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뱅크시를 들여다보는 시간 - 리얼 뱅크시 REAL BANKSY

길거리를 떠나지 않는 예술가
글 입력 2024.07.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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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까. 동유럽의 철학자 슬라보에 지젝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라고 통찰했다.

 

사회는 아주 교묘하고 정교하게 짜여있어서 종종 우리는 시스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럴 때마다 예술은 묵묵히 할 일을 해왔다. 세상의 경계선에서 전망대를 세우고 우리를 초대한다. 저 너머를 조망하는 순간 경계선은 울타리가 아니라 출발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아주 대중적으로 해내는 예술가가 바로 뱅크시 아닐까. 현실을 직시하는 일보다 정반대를 상상하는 일은 더 수월하듯이, 그는 전복의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의 이목을 끈다. 그러다 다시 작품의 정반대인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런 뱅크시의 작품 130여점을 만날 수 있는 ‘리얼 뱅크시 REAL BANKSY : Banksy is NOWHERE’ 전시가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렸다.

 

 

포스터_기본.jpg

 

 

뱅크시는 유명하다. 예술에 문외한이라도 그는 들어봤을 정도.

 

그렇다면 뱅크시는 정확히 누구일까? 그는 1974년생의 잉글랜드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 남성으로 추정된다.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만큼 그의 의도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활동 초기 그가 ‘로빈 뱅크스’라는 이름으로 몇가지 기록을 남긴 걸 확인할 수 있다. ‘로빈 뱅크스’는 영어로 ‘은행을 털다’라는 뜻으로,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의 이름도 ‘돈을 가져가고 도망가라’였다. 이렇듯 드문 기록과 추측만 난무할 뿐, 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1998년부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반적인 낙서미술과 달리, 자신의 그림이 담긴 정치 사회적 메시지와 장소와의 관계, 그리고 작업의 시기를 면밀히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실체가 없는 그를 예술가로써 ‘실존’하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그가 2002년 발간한 자서전의 제목 역시 Existencilism, 즉 ‘실존’이기도 하다.

 


Girl with Balloon(2004-2005).jpg

 

 

그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직관적이지만 뼈가 있다. 소녀가 빨간 풍선을 들고 있는 이미지는 유명하다. 그리고 2019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에 감추어진 파쇄기가 작동한 사건 역시 꾸준히 회자된다. 유명세에 가려진 진짜 의미를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21년 10월 '사랑은 쓰레기통에'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304억 원에 낙찰됐다. ‘사랑은 쓰레기통에’는 앞서 말한 ‘풍선과 소녀’가 의도적으로 분쇄된 후 뱅크시가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2018년 ‘풍선과 소녀’가 약 16억 원에 낙찰되었으니, 기존 가격보다 18배 높은 셈이다.

 

파쇄된 작품이 훨씬 비싸게 팔린 사건은 뱅크시 작품에서 중요한 함의가 무엇인지 암시한다.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2003).jpg

 

 

뱅크시는 예술의 자본화를 극렬히 저항한다. 경매장 퍼포먼스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며 자본주의에 침식당하는 우리의 내면을 구원하고 싶었던 그의 자기파괴행동과도 같다.

 

그는 엘리트주의가 예술의 자본화와 결합하는 것을 겨냥하며 주요 미술관과 경매장을 수차례 해체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영향력을 표현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최고 낙찰가액을 거론한다. 전시에서는 자본이 우리에게 일종의 자연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진리이자 아름다움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

 

 

IMG_9015.jpg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는 길거리를 떠나지 않는다.

 

1995년 인터뷰에서 뱅크시는 “걸리지 않는 것이 재밌는 부분이죠. 밤에 불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작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고 났을 때의 아름다운 시간이 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죠. 그래서 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느낌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2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그는 얼굴을 숨긴 채 밤 중에 거리 현장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진다.2015년 2월 뱅크시는 폐허로 변한 중동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을 그림으로 수놓았다. 2022년 11월에는 우크라이나 보로디안카에 직접 방문해 러시아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 벽면에 그렸다.

 

권력과 자본만능주의를 향한 그의 저항행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Monkey Queen(2003).jpg


 

이번 전시는 ‘패스트컨트롤’이 정식 승인한 작품 29점과 영상작품을 포함한 약 13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국내 최대규모 전시다. ‘패스트컨트롤’이란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로, 뱅크시 작품을 판매하거나 진품 여부를 판정해주는 회사다. 뱅크시는 익명의 예술가이기 때문에 뱅크시 전시는 페스트컨트롤 인증 작품의 여부가 핵심이다.

 

지난 5월 10일부터 시작된 전시 '리얼 뱅크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그라운드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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