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도

글 입력 2024.07.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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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일어나고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면, 대비할 수 없는 기나긴 시간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법은 누구에게 배우는 걸까. 창밖에 매미가 울어도 낭만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대학에서 들었던 한문 강의 첫날. 교수님께서 한자 하나를 설명해 주셨다. '易'은 ‘바뀌다’라는 뜻으로 ‘역’으로 발음한다. 태양 아래 태양의 그림자가 있는 모습이라 한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으며, 태양이 산에 비치면 한 쪽은 밝고 다른 쪽은 그늘진 채 어둡다가 곧 반대로 된다.

 

지금은 어두워도 다시 밝음이 찾아오는 것, 그것이 주역(周易)이 말하는 인생이라. 언젠가 교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게 될 거라 짐작했던 나는 열심히 이를 새겨들었었다.

 

이 진리를 떠올리라는 듯 오늘 창밖의 명도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두운 하늘은 곧 밝게 개고, 빗물이 한바탕 떨어진 후에는 세상이 필터로 거른 듯 맑아진다는 것이다. 지금 막 태양 빛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 한다.

 

어제는 창문 앞에 섰는데 네모난 유리창 밖으로 소나무의 풍성하고 푸른 잎이 보였고 창틀로 시선을 옮기니 주황빛 몸통의 무당벌레가 열심히 걷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길이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 같았다.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열어주었다.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다시 본 창틀 위에는 더 이상 무당벌레가 없었다.

 

지금 바깥세상을 모르고

보이지 않는 빗소리만 듣고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무당벌레처럼, 무섭게도 떨어지던 빗방울이 맑은 하늘을 데려온 것처럼, 당신의 아픔이 괜찮음을 데려오길.

 

 

[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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