱅크시는 익명의 예술가이며, ‘뱅크시’라는 이름 자체도 실은 가명이다. 그를 연구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은 뱅크시를 로빈 건닝햄(Robin Gunningham)으로 추정하고 있다.

 

뱅크시는 자신의 가치관을 겉으로만 행세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 같다. 익명성 아래에서도 지금까지 초심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존경스럽다.

 

관객의 입맛에 맞춰진 작품은 예술이 아닌, 상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시 초반에는 뱅크시가 관객을 자극할 만한 소재를 일부러 고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전시를 통한 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해를 풀 수 있었고, 작품들 역시 마음 놓고 편히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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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으로 번 수입을 이용하여 난민 구조선을 제조하는 등, 많은 사회공헌과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념품을 팔아 기부금을 모으기도 하는데, 명성치고는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놀라웠다. 실제로 『리얼 뱅크시』 전시 기념품 역시 아주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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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뱅크시』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을 하나 꼽자면 《페스티벌 (자본주의 파괴)》이다. 반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역설을 그린 그림이다. 히피, 펑크, 고스는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그림에서의 그들은 외향적으로만 반항적이다. ‘Destroy Capitalism’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규율에 누구보다 잘 순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잘못되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정해진 틀을 깬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예전에 SNS에서 돌아다니던 밈이 생각나서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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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벽을 바라보고 서면 불법이지~”

 

 

밈을 보며 웃으면서도, 생활 속 관습에 대한 반발심으로 ‘진짜 미친 사람처럼 해볼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실천은 안 했다. 사실 이 밈 말고도 관습을 따르기 싫어서 소심하게 반항 아닌 반항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지인한테 유난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ㅋㅋ) 하여튼 뱅크시의 말대로, 우리가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의식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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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대표 작품 《풍선과 소녀》는 2018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약 18억 원 (2021년에는 약 3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되었다. 낙찰 직후, 작품은 액자 속에 감춰진 파쇄기에 갈리면서 훼손되었다. 예술의 자본화에 반대하는 뱅크시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현대 미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앞에서 언급한 엘리베이터 밈처럼, 우리는 일상 속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질서인지 고민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따른다. 평소와는 반대로 승강기를 타는 것조차, 다른 사람 앞에서라면 민망해서 하지 못한다. 평생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이어도 '위험한 사람' 혹은 '아픈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이런 극미한 행동도 눈치 보이는 데, '파급력 있는,' '예술계의 주목을 받는' 예술가가 '거액의 금전이 거래되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태까지 예술은, 예술가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적 행위라고 믿어왔다. 예술가는 예술을 하는 과정에서 치유를 받고, 충동과 욕구를 승화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관객은 그 결과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자면 나에게 예술가란 '주인공'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객에게 사랑받는 주인공.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뱅크시는 위에서 말한 예술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통해 남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활동가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표현 수단이 아닌, 의미를 전달해 주는 확성기처럼 예술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굉장히 신선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았다. 그러한 면에서 뱅크시는 오늘도 예술의 참된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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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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