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은 없고 상상력만 남았다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글 입력 2024.07.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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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Art here”, 스페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아티스트 하비에르 카예하(Javier Calleja)의 대표작(No Art here, 2019)과 동명인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다. 이는 전시회의 제목치고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에서 ‘이곳에는 예술이 없다’라는 문구를 사용하다니,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은 예술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인가?

 

궁금증을 가득 안고 전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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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벽에서 튀어나온 손이 전시회의 제목인 "No art here"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나를 반겨준다. 다른 벽면에는 그 문구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비어있는 캔버스가 걸려있다. 작가의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초입이었다.

 

 

 

작품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


 

하비에르는 나를 조금씩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단순한 공간과 그와 대비되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미술관의 하얀 벽이 주는 단조로움은 오히려 그의 캔버스로 사용되기에 적절했다. 그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예술가였다. 벽에 직접 무엇을 그리기도 했는데, 때로 그것은 액자 안의 그림과 연결되어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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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간에는 엉망진창이란 푯말을 들고 있는 귀여운 캐릭터의 안내처럼 질서 없이 삐뚤빼뚤한 액자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삐딱한 각도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고개도 나도 모르게 작품을 따라 조금씩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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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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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얼굴을 탑처럼 쌓아 올린 것이다.

 

한쪽 면에서만 보면 그들의 얼굴을 한 번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와 눈을 맞추기 위해선 작품을 따라 돌아야 했다. 몇 바퀴를 빙빙 돌며,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까지 차르륵 훑었다. 재밌는 것은 크고 볼록 튀어나온 눈 덕에, 어느 각도에서도 시선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자, 나는 저들이 나를 구경하고, 내가 전시의 일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흰 벽에는 그림자가 져서 이곳에 그들이 있음을, 작품의 흔적을, 다시 한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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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스케치다. 조형물로 봤을 때는 눈만 보였는데,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 표정까지 같이 눈에 띈다. 전체적인 탑의 모습을 보기 위해선 뒤로 한참 물러나야 했었는데, 이제 별다른 이동 없이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차이다. 거대하게 보였던 탑은 어느덧 종이 안으로 쏙 들어오는 크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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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더 큰 풍선을 불고 있었다.

 

입에 닿는 부분이 쪼글쪼글한 디테일이 살아있고, 그 자글자글한 주름에 비치는 캐릭터의 얼굴이 꽤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풍선은 지나가는 관람객들도 비추었다. 우리는 하얀 머리의 캐릭터가 부는 풍선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뚜벅뚜벅 다음 작품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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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비슷한 드로잉 형태의 작품을 발견했다. 안이 들여다보이는 훨씬 연한 색감의 풍선을 보니, 캐릭터가 풍선껌을 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몇 초 뒤면 터질 것만 같은. 엄청나게 큰 풍선껌을 불어서 공중에 떠 있다고 상상하니 재밌기도 하다.


그런데, 풍선 앞에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는 사람이 있다. 풍선껌을 부는 캐릭터의 밝은 얼굴과는 달리 어디가 못마땅해 보이는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1) -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문구



전시를 볼 때면,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전시해 놨는지에 따라 자리하는 감정이 다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작품에 있는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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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 길쭉한 캐릭터의 뒤에는 검은색 배경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와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 같아 보여, 충분한 휴식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밑에 쓰여 있는 것은 보자마자 확 꽂힌 문장이다. 가끔 쉬는 날에도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떠올리고 싶다.

 

"Have a Nice Laz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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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작품이 하나 더 있다. 하루에 정말 작은 시간이라도 게으름을 부리며 나를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잘하게 하는 에너지를 생성해 낸다.


나의 경우에는 이럴 때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을 때리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머리를 비우는 것을 좋아한다. 하비에르에게 휴식은 무엇일까?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2) - 무한 상상의 나래


 

이번 전시는 내 머릿속의 상상력을 따라 펼쳐졌다. 많은 설명이 있어, 작가의 의도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전시회도 유익하지만, 나의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해 가는 것도 재밌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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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을 보며 꼭 작가의 머릿속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처럼 그의 머릿속에는 구름이 떠다니고, 어느 날은 꽃이 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작품으로 옮기고 나면, 그 의미를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곳에 예술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예술가로서 유명해지기 위해, 차별성을 갖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위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온전한 자신을 투영한 작품들만이 이 전시에 존재함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비에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죠? 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어떤 것을 찾아야 했어요. 나의 작품에는 무언가 있지만 나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관람객이 그것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아요.’]  - 하비에르 카예하

 

그의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유를 말해야 할 상황이라면, 억지로 연유를 생각해 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냥 좋은 건데, 그냥 한 건데,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고."

 

하비에르도 그랬다. 그는 작품의 해석을 전적으로 관객에게 맡겼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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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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