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동, 말장난, 패배 선언 - 리얼 뱅크시 [전시]

아이러니가 된 치열한 실천가
글 입력 2024.07.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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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대표작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아마 「풍선을 든 소녀」였다가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가 된 작품이다. 2018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그맘때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던 때라, 미술계에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음에도 그 흥미롭기 그지없는 사건에 대해 여기저기서 발 빠르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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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미술 경매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더비 경매장에서 86만 파운드에 뱅크시의 작품이 낙찰됐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림이 액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줄줄이 기다란 조각으로 파쇄되어 액자 아래로 흘러나왔다. 뱅크시에 의해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고, 그 도발적인 행위는 예술계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전 세계의 언론에 보도되었다.

 

먹물이 잔뜩 묻은 엘리트층이면서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했던 몇몇 교수들은 그 사건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물론 엘리트의 세계와는 상대적인 거리감이 있는 내게도 충분히 인상적으로 들리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영상에 상황이 그대로 담겼기 때문에 더욱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낙찰 직후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가운데 갑자기 그림이 갈기갈기 조각나고, 순식간에 환호는 웅성거림으로 바뀌고, 벽에 걸려있던 액자를 조심스럽게 잡아 내리는 그 당혹스러운 몸짓이란. 이미 그림의 반절 이상이 훼손될 대로 훼손됐는데, 그걸 그렇게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모습이 어찌나 아이러니한지.

 

그 사건으로 뱅크시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던 것 같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은데, 그를 알았다손 치더라도 잘은 알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건이 배타적인 예술의 장에 가지는 수행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가 거리 예술을 하던 사람이라는 건, 그리고 도발과 저항이 거의 언제나 그의 작품 세계의 한중간에 자리해 왔다는 건 이번 <리얼 뱅크시>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건너 들은 게 다였던 나는 이제껏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86만 파운드면 15억 4,317만 5,400원이다(6년 전 환율로는 액수가 달랐겠지만 중요치 않으니 대충 넘어가자). 그러니까, 그는 15억을 그림 한 점에 벌 수 있으면서도 특권적 지위를 당연시하지 않을 정도로 영민하고, 그걸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만한 수행적 예술로 표출할 정도로 천재적이면서, 예술의 장을, 그 안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완전히 저버리고 내려놓진 못할 정도로 충분히 속물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에 대한 저러한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그가 자신이 맴도는 주제에 대한 진정성을 적어도 꾸준함으로 증명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예술 세계의 심오함을 주장한 적 없으며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동떨어진 위치에(이를테면 돈방석 위에) 앉아, 아이러니한 사건을 일으킬 뿐 아니라 전통적인 예술의 장과 거리 예술 사이에 낀 아이러니의 물화 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 중요한 배경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그의 예술에 대한 모든 진술은 반쪽짜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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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뱅크시> 전시에서 그의 다른 작품과 함께, 맥락 속에서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로 벌어진 소동을 마주했을 때 이전엔 눈치채지 못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쇼를 위한 쇼를 벌인 것이 아니다. 혹은 무엇이 예술계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주제인지 재고 따져서 판단을 한 게 아니다. 그냥 그에겐 언제나 예술의 장의 엘리트주의가 타파해야 마땅한 주적이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어느새 그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엄청난 부와 명성을 벌어들였다곤 하더라도 말이다.

 

전시에서 내게 가장 즐겁게 다가온 부분은 그가 일으켜 온 골치 아픈 소동과 얄밉게 재치 있는 말장난, 그리고 적실한 패배 선언이었다.

 

 

 

1. 골치 아픈 소동 


 

예를 들어 가장 골치가 아파져 왔던 건 2010년 글래스톤베리에 방문한 찰스 왕세자에게 “DRUGS FOR SALE”(마약 팝니다)이라고 쓰인 팻말을 흔들며 마약을 맛보라고 큰소리를 내는 팀 뱅크시 멤버의 영상이었다. 대항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에 처음으로 걸음 한,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는 보수의 현현과도 같은 영국 왕실의 일원-이것만으로도 이미 의미의 충돌로 긴장이 팽배한 이미지인데 거기다 대마초를 들먹이는 히피라니.

 

큐레이팅을 한 꺼풀 거쳤을 때 뱅크시는 대의의 수호자로 한껏 추앙되곤 하지만, 실은 그에겐 질서를 헤집는 현재적인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지, 사건 자체를 초과하는 의미화는 먹물이 튄 사족에 불과한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가 예술의 장에서 가치를 승인받아 명성과 부, 그리고 특히 그로부터 파생되는 압도적인 영향력-그가 기껍게 휘두르곤 하는 바로 그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자신은 몸서리칠 진중한 사족이 덧붙어 온 결과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가 2003년에 테이트에서 벌였던 일은 좀 더 떳떳하게 유쾌하다. 그는 영국 미술의 정수를 담아낸 것을 자랑하는 테이트 브리튼의 벽을 훔쳤다. 작품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예술계의 구미에 좀 더 들어맞으며, 그의 세계적인 유명세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게 충분히 납득이 될 정도로 재치 있는 일탈이었다. 뱅크시에 대해 다룬 책에서 이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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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목가적인 18세기 풍경화와 8번 갤러리로 향하는 통로 사이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내고는 자신의 공간으로 점찍었다. 그는 종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방에서 그림을 꺼내서는 벽에 붙였다. 배짱 좋은 행동이었다. 테이트는 자신들의 작품이 아니라 공간을 훔치는 사람 역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초창기에 브리스틀 거리에서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해본 경험이 그의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가방 속으로 손을 넣어 흥미로운 물건, 즉 작품의 제목이 쓰인 빳빳한 흰 판지를 꺼내 자신의 그림 곁에 깔끔하게 붙이고는 자리를 떴다.

 

『뱅크시 : 벽 뒤의 남자』

 

 

테이트에서의 성공 이후 그는 17개월 동안 런던, 파리, 뉴욕의 자연사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7개 전시장에서 벽을 전유했다고 한다. 목적은 명백했다. “이 갤러리는 소수의 백만장자를 위한 트로피 장식장일 뿐이다. 대중은 그들이 보는 예술에 대해 진정한 발언권이 없다.” 오직 프레임이 걸리기 위해 존재하는 표백 상태의 벽에 어떤 작품이 걸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배타적인 예술계의 권위에 그는 언제고 딴지를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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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얄밉고도 재치 있는 말장난


 

한편 뱅크시는 유머의 미덕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의 말장난들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그의 팬이 되고 말 것만 같았다. 웃음 코드가 잘 맞달까. 예를 들어 그가 자신의 거리 작품 사진에 코멘트를 달아서 출판한 책의 제목은 『월 앤 피스』인데, 나는 무심코 톨스토이의 소설 제목과 같이 “War and Peace”, ‘전쟁과 평화’라는 뜻이리라 짐작했다. 알고 보니 “Wall and Piece”, ‘벽과 작품’이 제목이었고 나는 뱅크시가 웅장하고 고상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다소 조야하게 뒤집히도록 의도했을 거라고 98% 정도는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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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예로 브리스틀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뱅크시의 거리 작품 「마일드 마일드 웨스트」(The Mild Mild West)가 있다. 이 작품명을 보고선 누구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를 연상하게 된다. 전시에 정리돼 있던 뱅크시의 내력에서 유난히 눈에 밟히기에 따로 찾아보았더니, 작품은 귀엽고 뽀송한 테디베어가 방패를 든 세 명의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려고 겨누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거친 서부극의 황야에 비하면 안락하기 그지없는 도시에서도 계속되는 투쟁을 표현하는 듯한 이 작품은 브리스틀의 시민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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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말장난은 그가 만들어낸 ‘가정용품 브랜드’에 “Gross Domestic Product”(국내총생산)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진짜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어낸 건 아니고, “Banksy”라는 명칭을 둘러싼 엽서 회사와의 상표권 분쟁에 대한 대응으로 유명무실한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저 꼭대기에 붙어있는 표지판과도 같은 GDP라는 경제지표를 가져다 썼다. 그러고는 ‘예술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훌륭한 답을 해내는 사람에게 벽돌로 만들어진 핸드백, 묘비 모형, 경찰 헬멧 모양 미러볼 등 특별하기 그지없으면서 효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그러나 재판매할 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예정인) ‘뱅크시 가정용품’을 보내줬다니, 고약하기 그지없는 언어유희이지 않은가?

 

 

 

3. 영원히 적실할 패배 선언


 

뱅크시가 남겨온 말들에서 그가 비관을 아는 낙관주의자, 혹은 낙관을 아는 비관주의자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지애를 느끼게 하는 그의 현실 인식은 자본주의에 대한 자조적인 코멘트에서 드러난다.

 

뱅크시는 2015년에 디즈니랜드의 역으로써 꿈과 환상은 소거되고 음울함(dismal)으로 꾸며진 거리 예술 테마파크 “디즈멀랜드”(Dismaland)를 개장했다. 당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미안하다, 얘들아. 의미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불의에 대해… 동화는 끝났어. 세계는 기후 재앙을 향해 넋을 놓고 걸어 들어가고 있어. 어쩌면 현실 도피밖에 답이 없을지도 몰라.

 

 

또한 물신주의의 극단까지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중인 세태를 풍자하는 그의 여러 작품을 그가 남긴 이런 말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터다.

 

 

자본주의가 붕괴하기 전까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쇼핑이나 가서 자신을 위로하는 게 낫지.

 

 

코멘트가 단호한 만큼이나 소비주의를 비꼬는 그의 작품들은 위험할 정도로 도발적이다. 예를 들면 2003년 작 「골프 세일」은 천안문 사태 당시 일렬로 늘어선 탱크 앞을 막아서고 전진을 저지하는 남성이 찍힌 유명한 영상(’탱크맨Tank Man’ 혹은 ‘무명의 시위자The Unknown Rebel’라고 불린다)의 변형이다. 뱅크시는 탱크 앞에 ‘골프 세일’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그려냈다. 파격적인 세일가라면 회군을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결의 작품으로 「네이팜」도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닉 우트의 사진에 등장하는,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이 폭발하여 불이 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절규하며 달리는 “네이팜 소녀(Napalm Girl)”가 뱅크시의 작품 속에서 미키마우스와 로날드 맥도날드에게 양손을 붙들려 있다. 국제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자본과 전쟁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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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의한 무력행사의 참상을 겨누는 심각한 역사적 증언에 말하자면 ‘장난질’을 친 이런 작품은 어떻게 보면 문제적이지만, 또한 그렇기에 메시지에 더욱 힘이 실리기도 한다. 그리고 뱅크시에게 언제나 국가 폭력과 물신주의라는 주제가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용인될 수 있다.

 

좀 더 가벼운 감상으로 돌아가 보자면 나는 「세일 오늘 마감」 속의 탄식하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상술에 휘둘리는 내 모습과 같아 보여서 자조하며 웃었다. 돈을 쓰지 않고는 즐거움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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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번 <리얼 뱅크시> 전시를 통해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뱅크시는 짐작했던 것과 달리 기민하게 포착한 아이러니를 아이러니한 수행으로 표출하는 영민한 천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믿는 바를 행동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치열한 실천가에 가깝다. 그의 액자가 예술의 장 저 위의 명당 자리에 걸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의 일관된 실천을 아이러니로 변모시킨 것일 뿐이다.

 

뱅크시가 지난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텐실 카드는 처음 만들 때부터 벌써 힘이 느껴졌지. 깔끔하고 완벽하게 효율적이야. 스텐실의 정치적인 의미도 좋아. 모든 그래피티는 단순한 수준의 저항이지만 스텐실에는 특별한 역사가 있지. 그건 혁명을 시작하고 전쟁을 멈추기 위해 쓰였으니까.

 

『뱅크시 : 벽 뒤의 남자』

 

 

혁명을 시작하고 전쟁을 멈추기 위해 쓰인 스텐실을 이용해서, 불편한 진실을 유쾌한 방식으로 들추는 소란을 일으키길 멈추지 않는 뱅크시를 이번 전시에서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의 작품만을 위해 준비된 조금쯤 고상한 벽들로 둘러싸인 공간을 뱅크시 본인은 못마땅해할 것 같지만. 그가 보게 된다면 이 공간을 얼마나 불편해할지를 상상하며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여흥을 더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참고

뱅크시, 리경. (2009). 뱅크시, 월 앤 피스. 위즈덤피플

윌 엘즈워스-존스, 이연식. (2021). 뱅크시 : 벽 뒤의 남자. 미술문화

 

 

[이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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