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yrinth] 흐려진 기억을 좇아서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을 캔버스에 담다
글 입력 2024.07.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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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주로 다루었던, 불안이라는 주제를 잡아가며 조금 다른 주제로 작업했던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작업은 기억을 주제로 했던 그림입니다.

 

어른들이 주로 말씀하시는, '그때가 좋은 때야.'라는 말을 다들 들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린 시절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기반이 되어 비교적 좋은 시절일 수 있으나, 모든 세대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유치원에서 친구와 다툰 경험이 너무도 두렵게 느껴질 수 있고, 청소년에게는 망친 수행 평가가, 사회초년생에게는 작은 호칭 실수가 가슴에 돌처럼 무겁게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들, 혹은 그마저도 좋았던 추억으로 보정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고, 미화됩니다. 이렇게 흐려진 기억들은 살면서 얻어온 다른 감정이나 경험들과 뒤엉켜, 파편처럼 뇌리에 흩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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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시리즈 작업을 위한 드로잉

 

 

여러분은 기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단어, 혹은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도 저와 함께하는 애착 인형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에는 어디를 가나 가지고 다녔고, 조금 크고 나서는 제 방 한 켠에 위치하며 저의 모든 생활을 지켜본 인형은 저의 기억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현재까지도 제 곁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추억이자, 동시에 현재입니다. 제 기억의 일부로 항상 존재해온 인형을 캔버스에 그려보고자 했고, 단순히 똑같이 묘사하기 보다는 기억이라는 큰 주제와 접목시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기억(1), 90x72, 캔버스에 혼합재료.jpg

 

기억(2), 90x72, 캔버스에 혼합재료.jpg

[기억] 시리즈, 91 x 72 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22.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기억] 시리즈입니다.

 

첫 전시를 함께했기에 더욱 뜻깊은 그림인데, 아크릴과 건식 재료를 섞어서 사용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작업입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인다고 하죠. 이처럼 괴로웠던 것들은 잊혀지고,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주로 남기는 기억의 특성을 살려 메인이 되는 색을 분홍색으로 정하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억이라는 실체가 없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딱딱하기 보다는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 물의 양을 늘려, 여러 번 덧칠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파편처럼 흩어져 우리의 머릿속 한켠에 자리잡는 기억들은 별이 폭발하여 가루가 되는 것처럼, 폭발하는 이미지를 연상시켜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단순히 애착 인형에서 그치지 않고, 기억 속의 흐릿한 이미지와 감정 또한 표현하고 싶었기에 감정의 창인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것과, 애착 인형을 그리는 작업을 병행했던 것 같습니다.

 

시행 착오가 많았던 그림인 만큼 애착도 많지만, 동시에 과거에 그린 그림을 꺼내보는 일이 오랜만이었기에 작업을 소개하면서도 부끄럽기도, 즐겁기도 한 기분이었습니다. 전시작이라는 목표를 잡고 시작했지만, 나의 기억에서 어떤 것이 결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나에게 잘 맞는 작업 방식이 무엇인지 오랜 기간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던 작업이었기에 매우 뜻깊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는 무엇이 무게감 있게 자리 잡고 있나요? 그것은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단단한 무언가인지, 혹은 이미 파편화되고 흘러내린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그간 가지고 살아왔던 기억과, 그를 토대로 한 자아를 더욱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마가 시작되어 매일같이 날이 궂습니다. 실내에 조용히 앉아, 기억의 일부를 끄집어내어 흔적으로 남겨보는 일을 권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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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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