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뱅크시가 왜 ‘뱅크시’인지 알게 되는 시간 - 리얼 뱅크시 REAL BANKSY

글 입력 2024.07.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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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얼 뱅크시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는 국내 최대 규모의 뱅크시 작품전으로 지난 5월 10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인사동 그라운드서울에서 진행된다.

 

‘얼굴 없는 화가’, ‘정체를 숨긴 거리의 예술가’,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 칭하며, 특유의 사회 풍자적이고 파격적인 주제의 작품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25년간의 행보를 한눈에 만나볼 수 있다. ‘페스트 컨트롤’은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인증 기관으로 뱅크시의 작품을 판매하거나 진품 여부를 판정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의 피에르니콜라 마리아 디 이오리오 외 국내외 뱅크시 관련 전문 큐레이터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되어, 거리 예술로부터 파생된 그의 초기 작품부터 이후 20여 년간의 비폭력주의, 예술의 자본화 등 다양한 사회변혁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뱅크시는 1990년대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세계 곳곳의 거리, 건물 외벽, 담벼락, 물탱크, 지하도 등에 스텐실 기법을 사용한 크래피티 작품을 남기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제도권에 대한 비판, 반전과 평화, 비폭력, 환경 등 묵직한 주제 의식을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작품은 특유의 풍자와 사회적인 메시지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고 있다.


이렇게 뱅크시는 작품을 공개할 때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래피티 예술에는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뱅크시와 그의 작품 몇 점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뱅크시가 그토록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 뱅크시가 왜 ‘뱅크시’인지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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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은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계단 곳곳에서 뱅크시의 그림을 볼 수 있었으며, 지하 4층에서부터 1층으로 다시 올라오는 과정에서는 뱅크시의 그림 안에 들어가 일부분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BANKSY IS NOWHERE’라는 문구가 네온사인 형태로 제작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때, ‘I’ 부분을 사람 형상으로 해서 관람객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해놓았는데 이를 통해 누구나 뱅크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더불어 ‘NOWHERE’을 붙여서 씀으로써 중의적 의미를 띠는 문장으로 만들었다. ‘뱅크시는 어디에도 없다(BANKSY IS NO WHERE)’ 또는 ‘뱅크시는 여기 있다(BANKSY IS NOW HERE)’. 그러나 두 문장 모두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 지금 뱅크시의 관객을 보는 관람객 누구나 뱅크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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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군인

 

 

옆으로 눈을 돌리자 보인 문구는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였다. 이 문구가 시사하듯, 편안하게 관람하고 있는 나는 작품을 보면서 수많은 불안함과 불편감을 느끼게 되었다. <평화의 군인>은 평화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라는 작품명과 달리, 피로 물들어 마치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평화 기호는 ‘평화’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음을 명백하게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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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모없으니깐

 

 

더불어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쥐’를 모티프로 하여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쥐에 대해 뱅크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허가 없이 존재한다. 미움을 받고 쫓기고 잡히고 학대당한다. 그들은 더럽고 불결하고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산다. 그렇지만 마음만 먹으면 완전한 문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이 지저분하거나 존중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결정적인 역할 모델은 바로 쥐다(They exist without permission. They are hated, hunted, and persecuted. They live in quiet desperation amongst the filth. And yet they are capable of bringing entire civilizations to their knees. If you are dirty, insignificant and unloved then rats are the ultimate role model)”.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런던과 뉴욕과 리버풀의 거리에 수없이 많이 쥐를 그린 뱅크시에게, 쥐는 소위 “성공을 위한 경주”라 불리는 것 속에서 불의와 부당함을 마주하는 세계 곳곳 수백만의 사람들 또한 상징한다. “나는 쓸모없으니까(Because I’m worthless)”,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Hell)” 등이 쓰인 피켓을 든 쥐들의 모습에는 자연스럽게 억압받고 부당하게 차별받아 온 이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불어 성공한 삶, 부자의 삶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의 자책감과 분노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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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작품들은 특수한 공간성을 띤다. 그가 거리의 예술가인 만큼, 그가 선택한 도화지는 자신의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뱅크시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최대한 그의 작품이 가지는 공간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이에 간접적으로나마 뱅크시의 진짜 작품이 그려진 공간의 느낌을 느껴볼 수 있었다.

 

특히 디즈멀랜드(Dismaland)의 공간 기획이 인상적이었다. 디즈멀랜드는 2015년 뱅크시가 지은 놀이동산으로 ‘Disneyland(디즈니랜드)’와 ‘Dismal(음울한)’을 합쳐진 합성어이며, 디즈니랜드의 안티테제이다. 기본적으로 놀이동산의 테제는 ‘꿈과 희망’이다. 그러나 사실상 놀이동산은 자본주의의 집약체이며, 이러한 모순은 놀이동산의 현대 사회의 풍자성을 꼬집는다. 뱅크시는 이런 점에 주목하며 ‘행복하지 않은/기쁘지 않은’ 놀이동산인 디즈멀랜드를 만들어내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과 환상으로만 가득 찬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더불어 디즈멀랜드를 상기시키는 공간의 가장 윗부분이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공간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웃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처음 디즈멀랜드를 살펴볼 때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다시 이 공간을 찾았을 때 우연히 이 사람을 발견했다. 그 순간 굉장히 기분이 불쾌하면서도 오싹했고, 마치 사람들의 불행을 보면서 웃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뱅크시의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사회 문제에 관심 있다고 말하는 나이지만, 과연 나는 어느 정도까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 관심의 깊이 정도는 어디까지였나 성찰하게 되었다. 더불어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The highest position in British Society is not a reward for talent or hard work, but simply handed out with the accident of birth).”라는 문구가 굉장히 묵직하게 다가왔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성공의 한계점은 선천적인 것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노력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실질적으로 유효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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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전시를 보며 이처럼 다양한 것들에 대해 고심하게 된 만큼 굉장히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뱅크시를 좋아하지 않거나, 잘 모르지 않더라도 한 번쯤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전시장에 적혀 있는 설명들이 사전 정보 없이도 대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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