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사상과 영혼의 얽매임(1)

글 입력 2024.07.26 1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world02.jpg

[illust by Yang EJ (양이제)]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중 첫 번째, '사상'입니다.


첫 글부터 너무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상이란, 특히 우리나라에선 단어 본래의 뜻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쉬우니까요. 사상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용사를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불온한'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단 두 글자지만 사상에는 겨우 두 글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아픔이 얽혀 있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딴 길로 샜습니다만, 그럼에도 오늘의 주인공은 사상입니다. 오늘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던 중 저는 조금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학창 시절 한문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은 몇 차례 '부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이 한자에서 부수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할 줄 알아야 한자의 뜻, 어원 혹은 소리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옥편에서 원하는 한자를 찾을 때도 부수가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한자의 양은 너무나 많고, 그 방대한 문자들의 모음에서 원하는 글자를 찾기란 어려운 일인데 부수가 그 시간을 절약해 준다고요. 예를 들어 물 수(水,氵) 자를 부수로 쓰는 한자들은 대체로 물과 관련된 뜻을 지녔을 가능성이 큽니다.(강 강江, 바다 해海, 시내 계溪)


재밌는 점은 사상을 구성하는 한자인 생각할 사思, 생각 상想 모두 부수로 마음 심心 자를 쓴다는 겁니다. 이는 서양과 구별되는 한자 문화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데요. 생각은 머리·두뇌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서양과 달리, 한자를 주 문자로 사용하던 동양의 많은 나라들은 생각이 마음으로부터 피어난다고 이해했기 때문일 겁니다. 신체의 중심을 머리가 아닌 마음, 즉 가슴으로 두었던 것이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슴 속 깊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이러한 해석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사상을 행동을 결정해 주는 이론 지침서인 동시에 마음, 더 나아가 영혼과 묶인 단어로 보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을 최근 아트인사이트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가 이내 책 속의 인물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단숨에 결말까지 다 읽고 말았습니다. 소설을 워낙 재밌게 읽었다 보니 자연히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원작인 소설에선 주요 인물끼리의 로맨스와 남자 주인공인 '로버트 킨케이드'의 순정이 두드러졌다면, 영화는 카메라 초점을 여자 주인공인 '프란체스카'에게 두어 프란체스카가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이를 위해 원작에 없던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되었지요.) 그를 통해 프란체스카의 아들은 자신의 아내를, 딸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프란체스카는 육식 위주의 아이오와주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식을 위해 1년간 정성껏 기른 소를 경매에 부치고 도축장에 보내는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아이오와의 방식에 익숙하고, 마을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기에 프란체스카는 조용히 이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문은 열고 닫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문을 여닫는 강도는 중요하지 않고,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느린 탱고 음악에 맞춰 춤추기보단 다 같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가족들 틈에서 프란체스카는 외롭게 영혼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프란체스카의 공허함을 배우 메릴 스트립의 연기로 더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화에서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만났을 때와 가족들의 틈에서 일상을 이어 나갈 때의 표정은 명백히 다르지요.


사상이 영혼과 묶인 단어라고 주장하는 데는 바로 이 프란체스카의 표정에 있습니다. 표정은 감정, 즉 마음의 발현입니다. 프란체스카가 스스로를 시대에 뒤떨어진 마지막 카우보이라 부르는 로버트에게 왜 이끌렸는지에 대해 주목해 보겠습니다. 프란체스카가 하루하루 육식을 요구하는 아이오와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을 좋아하며 문호들의 시를 즐겨 읽는 것을 단순히 프란체스카의 취향이 그런 거니까라고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서로 강렬하게 이끌린 것은 취향이 겹쳐서뿐만이 아니지요. 둘의 사상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 태그,양은정,양이제.jpg

 

 

[양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