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를 읽는 마음 – 황인찬 시인 Part.2

글 입력 2024.07.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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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Interview] 시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 황인찬 시인 Part.1과 이어집니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까?

 

시는 유독 특별한 장르이다. 언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독특함을 다루는 예술이라서 그런지 짧으면서도 곱씹을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 있고 즉각적이면서도 은유적이다. 어떤 때는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쉽게 녹여낸다. 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 1편 서문 중에서


 

시는 무엇이고 시적인 순간은 무엇이라고 말해야하는 걸까. 보르헤스는 나쁜 일이 있으면 ‘시 같은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던데, 시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걸까. 백예린의 노래에는 “그와 다툰 뒤에 난, 시집을 꺼내 읽어. 모자란 내 마음 채우려 늘 그래.”라는 가사가 있다. 시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걸까. 시는 대체 무엇이길래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


스스로 ‘시 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던 황인찬 시인의 말을 빌리면 ‘시는 내 안에서 무언가 금이 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장르’이고, ‘시만이 줄 수 있는 놀라움과 특별함’이 있다고 한다. 시를 꼭 좋아하지 않아도 되지만 거기에는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고, 시가 어렵다면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시인과 함께 시에 대한 생각들을 이어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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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를 읽는 마음]



1. 시는 아름답지만 무용해 보이는 것의 대표격이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는 오늘날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건 다른 예술,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건데 안 즐겨도 돼요. 안 읽어도 돼요. 그걸 먼저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수적이다, 없으면 큰일이 난다.’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 시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것을 모르고 사는 건 손해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가까워요. 저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즐겨줬으면 좋겠다 그런 감각인거죠. 


시가 다른 예술보다도 훨씬 내밀한 1인칭 예술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 의식과 내면적인 영역과 가장 가까운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를 주 질료로 사용하는 예술이라서. 다른 문학 장르보다도 언어랑 가까운 데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보니 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다는 거죠. 다른 것은 못 주는 재미가 분명 있어요.


제가 자주 하는 비유 중에 제가 똠양꿍을 진짜 좋아해요. 처음 먹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이랬거든요. 하지만 똠양꿍을 몰라도 인생은 행복하게 살 수가 있죠. 그런데 똠양꿍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그 맛을 알았기 때문에 제 삶의 즐거움은 넓어지고 제 삶이 넓어진 거잖아요. 


시에서도 굉장히 즐겁고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2. 그럼에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요즘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느껴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저도 모르겠어요. 왜? 다들 왜 이렇게 시를 많이 읽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고, 이 사람들은 다 뭐지 이런 생각들도 해요.(웃음)


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현재 시의 방향성이 이 시대의 젊은 독자들의 감수성과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일 텐데, 그것만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 시가 비교적 즉각적이고 즉효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숏폼에 시대에, 시가 짧기도 하니까. 빠르게 즐길 수 있고 우리 감각이나 정서에 가깝게 작용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말초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들으면서 기존의 해석들과 약간 반대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시라고 하면 느림의 미학, 천천히 곱씹으면서 음미하는 이런 이미지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죠. 시가 그렇게 오래오래 곱씹는 것이기도 한데,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이런 것도 있다는 거죠. 시가 젊은 독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것은, 짧고 빠르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요즘은 빠르게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선호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느리게’라는 것은 이해하고 느끼고 새롭게 보고 이런 건데, 시는 그러기 이전에 빠르게도 즐길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인기일까?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3.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한테는 시가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거에요. 시는 어떤 경이로움의 발견이잖아요. 놀라움을 마주하는 순간인건데. 시를 읽는 건 내 바깥에 있는 텍스트를 읽는 것이지만, 나의 가장 안쪽 어디선가 무언가 터지거나 깨져나가는 느낌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다른 예술은 작품이든 음악이든 기본적으로 외부의 것을 마주하고 그 존재를 더 강하게 의식하면서 어떤 것들을 향유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시는 텍스트를 읽는 순간조차도 내 안에서 어떤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시에 대한 각별함 혹은 특별함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예술이 더 강렬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다른 예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말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당연히 있지만, 시는 내 안쪽 가까운 곳에서 그 폭발이 일어나는 것만 같은 거죠.


제가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정확하게 명명해주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를 읽다보면 정확히 이해도 못했는데 뜬금없이 약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시의 매력에 대해 공감하면서 들었습니다. 그럼 시를 읽는 게 시인님을 어떻게 바꾸셨을까요? 나란 존재에 있어서 그런 시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일이 무엇을 바꾸었나. 


시인으로 만들어버렸죠, 저를. 시 안 쓰고도 살 수 있었을 텐데. 


근데 그걸 알았다고 해서 세상이 엄청 크게 바뀐 건 아닌 거죠. 좋아하는 음식이 똠양꿍이 된 사람이랑 같은 거에요. 시가 주는 감각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고, 다만 그렇게 해서 시인이 되기로 했기 때문에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시와 더불어 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시를 쓰고 나서 갑자기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한 말 아닐까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참 좋다. 



4. 스스로를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시 오타쿠’라고 표현해주신 적이 있어요. 저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빠져드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시인님은 어떻게 시에 빠져들었고, 시 오타쿠로서 지속할 수 있었나요?


시를 좋아하게 되는 거랑, 시를 계속하는 거랑은 다른 영역이기는 해요. 좋아하는 건 그냥 즐기면 되는 거고, 시 쓰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결심을 하고 결정을 해서 행위로 옮기는 거거든요. 


행위의 성격 자체가 너무 다른 일이여서, 오타쿠로서는 시가 너무 좋으니까 계속 좋아하는 거고, 시인으로 살기로 생각했던 건 결국에는 어떤 결심의 영역인거죠. 시를 통해서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고 소통을 하고 싶어 이런 식의. 시가 좋다보니 시인이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계속 열심히 매달려서 살고 있다 이런 것에 가까운 거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시인으로 살기 때문에 시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바쁘고 다른 할 일에 밀리면 좋아하는 걸 계속 못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저는 시를 어쨌든 삶의 중심에 두고 있고 계속 보고 있으니까 좋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시를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 시인으로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와 삶 사이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저울에 올려서 비교하고 생각하는 건 사람의 상황마다 너무 다른 일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습작생이 와서 고민하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취업을 하느냐 습작을 계속하느냐 이런 고민을 할 때, 만약에 정말로 글쓰기를 할 생각이 있다면 자기 삶을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끌고가는 게 맞다.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에 시랑 삶을 계속 병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하게 되죠. 시를 위해서 삶을 포기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삶 때문에 시를 버린다는 것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말이 안 되는 거니까. 


내 삶에서 시의 자리를 어느 정도 비율로 어떻게 끌고가고 유지해갈 수 있느냐. 물리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느냐의 문제부터,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생각할 때 시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둬야하는지 계속 고민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아요. 



장면 7


“그냥 시 써도 돼요.”

“……”

“어차피 부자 될 건 아니잖아요. 적당히 살면서 계속 시 쓸 수 있어요.”

“……”

 

황인찬,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본문 중에서

 

 

거짓말로 부풀리고 억지로 희망을 말하는 글보다

이런 담담함이 요즘 나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인용자)



5. 쉽게 읽히고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가 있고, 오래 곱씹어야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는 시가 있잖아요. 어느 쪽이 더 취향이세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해되는 시와 이해되지 않는 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잘 구분이 안 돼요. 둘 중에 어떤 게 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이런 구분은 없고, 잘했다 못했다 혹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좋다 안 좋다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한없이 쉽게 읽히는데, 유구한 생명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잘 읽히지 않고 오랫동안 곱씹어야 하는 시인데, 동시에 이 시가 아주 매력적이고 좋은가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거라서. 그게 얼마나 오래 읽히고, 살아남느냐 그리고 나에게 얼마만큼의 강한 인상을 주느냐는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읽히는 게 좋아요. 그게 제가 더 들어가서 해석하고 개입할만한 여지가 많더라고요. 



6.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이해 안 해도 되고, 그냥 보고 어딘가가 좋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미술전시 보면서 다 이해 안 해도 좋다고 느끼기도 하잖아요. 시도 마찬가지로 이해 이전에 감각의 층위에서 즐기도록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걸 즐긴다면 중요한건 이미 즐긴 것이다.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가 말로 되어있으니까, 다 알아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데, 사실은 우리가 삶에서 접하는 모든 말들을 다 이해하고 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것 같아요. 이해는 차후의, 후순위의 것이고 우선은 그냥 보고 즐겁게 느끼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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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시는 걸로 보여요. 책에서도 에반게리온을 언급해주셨고요. 다른 장르들이 글에 주는 영향도 있나요?


있어요. 게임자체는 좀 덜한 편인데 서브컬쳐든, 다른 양식이든 아주 예민하게 당대의 정서나 분위기를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보고 이걸 사람들이 왜 좋아하지 생각하는 일이, 제가 작업을 할 때 도움이 크게 돼요. 다른 사람의 작품도 시대에 대한 고민이잖아요. 그걸 시나 문학과는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거죠.


오히려 다른 시는 참고가 잘 안 돼요. 이미 그 사람이 언어로 고도화시키고 정제해놓은 거라서 그건 그 사람의 것이지 제가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다른 양식은 내 방식대로 언어화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가 있어요. 보다보면 내 시에서는 이걸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있는 편이죠. 


요즘 관심 있게 보는 장르나 재밌게 보고 있는 것들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저 요즘 T-POP, 태국 아이돌 음악 듣고 있어요. 태국이 확실히 경제규모가 좀 되는 것 같아요.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것 같던데, 그러면 음악을 포함한 문화 쪽에서도 급성장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괜찮은 형태의 팝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저 20대 초반 때가 k팝이 급성장하던 시기였어요. 빅뱅도 나오고 이것저것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시기라서 좋아했었는데 태국은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한국 아이돌중에서도 중국일본 빼면 지금도 태국출신이 많고 성취가 크거든요. 재미있어요.



8. 식물에게 애정을 주고 건강하게 길러내는 마음은 삶과 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한테는 약간 식물이 잘 자라는걸 볼 때의 고마움과 기쁨 같은 게 있거든요. 그냥 그게 좋은 거에요. 너무 예쁜 식물이 있고, 심지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자라기까지 한다는 거. 무언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성취감이 있어요. 


그 기쁨이 일단 크고, 사실 식물을 키우는 삶이 되었다고 크게 삶이 변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5일 이상의 긴 여행은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습도를 신경 써야하고, 써큘레이터를 돌려야하고. 좋아하는 것과 신경써야하는 것이 생기면서, 해야 하는 일이 조금 늘었고 삶의 방식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그런 정도인거죠.


그리고 내가 욕망에 얼마나 취약한 인간인가를 느끼게 됐어요. 제가 물욕이 별로 없거든요. 사 모으는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게 없는 편인데, 식물을 들이고 시작하면서 이것도 예쁘고 갖고 싶고 견물생심이 생기더라고요. 식물은 뭔가 더 갖고 싶게 만들어서, 내가 이렇게 약하구나 이런 생각도 해요. 



9. 시가 잘 안 써지는 순간도 있나요? 그럴 때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비법은요?


항상이요. 그냥 쓰는 거에요. 안 써진다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걸 한다고 나아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다른 행사에서도 이런 질문 받으면 다른 거 쓴다고 말해요. 이게 안 써져도 다른 건 써질 수 있으니까. 그러다 다 안 되겠으면 메모장 켜서 새로 쓰기라도 한다. 쓴다는 걸 멈추지는 않고 다른 걸 시도해보려는 편이에요. 하나가 잘 써지면 그 기운을 받아서 나머지도 써질 수도 있어요. 계속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저는 어디에 쓰는지도 영향이 크더라고요. 손으로 쓸 때, 노트북이나 핸드폰 메모에 쓸 때 전부다 달라서, 양식과 형식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손으로는 전혀 못 써요. 키보드가 없으면 작업을 못해요. 핸드폰으로도 문장 정도만 떠올려서 메모해두는 정도고, 아예 시를 쓸 때에는 시집 판형에 맞춰놓고 쓰는 편이에요. 거기에 안 맞추면 나중에 시를 낼 때 시가 깨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옛날 시집들은 그런 경우가 특히 많은데 한줄한줄 이어지는 시인데 한두 글자씩 넘어가서 거의 모든 행이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그게 줄을 염두에 안 둬서 벌어지는 참사에요. 그러면 그대로 두거나 시를 아예 고치거나 해야 하는데 둘 다 어렵죠. 형식에 맞춰서 모양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러면 문제가 호흡이 좀 굳어요. 시의 길이가 비슷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면 매너리즘에 빠진 거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시의 길이를 신경 쓰는 경우도 있어요. 연속으로 동일한 길이의 시가 나오면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기 때문에(웃음) 시집 전체를 생각하면서 다양한 시가 나오도록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10. 작업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시는지 궁금해요. 일상에서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면 그때그때 쓰시는지, 하루키처럼 정해진 시간과 분량을 정하시는지 알려주세요.


예전에는 작업 루틴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프리랜서로 하다보면 컨트롤이 잘 안돼요. 저는 지금 라디오 DJ도 하고 있고 강의도 하다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여기저기 빼앗기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나고 짬이 날 때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을 빼서 확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제는 루틴이 아예 없어졌어요. 


이제는 옛날처럼 앉아서 음악을 얼마만큼 듣는다거나 책을 얼마간 읽는다거나 이런 것들이 없고, 마감이 발등에 불 떨어지면 한글 창 켜서 으아아- 쓰다가 모르겠으면 한글 창 닫고 이런 편이에요.(웃음) 일을 계속 하다보니까 빠르게 집중해서 글을 써내고 빠져나오고 이런 식으로 적응이 되더라고요. 


집중할 때 와다다- 쏟아내시는 게 가능한 편이세요? 아니면 평소에 드는 생각들을 단서를 적듯이 모아뒀다가 시를 쓰는 편이세요?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야 시가 써져요. 한글 창을 켜야 생각이 나요. 이건 안 바뀌었어요. 한글 창 앞에서 계속 보고 쓰고 지우고 쓰고 하면서 그 시간을 오래 보내야 하는 편이에요.


그럼 한 자도 못 쓰는 날도 있나요? 시가 잘 안 써지는 날이라든지.


거의 그렇죠.(웃음) 시는 몇 줄 안 되니까, 보통은 한 줄도 못 나갈 때가 많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장면이 걸려 오르면 그때 서너 연 쓰고 이렇게 가는 거죠. 근데 그게 며칠 걸리거나 일주일 걸리거나 더 걸리거나 그런 거죠. 


그런데 그러면 부채감이 들 때도 가끔 있을 것 같아요. 시인님들 산문집 보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이게 약간 이상한데, 내가 시를 못 쓰고 있다는 거를 시인들이 약간 부끄럽게 여겨요. 사실은 시가 써지면 쓰고 안 써지면 안 쓰고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시인이니까 항상 시를 써야하고 항상 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게 있더라고요. 


시인으로 산다는 거,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에 글쓰기를 두기로 정했다는 거고 사실은 그걸 위해서 이미 어떤 것들을 내가 포기한 상태거든요. 근데 이거마저 안 하면 난 없는 거야. 이런 부담감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면서 다들 뭔가 시키지도 않은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부담을 덜 느끼시는 편이신가요?


항상 느끼죠. 근데 사실 다른 거 다 그만두고 시만 쓰고 싶지만 전업시인은 불가능하니까, 항상 괴로워하면서 ‘시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죠. 그래도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해요. 조바심 내지 말고 꾸준하게 쓰자. 내 호흡을 바꿔가면서 지치지 않게 꾸준하게 쓰는 걸 목표로 하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비교적 괜찮지만, 요청받는 일도 많잖아요. 어느 시간까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잘 해낼 수 있어야 프로가 되는 건데, 되게 어렵더라고요. 


근데 그게 고마워요. 생각보다 큰 힘이 되고. 마감이 원고를 끝낼 수 있는 다짐을 하게 해줘요. 결심을 하게 해줘요. 안 그러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줄 알고 오래 붙들거든요. 근데 마감이 있으면 지금의 나는 어차피 그 이상 못해. 지금의 나는 거기까지야. 그러니까 이 약속을 지켜야 해. 그게 맞아.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내가 아무리 아쉬워도 그래 여기까지가 나인가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자. 그렇게 끝을 내고 원고를 보내고. 이거를 계속 반복해야 앞으로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마감이 있는 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감 없이 언제까지나 그냥 내가 나중에 더 좋은 생각이 나겠지 이 생각으로 버티면, 좋은 생각이 나기는커녕 시간만 허송세월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오히려 덕분에 다짐을 하고 앞으로 나갈 수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11. 시를 쓰다보면, 작품을 하다보면 멈춰서 ‘임의의 결말에 도달해야 하는 순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매리 올리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를 너무 많이 씻기다보면 개가 개다움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세상에 내보이는 시점을 판단하기도 어렵더라고요. 시인님은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더는 못 하겠다.(웃음) 더는 고치거나 뺀다거나 할 만한 것이 생각이 나지 않는 시점이 작품에서 발을 빼는 순간이여서, 그렇게 끝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임의의 결말이라고 하면 시의 마지막 장면 혹은 마지막 연 혹은 장면 같은 걸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시의 중간쯤에 떠올라요. 쓰다보면 구조가 잡히고, 토대가 잡히고, 어떤 식으로 가야할지가 방향성이 잡히잖아요. 구조에 대한 감각인거죠. 


이전 작품을 돌아보면서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건 그때 쓸 수 있는 최대치이고, 지금의 내가 다시 쓴다고 더 좋은 시가 될 가능성은 좀 낮게 느껴져요. 단어 한두 개나 행간이나 자잘하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자잘한 손질 같은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도, 그때 나의 최대치였기 때문에 지금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어나 연을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 신작에서 낭독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낭독은 쓸 때 의미의 단위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단락과 다르게 읽어야하는 부분도 있다 보니, 소리 내서 읽으니 완전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순간들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도 있을까요?


문학이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활자로 이루어진 지면에 담겨있는 거라서, 낭독을 할 때는 분명히 다른 호흡을 가져야하고 다른 메커니즘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걸 시를 낭송하기 위해서나 낭독용으로 만든 건 아니라서 다른 형태를 꼭 가져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가지 않고 있고요. 그래도 나중에 매체가 바뀌면, 지금도 지면에서 화면으로 많은 것들이 넘어가고 있는 시대이잖아요. 화면예술로 많이 넘어가다보면 뭔가 바뀌는 게 적절한 경우들도 분명히 생기겠지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거죠.


오늘 만나서 함께 시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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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며>

 

시인을 만나고 난 후 무언가 달려졌다고 느낀다.

시의 아름다움을 그냥 즐기면 된다던 그 말이 나를 바꿔놓았다.

 

시인을 만나고 온 다음 날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밥을 먹고 쓰러지듯 잠에 들었고, 새벽에 깨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몇 권의 책이 아른거려 오랜만에 책상 위에 꺼내두었다. 시는 무엇인지를 한참 묻고 돌아온 길이었으므로, 우리가 어떻게 작품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 골몰하다 돌아온 길이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레 몇 권의 책을 올려두고 인터뷰를 정리하며 함께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다보니 영문도 모를 눈물이 났다. 시인을 만나고 난 후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시의 아름다움을 그냥 즐기면 된다던 그 말이 왜인지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읽고 쓰다보면 정학하게 이해하고 싶어지고 자꾸만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기분이었다. 


작품을 보는 눈에 어느새 허영과 허세 같은 것들이 끼어버렸던 걸까. 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를 꼭 읽지 않아도 된다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의 말이 주는 울림이 있었다. 시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사실 대단한 노력이나 공부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시와 삶의 균형을 맞춰가며 그 아름다움과 더불어 살아가면 된다.


시인을 처음 만난 두 번의 경험은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옮겨놓았다. 이번 만남에는 마치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났던 시, ‘무화과 숲’을 봤을 때처럼 마음 속 깊은 구석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울림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시를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꼭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에서 시적인 순간들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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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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