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주보다 무겁고 탈출보다 질주하며 탈북보다 모호하게 [영화]

글 입력 2024.07.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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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주(2024, 이종필)는 자유이념에 사로잡힌 북한군 병사 규남의 탈주와 국가에 타협한 보위부 장교 현상의 추적을 액션극으로 그리고 있다. 두 개인이 이념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사보다 질주와 존류의 이미지로 채워나간 점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규남은 탈주를 계획할 때부터 지뢰밭을 건너갈 때까지 처절하게 질주하는데, 그가 탈주에 성공하는 것을 넘어 관객들에게 거침 없는 질주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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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주>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주와 존류의 이미지 


 

영화는 주인공 규남의 도주, 탈출, 탈북이 아닌 ‘탈주’를 선택했다. 도주보다 무겁고 탈출보다 질주하며 탈북보다  모호하게 탈주하는 그의 형상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규남은 구체적인 이유 없이 총과 칼도 지니지 않은 채 갈대밭, 푸른 들판, 지뢰밭을 가리지 않고 달음박질하고 있다. 그저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정하기 위해서, 마음껏 실패하고 싶다는 일념 아래 ‘탈주’ 자체가 목적이자 목표가 되었다. 뛰고 있는 규남은 한걸음 한걸음 도전하고 있으며 실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에 비해 현상은 뛰지 않는다. 그는 규남을 잡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도 전화로 지시를 내리고 차 안에서 결과를 기다린다. 더하여 깔끔한 포마드 머리에 물티슈로 손을 닦고, 립밤을 수시로 바르는 등 용모에 신경 쓰고 있다. 거침 없는 군인들 사이에서 거치는 것이 많은 현상은 현재를 살고 있으나 현재를 멀리하고 있다.

 

또한 앞만 보고 달리는 규남과 달리 규남과의 어린시절과 규남의 아버지 유품까지 기억하고 자신의 러시아 유학시절을 잊지 않은 듯 보인다. 그는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하급 군인에게 소리쳤지만, 과거에 존류하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증명하며 보위부 장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쫓기고 쫓는 와중에 그들은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마주한다. 규남은 지금의 현상을 보며 10년 동안 군생활했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현상은 규남의 질주를 보며 러시아 유학시절 피아니스트 생활, 의문의 남자 민 등 과거의 자유로웠던 찰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스코프 시야로 규남을 조준하는 현상은 쏠 수 있음에도 쏘지 않고 과거의 자신과 닮은 그를 바라본다. 규남을 쫓아 혼자 지뢰밭을 질주하며 항상 외면해왔던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마주했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은 과거의 자신을 보내주듯 규남을 남으로 놓아준다.

 

그들은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야 서로가 서로의 자극제가 되어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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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밭길 앞 청춘에게


 

클로징 시퀀스, 남에 정착한 규남은 북초소에서 듣던 양화대교를 질주하며 청년창업지원금 대상 문자를 받는다. 북에서 탈주에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뛰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쭉 뛰고 있을 것 같다. 그가 계속해서 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규남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남한에 도착하기 위해 지뢰지도를 만들었다. 이틀 뒤 비가 올 것이라는 하급 군인 동혁의 예상에 맞춰 비가 오기 전 지뢰밭을 통과하기 위해 질주하지만 규남은 늦었다. 유일하게 희망을 품었던 지뢰지도가 쓸모 없어지자 그는 지뢰와 총알폭격을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포기하기는 커녕 죽기 살기로 달리는 규남은 이상하리만큼 지뢰를 밟거나 총알을 맞지 않는다. 일명 주인공버프로 불릴 만한 씬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달리는 이를 위한 희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리네 일상 같은 규남은 희망을 봤기에 계속해서 달린다. 영화는 규남처럼 지뢰밭길 앞 청년들에게 마음껏 질주해보라고 외치고 있다. 도망친 곳이나 남아있는 곳에 낙원은 없지만 희망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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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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