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울버린은 부활해야만 했는가 [영화]

글 입력 2024.07.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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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내용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블의 다급한 ‘울버린 살려내기’


 

죽음 앞에서는 돈도 무의미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돈으로 죽음도 되돌릴 수 있는 세계가 있으니 바로 마블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영화 <로건>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울버린은 최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을 통해 다시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 죽었던 캐릭터의 부활, 그리고 데드풀과 울버린이라는 센세이션한 조합에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조합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서사의 부족이었다. 애초에 데드풀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울버린이 다시 등장해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관객에게 설명할 생각이 없다. 주축 인물인 로건이 사망하며 시간선이 소멸한다는 갑작스러운 설정은, 그를 살려낼 마땅한 명분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정한 이야기를 위해 울버린이 ‘살아났다’기보다 말 그대로 영화를 찍기 위해 울버린을 어떻게든 ‘살려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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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점은 <데드풀과 울버린>이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가볍게 소비했다는 것에 있다.

 

그간 울버린은 수많은 작품으로 그만의 서사를 충실히 쌓아왔다. <로건>에서는 숭고한 희생을 보여주며 그간의 장대한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작품의 끝은 캐릭터를 완성한다. <로건> 속 울버린의 죽음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마지막 대사인 ‘이런 느낌이었구나...’는 자가 치유 능력으로 불사의 삶을 살았던 그가 처음으로 죽음을 느끼는 감정을 담았기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서사를 완성하는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그러나 <데드풀과 울버린>으로 해당 캐릭터가 부활하며 그동안 충실히 쌓아온 서사는 처참히 무너졌다. 결국 관객이 목도한 것은 정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울버린이 아닌, 회사의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과묵하고 진지한 울버린과 가볍고 재치 있는 데드풀의 상반된 조합은 다수의 유쾌한 장면을 연출해냈으나, 이 과정에서 울버린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됐다.

 

 

 

울버린과 ‘헤어질 결심’


 

물론 캐릭터의 ‘부활’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는 각기 다른 영화에서 활약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만났으나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돋보였다. 해당 작품은 다른 세계관의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모이게 된 이유를 어떤 캐릭터의 서사도 해치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설명한다. 각각의 서사를 확장하면서도 조화롭게 엮어낸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멀티버스를 이용한 다양한 캐릭터의 조합은 신선했으며, 추억 속에 머물러 있던 캐릭터의 스크린 복귀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른바 ‘멀티버스로 캐릭터 부활시키기’가 반복되며 신선함은 곧 진부함으로 변모했다. <데드풀과 울버린>에도 <엑스맨>, <판타스틱 포>, <데어데블>, <블레이드> 등 수많은 작품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잠깐의 놀라움만 선사할 뿐, 깊은 감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살려낸 캐릭터는 <로건>에서 죽었던 울버린도 아니었다. 멀티버스를 이용해 데드풀이 다른 세계에서 데려온 울버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내내 울버린의 대사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세계의 울버린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한 탓이었을까. 로라와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 모두를 실망하게 했다며 오열하는 장면 등 대놓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넣은 듯한 부분도 그저 미적지근할 뿐이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그린데이의 ‘good riddance’와 그간의 엑스맨 시리즈 비하인드 영상이 오히려 꾸밈없는 순수한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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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신만의 죽음(물리적 죽음뿐 아니라 캐릭터로서 생명을 잃은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을 맞이한 캐릭터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디즈니가 90년은 써먹을 것’이라는 데드풀의 대사로 미루어보아 울버린의 스크린 복귀는 일회성이 아닌 듯하다. 누군가에겐 희소식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씁쓸함이 앞선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조합은 ‘마블의 구세주’로 불린다. 그러나 새로운 캐릭터와 신선한 이야기가 아닌, 또다시 과거의 캐릭터를 소환해내는 수법만이 마블의 구원이어야만 하는가. 옛 영광을 기억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앞으로 마블이 써나갈 새로운 역사를 고대한다.

 

 

[양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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