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 연극 까마귀 클럽

글 입력 2024.07.26 15: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였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모두를 자극하는 웃음 포인트들도 제대로 공략한 그야말로 잘 짜여진 각본과 연출이었다.


["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극 중 지원초이를 끌어드렸던 까마귀 클럽 초대 문구는 나에게도 와닿았다. 평소에 화를 잘 내는 편이라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또, 건강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던 터라 나도 모르게 지원초이가 까마귀 클럽 입회 신청서를 작성하듯, 이 연극을 보러 갔던 것 같다.

 

 

[포스터] 연극_까마귀 클럽_예술공간 혜화.jpg

 

 

까마귀 클럽 멤버들, 그러니까 지원초이, 워리, 프로틴, 그리고 회장인 별님은 모두 화를 잘 못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안에 속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사람들의 화만 마주해도 받아들이기만 했던 사람들. 그야말로 감정적 약자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화를 분석하고 연습하기 위해 모였다. 서로에게 화를 내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공유한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화 내기도 하고, 각본처럼 짜여진 상황 속에서 연습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용기를 얻는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고, 그것을 경청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그 자체로 까마귀 클럽은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


모순적이게도 계속하여 까마귀 클럽 안에 속하기 위해서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화를 잘 내게 되는 순간, 더 이상 까마귀 클럽은 필요가 없어질 것이며 그럼 다시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와 '우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공존할 수 없고, 그 속에서 그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KakaoTalk_20240726_151456928.jpg

 

 

사실상 화를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 않는가. 애초에 어떤 감정을 억지로 이끌어내고, 연습하고, 훈련한다고 해서 그 감정에 능숙해질 수 없다. 보다 초연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분노 속에서 그들은 되려 분노 속에 갇히는 듯 하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화를 내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달까. 목적 없는 분노는 무섭다. 왜, 누구에게,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화를 내는 방법만 터득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마 극 중 마지막 장면에서 별님이 유진초이에게 화를 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진초이가 화를 잘 내게 됨으로써 우리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과 동시에 상대의 목적 없는 분노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 분노는 결국 분노를 낳게 된다.

 

 

KakaoTalk_20240726_151544918.jpg

 

 

그렇게 또 다시 까마귀 클럽의 멤버는 셋이 된다. 유진초이가 들어가기 전에도 누군가가 들어갔다 나갔다 했으니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세 명의 멤버는 또 새로운 멤버를 구하는 공고를 올렸다. 아마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계속하여 넷이 되고 싶어할 것이다.


까마귀 클럽의 존재 이유는 아마 이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화를 잘 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 '함께이고 싶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화를 잘 내고 싶기 보다는, 자신이 하는 말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극의 내용 외부의 것들에 대해서도 덧붙히자면, 배우의 연기, 조명, 음향 모두 좋았다. 첫번째 공연이었던 것을 모를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훌륭했다. 음향과 조명 역시 적재적소에 알맞게 잘 쓰였다. 극의 몰입을 잘 도왔던 것 같다.

 

특히 화를 내는 차례가 되었을 때 켜지는 지지직하다 밝아지는 조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윤영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