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 날의 재즈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Life is Play, Love is Jazz
글 입력 2024.07.2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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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정의는 각자마다 다르다. 어린 날 만난 치기 어린 사랑이 혹은 언제나 아련하게 떠오르는 빛바랜 사진 같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생의 끝 사랑은 어떤 그림으로 남을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우주에서 서로를 만나기 위해 태어나기 이전부터 열심히 달려온 것만 같은 벅찬 감정은 평생에 단 한 순간만 찾아온다고 한다.

 

 


Z차원의 카우보이


 

로버트 킨케이드는 인생이라는 연극에 마지막 남은 카우보이다. 남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가벼운 사람들의 입에선 집시니 히피니 하는 말로 입방아에 오르지만 말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낱말과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들 속에 숨겨진 독특한 느낌을 따를 줄 알았다. 그런 동물적인 감각과 섬세함으로 이후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사진을 기고하는 사진사로서 작업을 이어간다.

 

그는 자본의 주문에 맞추어 대신 셔터를 눌러주는 수동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필요한 구도와 색감을 짜맞추어 장면을 만드는 예술가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킨케이드의 작업 과정은 일이라기보다는 공연에 가까웠다. 우아하면서도 강렬하고, 느낌을 믿으면서도 전체를 볼 줄 알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도 같았다. 효능과 기교를 강조하며 자유를 포기하길 종용하는 시대에 스스로 낙오되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방식일 것이다.

 

“분석하는 것은 전체를 망쳐 버린다. 무언가 신비로운 것들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한다. 조각조각을 보면 신비는 사라지고 만다.” (p.64)


 

 

끝 사랑의 첫 순간


 

“이상한 낯선 사람, 꽃다발, 향수, 맥주, 그리고 늦여름 어느 무더운 월요일의 건배” (p.74)

 

8월 중순의 무더운 여름날, 잡지사의 요청으로 다리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오와주를 찾은 킨케이드는 한 다리의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작은 집 앞에 트럭을 세운다. 그때 마주한 프란체스카라는 억양이 특이한 여자를 만나며 묘한 이끌림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시골로 이주하여 가정을 이루면서 꿈과 낭만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물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와 편안한 셔츠 차림에 눈빛이 살아 있는 그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내가 이 생을 산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그리하여 그 많은 세월을 거쳐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된 거요.”(p.158)

 

낭만적인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희망으로 찬장 한구석에 숨겨둔 브랜디는 그녀를 들뜨게 했고, 꿈 많던 젊은 시절에 피던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는 순간엔 정열이 타올랐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란 이럴까.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그들을 평생 지탱한다는 것은 삶의 희망 같은 것이다. 현실을 살아갈 심지 같은 꿈의 기억이 있다는 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어지는 용기가 된다. 첫사랑과 끝 사랑의 차이점은 바로 이런 거다.

 

 

 

영원처럼 반복될 여름날


 

이제 두 사람은 이 사랑에 끝은 없을 거란 강한 예감을 갖게 된다. ‘우리’라는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여 서로가 떨어져 있어도 하나로 존재하리라는 것을. 그들이 말하는 ‘우리’에는 '서로를 더 서로답게 하는'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당신 안에는 길이 있어요. 아니, 그 이상이죠. 뭐라 설명할 수가 없지만, 당신은 어쨌든 길 자체예요. 환상과 현실이 만나면서 미처 이어지지 못한 틈, 바로 당신은 거기에 있어요. 거기 길 위에. 그 길은 바로 당신 자신이에요.” (p.165)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p.213)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사람은 새 삶을 선물하는 초월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한 여자로서 예쁜 핑크 원피스를 사게 되는 설렘이, 시와 춤을 사랑하는 예술가의 예민함을 발견해 주는 그가 그녀의 세상이다. 외로운 여행자의 삶을 자처하는 킨케이드에게 정갈한 다정함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온기와 에로티시즘적 본능을 찾게 하는 그녀는 그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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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던 두 남녀의 여름은 즉흥적인 재즈의 마법처럼,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Life is Play, Love is 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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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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