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밴드를 한다는 것

글 입력 2024.07.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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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지난해 첫눈이 내리던 날, 겹치는 지인이 있어 학교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후배와 밥을 먹었다. 당시 나는 공연예술 동아리들을 전전하며 기타를 치러 다니는 고학번 복학생이었다. 오며 가며 그 친구의 무대를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체구로 스테이지를 장악하는 모습에 ‘프론트맨 감인데…’라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그렇게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사이로 마주치기를 반복했다. 언젠가부터 느낌이 왔다. 조만간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본격적으로 밴드 결성을 논할 시점엔 이미 보컬이 생각해둔 베이시스트가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실력 있는 드러머와 또 다른 기타리스트를 구하기까지 채 2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인 5명의 음악 취향은 하나같이 달랐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곧바로 ‘시작’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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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을 만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을 때쯤,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지금 활동하는 밴드가 사라져도, 음악을 계속할 건가요?”


적잖이 당황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미래에 난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항상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인들은 나를 언젠간 TV 프로그램에서 볼 것 같다고 자주 얘기한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때문에 머뭇거리는 스스로의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멤버들이 없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던 탓일까. 허를 찌른 이 질문은 밴드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버지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헤드의 ‘Nice Dream’을 듣고 밴드 음악에 푹 빠졌다. 비슷한 음악을 듣는 친구들은 주변에 없었다. MP3에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를 담아 다니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외롭긴 했지만, 이 좋은 것들을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학창 시절 거의 모든 개인 시간을 로큰롤 역사를 꿰뚫는 데 소비했다. 굵직한 가지들 사이 가려진 밴드를 발견할 때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이때만 해도 내가 음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스스로를 음악 좀 듣는 마니아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직접 악기를 들지도, 공연장을 찾아갈 용기도 없었던 시절 밴드를 동경하는 방법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드디어 기타를 잡았다. 가장 먼저 카피한 곡은 비틀즈의 ‘Blackbird’, 그다음은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록 키드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명곡들을 일주일에 하나씩 정복했다. 나조차도 무서울 정도로 기타 실력은 빠르게 늘어갔다.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애초에 학생의 본분이란 건 염두에 없었던 것 같다. 축제 무대에서 오아시스의 ‘Supersonic’을 연주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마치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니 확실히 알겠다. 난 단지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밴드맨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밴드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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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꿈을 이룬 소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밴드맨이라는 자아를 숨기려 한 적이 없다. 물론 음악으로 버는 돈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들이 그렇듯 ‘N 잡’의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오직 그것만 하고 살 수 없을뿐더러,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꿈꾸기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멤버들과 함께 있으면 더 많은 꿈을 꾸게 되는 것 같아 좋다. 덕분에 음악인의 직업 정신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합주를 할 때면 내가 일을 하는 것인지, 놀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서질 않는다. 그만큼 행복하다. 이만큼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니. 분명 큰 행운이다.


 

우린 새로운 눈을 찾아다니며

모진 맘을 둥글게 굴려버렸어

 

랜딩기어(Landing Gear) - Lemon(Fuel) 중

 


물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혹자는 예술에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동경하던, 혹은 주변의 많은 밴드들을 보면 갖가지 이유로 갈등을 마주하고 해체에 이르기도 한다. 지금 이 소중한 인연들이 오래도록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무엇이든 과하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밴드의 일원이 되면서 팀 없이는 음악도 없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기타 솔로 대신, 우리를 포장하는 연주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언제나 다섯 명의 색이 충분히 묻어있었다.


밴드는 ‘팀플’과 확실히 다른 차원이다.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밴드 음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밴드 사운드에 몰입하는 순간 가수 한 명이 전달하는 그 이상의 에너지, 혹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런 엄청난 일을 함께할 수 있는 멤버들을 만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추신.

당장 앞둔 공연이 네 개나 있다.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생한 멤버들이랑 훌쩍 여행이나 떠나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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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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