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가 그/녀를 사랑했다 - 프라하의 봄 [영화]

글 입력 2024.07.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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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가벼운 것인가, 무거운 것인가. 진정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보통 서로에게 충실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랑을 떠올린다. 때문에 대다수는 <프라하의 봄>(원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의 무거운 사랑을 옹호하며, 토마시의 사랑을 비판한다. 그들은 토마시의 사랑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며, 그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토마시의 사랑이 비판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 역시 존재한다. 토마시의 사랑에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가벼워 보일지라도, 적어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유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무거움도 함께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토마시의 사랑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가벼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토마시의 사랑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면 테레자 역시 어머니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토마시와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테레자의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그녀의 사랑은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사랑에 가깝다. 족외혼과 관련한 레비스트로스의 견해를 떠올려보자. 그는 원시사회에서 여성은 특정 집단과 다른 집단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물의 용도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 사회의 결혼과 사랑은 여성에 대한 집단(남성)의 소유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레 불륜을 금지하고 지아비(혹은 아내)에게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서로에게 충실한 사랑은 사랑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사회 집단이 부여한 이념이다. 진정한 사랑에게 있어 윤리와 배려는 부산물로써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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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라하의 봄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선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부터 해결해야 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모두는 결핍 상태에서 태어나며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나머지 인생을 산다. 특히 사랑은 우리를 완전하게 해주고, 충족시켜주는 탁월한 수단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스스로의 결핍을 극복한다. 때문에 사랑은 소모품이며, 우리의 ‘연인’은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나아가 우리는 저마다 결핍된 부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랑은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상대적인 영역 안에서만 존재한다. 때문에 사랑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을 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목적 충족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사랑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사랑은 타인의 평가가 성립되는 영역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자크 라캉의 진정한 사랑이든, 테레자의 이상적 사랑이든 간에 반드시 소유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사랑은 대상을 필요로 하고 대상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해결함으로써 만족을 느낀다. 후자는 정착된 사랑의 틀 안에서 만족을 느낀다. 정착하지 못한 사랑은 그들에게 곧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연인을 자기만의 소유물로 만들려 든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끝은 대개 불행으로 이어진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프란츠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사비나와 사랑에 빠진 프란츠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프란츠의 사랑은 사비나가 그의 사랑의 영역 안으로 정착할 것을 전제한다. 그에 반해 사비나는 소유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녀는 달아났고 프란츠는 결국 홀로 남았다. 테레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무거운 사랑은 토마시의 바람기와 끊임없이 대립했다. 결국 토마시를 이해하고 잡아두려는 그녀의 시도는 무위로 끝나버렸다. 실패에 대한 절망과 혼란으로 테레자는 일종의 몰락(불륜의 시도)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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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라하의 봄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사랑이 필요할까. 릴케는 이 물음에 ‘보다 인간적인 사랑’을 대답했다. 릴케는 연인을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소유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연인으로부터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연인과 함께 있음으로써 느끼는 행복의 순간이 그 대상이다. 모든 존재에게는 고유의 층위가 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결핍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써의 사랑이 모든 층위의 존재들에게 통용 가능한 사랑이라면, ‘보다 인간적인 사랑’은 오로지 인간의 층위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소유를 전제한다. 우리는 연인을 대상화하고, 그들과의 사랑을 우리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보다 인간적인 사랑’은 연인을 소유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대신 그 사랑은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유하기를 권한다. 연인을 대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주체로 인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것으로서의 그/녀가 아니라 자신만의 온전한 세계를 가진 주체로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시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대상을 한정 짓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존재론적인 인식과 관련된 그의 근원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에 토마시의 사랑은 가볍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당위, 혹은 사랑의 목적이 한 가지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그의 사랑은 무겁다. 물론 이는 <프라하의 봄> 속에서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토마시만의 특징은 아니다. 테레자 역시 무거운 사랑을 추구하지만 자유라는 가벼움의 목표를 지향한다. 프란츠나 사비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시의 사랑이 가치 있는 이유는 연인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이다. 토마시는 연인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겐 사랑을 통해 얻는 존재론적인 욕구의 충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테레자는 토마시의 세계 안에서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안에서 오롯이 주체로서 존재한다(실제로 토마시는 테레자가 프라하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진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사비나에겐 남성적 상징물이자 다른 남자들은 싫어하는 그녀의 모자를 타인과 구분되는 그녀만의 특징으로 인정하며, 사비나의 실존적 가치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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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라하의 봄

 

 

“그래서 당신은 내꺼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영화 <그녀 her>에서 사만다의 비밀을 알게 된 테오도르가 물었다. 사만다는 그 물음에 어렵게 답했다. “나는 당신의 것이기도, 당신의 것이 아니기도 해요.” 곁에 있는 동안 연인은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곁을 떠나는 순간 연인 당신의 것이 아니다(단지 물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릴케는 진정한 사랑을 어린아이의 형상을 통해 비유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안 아이는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놀이가 끝나면 미련 없이 그것들을 손에서 놓는다. 아이는 잃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이에겐 장난감이 제 손에 있는 것보다, 그것으로 재미있게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랑으로 비유하자면 상대를 마음대로 만나는 바람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후회 없이 사랑했으므로 나는 괜찮다’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릴케는 사랑을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일종의 능동적인 작업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우리가 사랑이 가진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연인을 주체로 인정하기 위한, 연인이 아닌 그/녀와의 시간을 소유하려는 노력을 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사랑이 지녀야 할 참된 면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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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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