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리석으며 무능한 젊은이여 -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

글 입력 2024.07.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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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부터 7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정진새의 각색으로 새롭게 펼쳐진다. 정진새의 <햄릿>은 젠더프리 캐스팅 작품이다. 주인공 햄릿은 왕자가 아닌 공주로, 이봉련 배우가 연기하게 되었으며 원작에서 여성이었던 햄릿의 애인 오필리아는 류원준 배우로 캐스팅되었다. 오직 남성뿐이었던 햄릿의 친구들 역시 여성과 남성 모두 캐스팅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젠더프리 캐스팅이란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의미한다. 연극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은 여러 필요성에 의해 활용되어 왔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는 남성 중심의 극 작품이 주류인 상황에서 여성 배우가 ‘여성 역할’만 할 경우 설 수 있는 무대가 없거나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젠더프리 캐스팅은 우리가 인물에게 더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된다.


어떤 인물을 이해하는 데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이미 구조 속에 사는 우리가 완전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성별을 바꿔서 인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보았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을 구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적극적인 젠더프리 캐스팅은 연극이 연극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성의 예술인 극은 매 회차 그 표현에서 차이가 발생하며 그것이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알았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적극적인 캐스팅 시도는 연극적 시도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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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햄릿>은 왕자 햄릿이 아닌 공주 햄릿이 되었지만, 줄거리 상 ‘여성’으로서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극은 아니다. ‘나쁜 공주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햄릿의 말처럼 햄릿은 야망 있는 왕위 계승자로 미친 듯 자신의 복수를 해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깊은 절망과 공허, 광기의 순간들을 이봉련 배우의 연기로 마주할 수 있음이 행운으로 다가왔던 연극이었다.


 

 

어리석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젊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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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의 갑작스러운 서거 후 숙부였던 클로디어스는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와 재혼해 아버지가 되었으며, 왕위를 계승해야 했던 자신은 여전히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공주로 남게 된다. 왕이 된 클로디어스는 10년 뒤 공주에게 왕위를 계승하겠다는 서약을 맺었으나 차라리 햄릿이 10년 안에 죽을 확률이 더 높다는 세간의 소문이 파다하다.

 

갑자기 떨궈진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린 공주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짜맞춘 듯 돌아가는 상황에서 원망에 사로잡힌 햄릿은 한밤중 바다에 나갔다가 아버지의 망령을 마주하고 선왕의 죽음이 숙부 클로디어스에 의한 것이라는 망령의 증언을 듣게 된다. 그날 이후 햄릿은 미쳤거나 미쳐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햄릿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강한 믿음을 가진 젊은이이다. 그 근거는 자신이 왕의 적통자라는 사실이다. 믿음을 가진 젊은이는 그렇기에 왕위를 찬탈한 숙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깊숙이 가지고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보통 연극은 극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에게 보다 이입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다. <햄릿> 역시 마찬가지기에, 초반에는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삼촌과 재혼했으며 자신의 생명도 위협받는 어린 왕위 계승자 햄릿의 상황에 관객들도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햄릿과 다른 인물들 간의 대화를 마주함으로써, 관객은 햄릿마저 거리를 두며 선과 악,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사이의 상황의 모순과 복잡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보상받을 수 없는 젊은이의 치기 역시 햄릿을 통해 마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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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왕이었으므로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햄릿의 의지는 현실에서 얼마나 가소로워지는가.

 

숙부 클로디어스 역시 왕의 아들이었다. 선왕은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고, 자기 형이자 선왕의 행동들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하곤 했다. 어머니 거트루드는 햄릿에게 네가 왕이 되었다고 하여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 같으냐고 되묻는다. 자신의 결혼으로 왕위계승자 서열 1위라는 자리라도 지켜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10년 안에 통치자가 될 역량과 정치적 힘을 쌓는 것부터는 너의 몫이라고, 그것도 하지 못하면서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햄릿의 복수로 죽음이 휩쓸고 간 왕국에는 새 왕이 들어섰을 뿐이다. 모두가 죽고도 그토록 아무것도 바뀌지 못하는 세상이다.


햄릿이 마주하는 세계는 부당하고 부조리하다. 어린 햄릿은 그 부당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나름의 논리로 대항한다. 숙부 클로디어스를 죽이러 가는 길은 많은 목숨이 필요한 길이었다. 그 목숨에는 자신의 생명도 포함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나마 선택한 길은 어쩐지 엉성해 보인다. 그럼에도 젊은 햄릿에게 공감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젊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햄릿은 영영 나이 들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내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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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연극에 대한 연극이기도 하다. 햄릿은 성에 방문한 극단에 주문하여 클로디어스를 당황하게 할만한 내용으로 연극을 올린다. 햄릿은 말한다. 이 성에 있으면서 모든 순간 감시당하는 자신은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렇기에 허구라는 이름의, 이 연극이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유일한 순간이 된다고. 배우는 말한다. 연극이란 거울과 같아서 우리가 사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결국 좌우가 바뀌어버리는 거울처럼 연극이 보여주는 세계 역시 진실이 아니라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4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무한히 반복되고 변주되는 까닭은 우리가 어떤 현실을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번 국립극단에서 정진새의 각색으로 보인 <햄릿>은 우리가 그 이야기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이었음을 생각한다. 일주일 남짓 남은 이번 공연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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