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왜 지금 '베르사유의 장미'인가 -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글 입력 2024.07.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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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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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의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까지 EMK가 제작한 대형 창작 뮤지컬의 경우 주요 창작진(연출, 극작, 작곡)이 모두 외국 창작진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이번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창작진이 작품을 제작했다. 왕용범 연출/극작과 이성준 작곡의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며, 원작은 이미 일본에서는 다카라즈카에서 공연되며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물론 배경이 유럽이 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EMK에서 제작된 뮤지컬 <마타하리>, <웃는 남자>, <베토벤>과 공간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일본에서 제작된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를 수입하여 상연한 것 또한 EMK였을 만큼 EMK는 빈(Wien)을 주 무대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상연하고 있다.


EMK는 2010년 초연한 뮤지컬 <모차르트!>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자리 잡은 뮤지컬 제작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빈 뮤지컬’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다른 대형 뮤지컬 제작사인 신시 컴퍼니와 오디컴퍼니, 에스엔코, 쇼노트 등과는 차별화된 행보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뮤지컬계를 살펴보면 대형 뮤지컬의 경우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나, 초연된 지 별로 되지 않은 작품이 활발하게 상연되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렌트>, <이프덴>, <컴프롬 어웨이> 등 우리의 실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체감상 먼 유럽 근대 이야기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칫 세련되지 않고 화려한 것만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왜 지금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가 제작되어 상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필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오스칼’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원작에서는 작품의 성격이 ‘순정 만화’로 알려진 만큼, 오스칼과 앙드레의 사랑 이야기가 부각된다. 그러나 본 뮤지컬에서는 오스칼과 앙드레의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는다. 오스칼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며, 오스칼을 중심으로 앙드레 그랑디에와 베르날 샤틀레, 로자리 라 모리엘, 마담 드 폴리냑이 연결되는 구조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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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오스칼의 사랑 이야기에 대체적으로 초점이 맞춰졌다면,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각색을 통해 오스칼과 페르젠의 사랑 이야기는 삭제하고, 오스칼과 앙드레의 사랑 이야기만 간단히 다룬다. 오스칼과 앙드레의 사랑은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오스칼이 앙드레에게 항상 외치는 “앙드레, 준비됐어!”라는 짧은 대사로 앙드레에 대한 오스칼의 신뢰와 사랑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본 작품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가?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근위대장 오스칼은 자신은 왕가를 지키는 군인이지만, 사람들한테 장식 인형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심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왕비와 페르젠의 밀회, 그리고 백성들의 힘든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직면하게 됨으로써 점차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스칼은 장미의 ‘가시’에 자신을 비유하고, 장미로 상정되는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겠다고 맹세하지만, 점차 그녀가 지켜야 할 ‘장미’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이 바뀐다.


나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내 한 몸 깃발되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기회를 선물하리라

봄바람 닮은 소녀 다시 웃을 수 있게

증오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가자


- 넘버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 중


베르날과의 만남을 기점으로 오스칼은 점차 자신이 지켜야 할 장미를 왕비가 아닌 ‘백성’으로 인식하게 되며, 근위대장직을 버리고 위병대에 자원하게 되며, 혁명의 최전선에서 국민과 함께 군대에 맞서 싸운다. ‘오스칼’이라는 이름이 ‘신의 창’을 의미하는 만큼, 그의 이러한 행보는 마치 신의 심판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며,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어쩐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과 자베르, 그리고 앙졸라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오스칼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로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보고 ‘아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가 여자임을 안다. 그렇기에 오스칼은 굳이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서 목소리를 부자연스럽게 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극 중 오스칼은 ‘남장 여자’, ‘남성의 가면을 쓴 여성’이 아닌, 단지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서 오스칼의 고민에는 성적 정체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오스칼의 모습은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작품만의 차별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아온 나

누군가의 강요 앞에 굴복한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입는 옷까지 모든 건 오직 나의 선택


- 넘버 <나 오스칼> 중


현재 한국 공연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젠더벤딩 또는 젠더 크로스 캐스팅은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뮤지컬에서는 이지나 연출이 처음으로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했으며―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헤롯왕 역에 배우 김영주 캐스팅―이후 뮤지컬 <광화문 연가>, <해적>, <더 데빌>, <데미안> 등에서도 젠더 프리 캐스팅이 이루어졌다―한국에서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이야기하는 만큼 본고에서도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논한다―. 더불어 남성 중심적이었던 이야기는 여성 중심적인 이야기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이에 여성들의 연대와 이야기를 다룬 <리지>, <브론테>, <실비아, 살다>, <레드북> 등 다양한 작품이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분명 이렇게 공연의 권력 주체에 변화가 생기고, 여성 역할에 확장이 생긴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이야기에서 여성 주인공들이 작가나 예술가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존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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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오스칼은 여성이지만 군인으로 존재하며, 더불어 가부장적이고 남성 권력 중심 사회였던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아버지의 소유물로서의 딸로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칼을 들고, 군복을 입고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이에 신문기자이자 백성들을 이끄는 베르날 샤틀레와 동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 각기 다른 신념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더불어 귀족 중 최고 권력자인 드게메네 공작에게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으며, 결투를 신청할 수도 있다. 결투는 동등한 상태에 있는 존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었던 만큼, 이 장면은 오스칼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시대물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은 대사와 노래의 전환이 자연스러운데 이는 대부분의 노래가 말하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원작을 각색하기는 했지만, 방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본 작품은 다른 뮤지컬 넘버와 비교했을 때 멜로디 안에 다소 많은 가사를 빽빽이 넣고 있다. 그렇기에 멜로디는 기존에 익숙하게 들어왔던 것과 달리 다소 익숙지 않고, 가사 또한 마치 레치타티보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그렇기에 노래의 시간은 단순히 정지된 것이 아닌, 매우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을 빠르게 확장하고, 인물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로써 본 작품은 단순히 오스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앙드레, 베르날, 로잘리, 폴리냑 등 다양한 인물의 서브 텍스트를 견고하게 형성하였으며, 귀족 사회에 해당되는 넘버와 백성들이 부르는 넘버를 교차적으로 편집함으로써 귀족들과 백성들의 모습을 대립적으로 잘 구현해 냈다. 


더불어 이성준 작곡가는 음악을 작곡할 때 리프라이즈나 테마송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그의 전작 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를 살펴보면, 각 인물의 테마송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거나 이것이 리프라이즈 되어 불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을 생각해 보면, 특정 인물에게 부여된 테마송이나 라이트모티브가 극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준 작곡가는 곡과 곡 사이의 멜로디, 그리고 각 장면에 해당하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만 주인공의 테마송의 일부 멜로디를 리프라이즈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 작품에서 앙드레와 오스칼의 사랑이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음에도 종종 장면이 전환될 때 등장하는 멜로디에서 앙드레와 오스칼의 사랑, 그리고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이 청각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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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오스칼 이외 다른 작품과 달리 특히 차별화되어 구현된 인물이 있다면 바로 마담 드 폴리냑이다. 폴리냑은 자신의 어린 딸이 결혼이 하기 싫어 자살했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단지 절규할 뿐이다. 그의 딸이 죽은 것에 절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명예가 추락함에 망연자실하며 분노한다. 이러한 폴리냑에게는 왈츠의 멜로디가 주로 편성되어 있으며, 그녀의 야망은 드게메네 공작의 야망과 거의 맞먹는다. 그녀는 권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 뮤지컬 작품에서 대개 남성 인물에 부여되었던 ‘권력의 야망’에 대한 관념이 그녀에게 부여됨으로써 폴리냑은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 우뚝 서게 된다. 


오스칼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를 포함하여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오스칼은 여성이지만 남성이며, 귀족이지만 평민의 편에 서서 싸운다. 베르날은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앙드레는 천한 출신이지만 오스칼의 아버지 덕분에 오스칼과 함께 자라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귀족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더불어 로자리 라 모리엘 또한 오스칼의 은혜를 받게 되는 소녀로서 평민인 줄 알았으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귀족임이 드러난다. 즉, 모든 인물에는 대립하는 속성이 혼재되어 공존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앞서 말한 귀족 사회와 민중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그려내는 구성과 연결되어 당대 프랑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까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커튼콜에서는 인물들이 인사를 마치고 뒤를 돌아서 걸어갈 때 오스칼을 중심으로 주·조연 인물들이 X자로 교차해서 걸어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본 작품은 이 작품만의 차별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EMK의 작품들―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웃는 남자>, <몬테크리스토>, <더 라스트 키스> 등―이 저절로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앞서 제작되어 상연된 작품 중 본 작품과 마찬가지로 ‘정의(justice)’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인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웃는 남자>, <마리 앙투아네트>와 본 작품에서 말하는 ‘정의’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이는 베르날의 노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정의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귀족과 평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라고 정의(definition)한다. 


마지막으로 캐스팅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자며 글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오스칼 역을 맡은 김지우는 오스칼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로 연기와 노래 모두 훌륭했으며, 특히 노래를 통해 진행되는 연기는 관객을 오스칼에게 완벽히 동화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자신의 본래 목소리보다 낮고 굵은 목소리와 자신의 원래 목소리를 모두 자연스럽게 오가며 여자도 남자도 아닌 오스칼의 모습을 잘 구현해 냈다. 김지우 이외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배우는 바로 베르날 역의 서영택이었다. 서영택은 본래 테너(성악가)로서 이번이 뮤지컬 첫 데뷔였는데 이미 그는 거의 완성형에 가까웠으며, 기존 뮤지컬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테너로서 테너부터 바리톤의 음역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공간감 있는 탄탄한 소리, 우수한 테크닉에 더불어 노래에 연기를 담아 부름으로써 완벽한 베르날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제2의 홍광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많은 뮤지컬 무대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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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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