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과쟁이들은 웃지 않을 것이다

글 입력 2024.07.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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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이 없다면 사과하지 않는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퍽 잘 쓰는 편이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쉬운 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 주머니 속에서 미안한 마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단어들을 구하기 위해 이것저것 도량하는 일은 어려운 길이다. 보통은 그렇다. 그래서인지 더욱 각 상황에 맞는 적확한 사과의 언어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방의 눈동자와 입꼬리를 짧은 시간 안에 응망한 후 기존의 문장과는 호흡을 조금 다르게 가져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내 입에서는 언제나 '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미안하다'라는 사과가 더 쉽게 나온다. 더욱 가볍겠지만 그만큼이나 빠르다. 그래서 빠르게 입 밖으로 나왔으니 아마 순식간에 증발해버릴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결과는 반대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내 안에 남아 있는다. 내가 쉽게 뱉어버린 사과가, 상대가 쉽게 던져놓고 간 사과가.

 

플로베르가 주장한 일물일어설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상황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하나의 적확한 단어가 있다는 말이다. 이 주장을 처음 접한 뒤 나는 혼자서 '적확한 기표와 적확한 기의 사이의 일대일 대응이 언제나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우선 나의 경우에, 사과는 양가성을 지니고 있기에 매번 그러한 대응 관계의 성립을 요구하거나 충족시킬 수 없다고 느낀다. 잘못이 없어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도 사과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사과가 오히려 타인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잘못이 없어도 사과할 수 있다



 

또 쓸데없이 사과를 하다니! 왜 그렇게 바보같이 반사적으로 노상 미안하다고 해대는 것일까? (...)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누구나 매번 잘못이 있어서 사과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말을 내뱉고 나면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다고, 먼저 사과를 전한 쪽에서 느낄 수 있는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고, 그냥 속이 좀 후련해진다고, 어떤 잘못은 사과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더는 잘못이 아니게 된다고. 여러 주장들과 이유들이 곳곳에서 병치되어 있다.

 

실은 잘못이 있다 없다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정하고 나면 사과를 하게 되는데 사과의 방향성 역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누구에게로 향하는,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전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나의 미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맡겨놓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을 상대의 품에 던져놓고 그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외치고 도망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미안하다'라는 말 한 마디는 이 모든 것들을 대변하지 못한다. 이 말은 뒤이어 따라오는 단어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분명 미안하다고 말한 뒤에도 아직 전하지 못한 채 유기되어 있는 각각의 적확한 단어들이 있을 텐데. 그러한 이유로 다른 사과의 말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또 어려운 일이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종종 사과의 말이 사과를 지시하지 않기도 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잘못이 없어도 사과가 필요한 상황에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유용하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과한다.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을 밝히는 것일까? 정말?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히기 위해 사과할 수도 있고, 너의 잘못을 강조하기 위해 내 쪽에서 먼저 사과를 해버릴 수도 있다. 자, 이제 난 사과를 했으니 네 차례라고. 한번 감당해 보라고. 내가 먼저 사과를 했으니 너도 똑같이 사과를 할 것이냐고. 정말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냐고.

 

그렇지만 모두가 쓸데없이 사과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사과쟁이들의 망상으로 치부하고 무시하기에는 재밌는 상상이다.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그래서 사과쟁이들은 스스로에게 먼저 사과한다.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면서 어떤 순간에는 타협을 시도하고 또는 가혹하게 채찍질한다. 적어도 자기 자신과는 그렇게 쓸데없이 많은 사과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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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 '미안하다'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다. 최근 나는 본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타인에게 먼저 사과를 건네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내 주변에서도, 뉴스 기사에서도. 먼저 사과를 건네는 것은 미덕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과의 양가성이라고 해야 할지, 오남용의 폐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덕이 아니라면 근절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 상황에서 사과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과는 하나의 조례다. 특히 본인이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전에 으레 튀어나와야만 하는 강박이자 관습이다.

 

나는 원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지만 사과를 건네는 순간에는 여느 때보다 더욱 불편한 마음을 갖고 싶다. 물론 반드시 사과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빠르게 사과를 해야 하고 사과를 아껴야 하는 순간에는 꽤나 숙고해야 한다.

 

최근 사회에서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사과를 하면 그 순간 죄인이 되는 것이니 사과부터 해서는 안 된다라던지, 어째서 사과부터 하지 않는 것이냐며 상대의 파렴치함을 지적한다던지 등의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전자는 사과의 치명적 결과이고 후자는 모두가 사과로 세상을 뒤덮어 버리게 되는 꿈일까. 어쩌면 반대일지 모른다. 모두가 사과함으로써 함께 죄인이 되는 세상. 그렇지만 사과를 했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겪어서는 안 되고 사과가 예의라는 미명 아래 죄책감을 덜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사과쟁이들이 웃지 않기를 바란다. 불편함을 꼭꼭 씹어삼키길 바란다. 어제의 웃음이 오늘의 불편함을 낳고, 불편함은 반성으로 이어진다. 쓸데없는 반성이어도 좋다. 쓸데없이 반성하는 것도 '미안하다'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사과가 된다.

 

나는 일 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어제도 당신들의 사과를 받으며 웃을 수 없었다. 당신도 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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