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이 아닌 것들의 독창성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글 입력 2024.07.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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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 예술이 없다?


 

본격적인 여름을 느끼면서, 전시 <이곳에 예술은 없다>를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제목에 비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터가 보인다. 이 캐릭터가 어떻게 이런 전시명을 달고 '예술'의전당으로 입성할 수 있게 된 걸까.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잔뜩 궁금함을 안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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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전시장에 도착해서부터 벽엔 "NO ART HERE"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손 조형물이 벽에서 튀어나와있고, 액자는 알록 달록한 벽에 삐뚜르게 누워(?)있다. 보통의 화이트 큐브하면 생각나는 작가와 작품 소개로 가득 찬 전시장의 초입, 하얀 벽, 핀 라이트, 금박 액자, 어려운 미술사와 용어 따위는 이곳에 없다.

 

대신 이곳엔 이미지가 있고, 입체가 있으며, 단어가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이 전시장에 존재하는 스크린은 작가의 인터뷰 뿐이라는 것이다. 난해한 미디어 아트가 아닌, 작가의 얼굴, 친절한 자막,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의 인터뷰 영상이다. 영상 속 작가는 자신의 예술관을 설명한다.

 

주요한 도약점이 된 전시, 만나게 된 사람들, 최고의 칭찬, 조금씩 작업실의 크기를 넓혀가며 느낀 성취감과 즐거움,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 이 모든 것은 결코 미술계 내부의 폐쇄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터뷰를 보는 누구나 일과 예술, 삶, 돈, 성장과 같은 인간적인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이었다.


이게 예술의전당에서 예술이 아닌 작품을 만든 작가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흔히 예술이라고 칭하는 방식을 단호한 어조로 아니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예술가의 삶에 진심으로 임하며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작가와 작품의 방식에서 보이는 단순함에는 보다 다층적인 레이어가 깔려있음을 여기서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의 완성?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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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앞에 잠깐 소개했듯, 작가는 관찰자가 자신의 해석으로 작품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 중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젠 작품의 의미를 추리해보면서 전시를 관람해보고자 했다.


먼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소년의 캐릭터이다. 좀 더 자세하게는 크고 울멍이는 눈으로 순진하게 웃는 얼굴의 소년이다. 신체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종종 동물, 대중적인 캐릭터와 하이브리드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밝고 순진한, 비현실적인 톤 앤 매너가 느껴지지만, 작가의 또 다른 특징인 캘리그라피 내용은 반대로 굉장히 현실적이며, 냉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키치함이란 맥락에선 익숙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닌 듯한 이 작업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고민 하던 중 문득 작품 앞에서 정말 즐겁게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여기서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스크린이 있었구나. 이 전시장에 존재하는 스크린은 작가의 인터뷰 뿐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작가와 전시장의 통제조차 벗어난 스크린이 있구나. 어쩌면 이 개인의 스크린이 전통적인 전시맥락에서 예술이 예술이 아니게 되는 지점이고, 작가는 이것을 한번 더 꼬아서 이것도 예술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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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그러고 보니 다른 전시장보다 포토존에 대해서 너그러운 것을 넘어 권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전시 운영 인력분들도 사진에 있어서 전혀 제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 포토스팟, 공간이 가득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표정에도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의 작품은 형식에 있어 유사성에 대한 비판이 있다.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관객이라면 사실 카예하가 만드는 이미지가 이미 너무나 익숙한 문법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차용 전략, 혹은 독창성의 편승은 역으로 예술계의 낡고 속물적인 정신을 풍자하는 개념 예술가로 해석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난 이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의 작품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말 자체, 혹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예술계 내외부의 비웃음, 뭐가 되었든 즐거운 관객들의 플래쉬 세례, 덕분에 퍼져나가는 카예하의 이미지. 이 모든 레이어를 느끼고 나자 그가 어떻게 대한민국 예술의 꼭대기 "예술의전당"에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푯말을 꽂을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나마 느껴진다.

 

 

독창적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되는 길이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다면 그건 괜찮아요. 자신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창적이기 때문이에요.

 

카예하 인터뷰 中

 

 

카예하의 인터뷰 영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왜 기억에 남았을까. 생각해보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용기라면 자신이 되고자 결심한 자체, 그 과정에서 만날 여러 어려움을 마주할 깡. 온전한 나란 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속 소년처럼, 천진한, 순진한, 부드러운 태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다음을 상대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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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한 빨간 머리 소년이 빨간 무당벌레를 붉은 손끝에 올리고 말한다.

 

"이 길이 유일해요."

 

그 길이 유일하다면 그 길로 가면 된다. 뒤돌아 보지 말라.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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