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쁜 일상 속 쉼터,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으로 오세요! [공연]

뮤지컬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글 입력 2024.07.2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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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건네주는 희극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연남동빙굴빙굴빨래방_포스터_최종 copy.jpg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뮤지컬 제목부터 귀엽다. 의태어 '빙굴빙굴'은 왠지 최유리의 '동그라미'란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대로 나 모진 사람이 된 것 같아, 이 걱정의 말을 해"] - 최유리 '동그라미'

 

모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아직 어린 것인지, '모질다'라는 뜻이 어려운 것인지 크게 와닿진 않는다. 실제로 '모질다'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참고 견디기 힘든 일을 능히 배기어 낼 만큼 억세다.'와 '괴로움이나 아픔 따위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에 눈길이 갔다. 참고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고 때론 아프지만 그럼에도 해내야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을 찾는 손님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가진 채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반려견 진돌이와 함께 파란 대문의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장영감, 성형외과 의사이자 기러기 아빠 대주, 보일러 수리공 남편의 아내이자 딸을 육아하고 있는 미라, 드라마 보조작가로 힘든 일상을 버티는 여름, 버스킹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하준, 그리고 행복한 일상히 한순간에 불행한 일상이 되어버린 대학생 연우. 이 여섯 인물들은 각자의 고민을 빨래방의 녹색 다이어리에 적고 답글을 기다린다.

 

대주는 왜 이 넓은 주택을 아버지 혼자 다 사용하시려고 하느냐, 일부는 카페를 열거나 세놓아도 되지 않느냐 등 아버지 장영감과 연남동 단독 주택을 두고 다툰다. 또, 대주 아들 수찬의 유학비를 대줘야하는데 아버지 장영감에게 도저히 유학비를 빌려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불법적인 대진 수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미라는 집에서 쉬면서 육아를 하다가 남편 혼자 보일러 수리공을 하면서 번 돈으로는 생활이 턱 없이 힘들어지자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일을 찾기란 쉽지 않고 남편 직장과 거리가 멀어질 것이 두려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여름은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하면서 공모전 결과만을 기다리는데 번번이 떨어지기만 한다. 그때 마침 버스킹 공연을 보게 되는데, 관객이 없는 거리에서 본인만의 예술을 하고 있는 하준을 응원하고 싶어 돈을 넣어준다.

 

연우는 남자친구의 카톡 내용을 보고 행복한 사랑이 한순간에 무너져 불행 속을 걷는다. 게다가 연우가 문제라는 식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려 상처를 받는데, 그때 연우에게 뜻밖의 고양이 손님이 찾아온다.

 

이들의 고민 해결의 중심에는 '녹색 다이어리'가 있다. 장영감, 대주, 미라, 여름, 하준, 연우는 빙굴빙굴 빨래방에 찾아가 녹색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다이어리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받기 시작한다. 익명의 다이어리. 누가 가져다 놓은지도 모르는 일종의 방명록 같은 다이어리. 그러나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물건이 진심을 전해주기도 한다.

 

나는 다이어리 등장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다. 다이어리에게 이름을 붙여줄 만큼 다이어리와 친숙하다. '나만의 아날로그 공간'이라 칭하며 마음 한 켠에 쌓아두었던 고민을 다이어리에게 털어놓는다. 다이어리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경험이 많은 나는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의 녹색 다이어리에 쓰일 진솔한 고민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희극을 만들기 위해 비극을 견디고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섯 인물들도 각자의 삶을 비극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꿋꿋이 쇠똥구리가 똥을 굴리듯 삶을 굴려 나간다. 언젠가 마주할 달콤한 희극을 위해서. 다이어리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서로 코멘트를 해줌으로써 위로의 말을 주고받는다.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빨래방'이라는 장소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의지할 수 있는 쉼터가 아닐까. 또 어쩌면 이 또한 희극의 일종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삶은 참 값지고 소중하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충실히 살아가다가 보면 분명 지치는 순간이 온다. 힘듦을 이겨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결국 사람을 통해 다시 피어나는 것. 원작 장편소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이 뮤지컬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순탄치는 않았을 테지만, 따뜻한 감성과 위로, 그리고 한 층 더 깊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주기 위해 뮤지컬로서 관객들 앞에 섰다.

 

최유리의 '동그라미' 가사처럼 자신이 모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빙굴빙굴 빨래방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가까운 빨래방을 방문해보자. 어쩌면 그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럼 이제 궂은 때를 깨끗이 빨아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마주하자.

 

 

[양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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