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 없는 꽃 (A flower is not a flower) - 세상의 모든 별종들에게 [공연]

장혜림 출연 윤사비나 안무
글 입력 2024.07.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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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별종들이 산다. 딱히 정의할 수 없는, 모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모두가 다 다른 별종이지만, 우리는 소수성을 가진 타인은 배제시키고 의도적으로 그를 변색시키기도 한다. <말 없는 꽃>은 아름답게 핀 꽃의 이면을 다룬다. 윤 안무가는 20대에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전신 탈모라는 신체적 증상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겪었던 사회적 인식과 차별, 상처와 같은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 세계에 반영되었고, 이번 작품 또한 이러한 주제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안무가가 풀어내는 꽃의 이야기


 

두 명의 무용수가 실루엣만 비치는 가림막 뒤에 서 있다. 시나위앙상블의 ‘시간 속에서’ 음악이 시작되고, 금세 어두워진 무대는 가림막에 프로젝터로 투사된 한옥의 문이 보인다. 생음악 반주에 맞추어 일정한 장단이 공간을 밀도 있게 채운다. 무대를 가린 문이 열리고, 곱게 떨어지는 흰 한복을 차려입은 한 여인이 사연 많은 눈빛으로 관객석을 응시한다. 바닥까지 끌리는 한복을 입고 조각상처럼 서 있는 그녀는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피사체로서 사회의 모든 별종을 대표하는 그이기도 하다.


여성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낸다. 다리는 고정한 채로 상체로만 움직이며, 손으로 마임 동작을 하고 손을 접었다 펴는 등 미니멀한 동작의 어구를 반복한다. 수화를 하는 것 같이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음악이 고조됨에 따라 매우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무대에는 그녀를 가린 막 없이 열려 있지만, 손으로 얼굴과 입을 가리는 모습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 사회와 마음의 문처럼 굳게 닫혀있다.

 

음악이 고조되며, 그녀의 풍성한 치마 뒤에 숨어있는 의문의 남자이자 무대의 조력자는 그녀의 치마를 한 겹씩 음악에 맞추어 벗겨내기 시작한다. 그녀의 치마는 총 10겹이며 역동적인 상체에 비해 고정된 하체, 그리고 변화하는 치마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치마의 모습과 색이 겹겹이 싸여진 치마 속에서 새로운 치마가 등장하는 모습은 마술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치마를 벗기는 행위는 처음에는 당황스럽게 다가오지만, 여러 겹 벗겨지고 나면 속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호기심을 자아내며 예측 불가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는 안무가가 의도한 상황이며,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타인의 불필요한 호기심과 지나친 관심을 의미한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치마를 모두 벗기면, 속바지만 입은 날 것의 모습과 함께 불구인 다리가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나무로 된 다리를 지탱하며 한 발로만 춤추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봐서는 안 되는 걸 본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여성의 수치심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춤에 집중하고 있으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는 듯한 움직임은 여성의 해방감처럼 느껴진다. 그녀를 둘러싼 치마는 타인의 시선에 맞춰 갖춰온 그녀의 보호막과 같으며, 이는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싸여져 있다. 무대 위 여러 겹 벗겨져 나뒹구는 치마들과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명의 무용수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별종이다.

 

 

 

사회 속 별종


 

‘타인과 다른 나’는 사회에서 별종으로 배제된다. 나서서 말할 수 없는 존재, 숨어 살아야 하는 존재 등 사회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을 다채로운 치마의 겹에 빗대어 투영하고 있다. 타인이 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내면이 단단한 모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하는 사연이 있고, 사회에서 미세한 차이로 인해 다른 종으로 배제당하는 일이 만연하다.

 

또한 소수성을 가진 집단은 쉽게 평가당한다. 장혜림 무용가의 ‘말 없는 꽃’은 보편적인 의미인 ‘꽃’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 없다’는 관형사를 붙임으로써 소수성을 부여한다. 이는 비가시적인 차이 또한 타인을 소수자로 만드는 성질임을 나타낸다. 타인들에 의해, 사회의 규정된 틀에 의해 일부 개인의 차이는 차별이 되어 되돌아오고, 다양한 양상의 고정관념 때문에 소수자는 사회로 나오는 것을 어려워한다. 사회의 물리적, 심리적 한계 탓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상당수 포기하고 말고, 세상은 드러나지 않는 이들을 더욱 소외시킨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이번 작품에서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명의 여인은 그동안 사회에게서 받아온 비판적인 시선과 차별의 눈초리를 대면하는 한 사람이었으며, 타인의 극단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비판했다.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들추지 말아야 할 상처까지도 훔쳐보고, 자신의 몹쓸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상대방의 삶을 통째로 왜곡하고 해체해 버린다. <말 없는 꽃>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왜곡되고 채색되어 가는 사회적 피폐에 대한 경고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꾸짖고 있다.


안무가는 꽃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면서 참신하게 표현하였다. 아름다움은 역경과 고난을 견디어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짙어진다.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 숨고 싶을 만큼 따가워도. 굳은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자신이라는 꽃을 소개했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별종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마음 담아 사랑해주자.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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