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보면 다르게 보여 – 무서운 그림들

글 입력 2024.07.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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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들_평면표지.jpg

 

 

원인 없는 결과는 없듯, 모든 그림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왜 그렸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림, 소설, 음악 등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가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면 작품 감상이 쉬워진다. 작가의 경험을 이해하고 나면 기괴하고 무서워 보이는 작품이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경이로워지기까지 한다.

 

작가 이원율씨는 우리가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명화들을 바탕으로 작품은 물론 작가에 얽힌 이야기들을 책 속에 함께 담았다. 문득 대학교 교양으로 듣던 서양 미술사를 교과서처럼 외우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시험을 쳐야 돼서 급하게 머릿 속에 넣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는데 스토리텔링으로 만날 수 있어 한층 더 새로웠다.

 

이원율 작가의 교양 미술서 ‘무서운 그림들’은 제목 그대로다. 무서운 그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당시 작가들은 어떤 연유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총 네 가지(삶과 죽음 사이, 환상과 현실 사이, 잔혹과 슬픔 사이, 신비와 비밀)의 카테고리들로 나뉘어 그림을 소개한다. 명화 속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숨결을 하나씩 느껴볼 수 있다.

 

 

 

예쁘기보다는 기억에 남는 것이 그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 삶과 죽음 사이 카테고리에서는 휘슬러의 [흰색 교향곡 1번, 하얀 소녀]가 기억에 남는다. 휘슬러의 작품을 보면 순결의 상징인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흰색 연료는 납을 얇게 잘라 식초에 절인 뒤, 동물의 분뇨를 채운 항아리에 삭혀 채운 것이다. 또한 납이 증기로 바뀌고 분뇨에서 탄산이 만들어져 그 가루가 생겨 빻아 말려야 연백색의 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납이 중금속이기 때문에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휘슬러가 그린 히퍼넌의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실상은 생명을 깎아가며 만든 작품이었다.


두 번째 내 뇌리를 찌른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난파된 배 위, 사람들의 모습에서 분노, 절망, 좌절이 고스란히 마음 깊숙한 곳 까지 전해진다. 제리코는 우상인 미켈란젤로처럼 대작을 그리고 싶었고, 무엇을 그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메두사호의 비극’에 대해 알게 된다. 뗏목 생존자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들었으며 뗏목 모형, 사망자의 모습 재현을 위해 밀랍인형을 들고 와 어떤 모습이 좋을지 연구했다. 메두사 호의 뗏목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사건에 대해 연구한 제리코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당시 작품의 가치보다는 정치 논쟁거리로 변질되어 안타깝지만, 제리코는 풍속화를 역사화로 그린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환상과 현실 사이 - 두 번째 장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는 아르침볼도가 기억에 남는다. 궁정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4원소 연작’은 처음 보면 기괴하고 섬뜩하다. 황제의 초상화가 사슴, 산양, 토끼, 사자 등 동물들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본래 사진 찍듯 정직하게 그리는 것이 아닌가? 콜라주를 한 듯 동물의 형태를 모아 왕을 표현했다면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허나 황제는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좋아했다. 재밌는 그림이라고 까지 말했다. 그림에 진심이었던 아르침볼도와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 황제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던 일이었다.

 

잔혹과 슬픔 사이 -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은 분명 무서운 일인데 이 모습이 왜 아름다울까?

 

 

‘햄릿’ 4막 7장에 햄릿의 어머니이자 덴마크 왕비인 거트루드가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애가 화관을 나뭇가지에 걸려고 버드나무에 올라갔는데 그만 가지가 부러지면서 시냇물에 빠지고 만 거야."

 

"그 애는 옷자락이 활짝 펴져서 마치 인어처럼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동안 옛 찬송가를 불렀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옷이 물에 잠겨 무거워지자 가엾은 그 애는 진흙 사이로 끌려 들어가고 아름다운 노래도 끊어지고 말았어."

 

햄릿 오필리아 中

 

 

창백한 표정의 여인이 꽃을 쥐고 팔을 벌린 채 둥둥 떠 있다. 손 주변으로 쥐고 있던 꽃들이 퍼져나간다. 수풀로 둘러싼 강가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회화로 옮긴 작품 오필리아다.

 

밀레이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야생화는 어디에서 피는지 물 위에 뜬 잎과 나뭇가지는 어디에서 흘러가는지, 철저하게 연구했다. 그림에 진심이었던 탓일까. 오필리아를 그리기 위해 대역이 되어 주었던 19세 모델 시달은 양철 욕조에 들어가 오필리아를 연기하다 폐렴에 걸려 죽을뻔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신비와 비밀 사이 - 4장에 나와있는 화가들 중 오딜롱 르동은 개인적으로 책이나 매체에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관심이 없었을 수도. 그래서 그의 삶에 대해 눈여겨봤다. 오딜로 르동은 일찍이 지병 때문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아 상처가 많아 도피처가 필요했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며 건축가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떨어졌으며, 사실주의 미술의 대가 레옹 제롬의 제자로 들어갔지만 적응에 실패한다. 자존감이 바닥이 칠 때,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자고 다짐하며 어두운 화풍에서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작품 키클롭스는 외눈박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전에도 어두운 그림을 그렸지만 화풍이 바뀌며 르동이 그린 그림은 화사하고, 예쁘다. 언뜻 보기엔 무서운 외눈박이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눈으로 태어났어도 세상을 더 많이 바라볼 수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작가가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 변화할 때, 그림도 함께 바뀌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네 장의 카테고리에서 다루어진 명화 속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몇백 년 전으로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르고 봤다면 몰랐을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미술관에 가기 힘들다면 이원율 작가의 설명을 따라 책 속 명화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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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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