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림의 언어가 표현한 아이러니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글 입력 2024.07.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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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화가 하비에르 카예하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되고 뒤늦게 미술 공부에 뛰어들었다. 밀라노를 근거지로 시작해 피카소와 더불어 요시모토 나라에 영감을 받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삶을 위한 결정을 한번은 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예술이다. 팔리는 작업이 아닌 재밌는 작업을 하겠다는 동기에서 피어난 작품들이기에 보는 사람 또한 무거운 걱정과 고민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행운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하비에르 카예하는 주위에서 쉽게 행복을 찾는 캐릭터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우리에게 쉽게 행복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에 예술은 없다’ 면서 시작되는 전시이다. 아이러니한 전시 여행을 떠나보자.


 

 

관람 전


 

‘아이러니’ - 하비에르 카예하의 소개 글을 읽고 내가 주목한 단어는 ‘아이러니’였다. 문학 용어로 아이러니는 그 종류가 실은 다양하다. 언어적, 극적, 구조적 아이러니 중 위트와 유머 속에 숨어있는 아이러니는 어떤 아이러니일까? 문학이 아닌 그림의 언어가 표현한 아이러니가 잔뜩 기대되었다.


 

 

관람 중


 

’엉망진창‘ - 하비에르 카예하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다. 빨간 모자를 쓰고 ’이곳에 예술은 없다‘는 표지판을 들고 서 있는 꼬마 소년이다. 이번에 꼬마 소년이 들고 있는 팻말은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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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겨지고 낙서 같은 종이 한 장도 전시되어 있다. 작품을 그리는 과정마저 작품으로서 소개하고 있는 거 같다. 어디서 재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벽면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말들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전시 곳곳의 고양이 또한 발견하는 재미를 더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공간과 함께 그의 작품들을 누리다 보면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감상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품과 벽의 경계인지 알기 힘들다. 다양한 크기의 액자가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캐릭터들이 가진 분위기에 따라 액자들이 정해진 거 같기도 하다. 네모진 공간으로 테트리스를 한 것 같은 기존의 미술관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림들은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지 않다. 울퉁불퉁 삐딱하게 놓여있기도, 뒤집혀 있기도 하고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또한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놀이터가 된 미술관' - 아니나 다를까, “작품을 둘러싼 공간도 작품 일부이다.”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전한 말이다. 그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과 나무들이 작품의  일부이듯이 작품의 크기가 그 자체의 크기는 아니라고 한다. 공간 자체가 작품이 되었기에 관람객은 마치 보러 온 게 아닌, 놀러 온 거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놀이터가 된 전시이다.


미술관을 작품이 아닌 공간의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전시는 기획자의 의도대로 관람객을 걷게 한다. 작가의 바람을 최대한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기에 효과적인 학습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엉뚱한 상상력을 지닌 관람객에겐 불편한, 그저 정해진 순서로 느껴질 수 있다. 하비에르는 전시 공간이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경험에 집중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작업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해 작은 형태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기회를 잡은 후부터 자유롭게 크기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어떤 발걸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볼 것인지 까지를 생각한 흔적이 역력하다.


‘단순함과 순수함‘ - 그의 작품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는 물리적, 경제적 한계 속에서 작품을 작게 만들기 시작한 것을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후 너무 큰 아이디어를 품으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어렵기에 작은 것에서부터의 시작이 그의 성공을 더 쉽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되어 우리 근처에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어렵지 않은 문구들, 형태의 단순함,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보이는 돌, 구름, 자연 속 곤충과 같이 작은 것들로 행복해지는 커다란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기분 좋은 마음이 든다.


작가는 따라 그리기 쉬운 동그라미로만 이루어진 캐릭터를 좋아했다고 전했다. 형태의 단순성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을 이끌었고 작가는 이를 발전시켜 기하학적인 것과 우리 주위의 것을 결합했다. 작가는 ’유기적인 것과 기하적인 것의 대조‘를 통해 초현실적인 놀이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구름이 머리가 된 캐릭터들과 머릿속에서 피어난 꽃들이 일례이다. 익숙한 미키마우스임에도 귀여운 앞면과 대조되는 섬뜩한 뒤태의 꼬리가 더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생각이 더더욱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행복과 배움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순진함 보다는 영특함을 길러야 한다고 다짐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캐릭터의 순진한 눈동자들은 내가 성장하면서 두고 내린 순박함을 챙겨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관람 후


 

’아이러니의 세계‘ - 언어적, 극적, 구조적 아이러니의 총집합체

 

-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감상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써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에 예술은 없다고 주장하는 작가이다. 여기서 극적 아이러니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No Art Here“ 팻말을 전시장 곳곳에서 들고 있는 그의 빨간 모자 캐릭터는 오히려 예술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했다. 화자(캐릭터)가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지만 사실 작가와 관람객은 이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극적 아이러니의 요소가 충만하다.

 

- 팻말의 메시지('이곳에 예술은 없다.')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언어적인 아이러니로 볼 수도 있다. 예술이라 생각하는 자에겐 그 공간에서의 모든 순간이 예술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Do not touch’ 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서도 언어적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 작품 속 그의 캐릭터들을 무대 위 화자로, 나를 관람자로 볼 때, 관람객과 작품을 만든 작가만 공유하는 내용이 있다. 순진한 화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래서 관람자가 바보 같은 화자(캐릭터) 이면에 있는 작가의 생각을 파헤치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무당벌레나 벌을 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캐릭터들에겐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는지, 그들의 순진한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관람자(적어도 나는)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전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순진하고 낮은 지능을 가진 화자(캐릭터)가 겪는 일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작품의 뼈대가 되는 구조적 아이러니이다.


‘무엇을 생각하든 관람자의 몫’ - 작가는 설명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하비예르. 그 흔한 작품의 제목과 묘사를 이 전시에선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을 생각하든 ‘마무리는 관람자의 몫’이 라고 전한 작가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창작자가 불특정한 관람자의 마음마저 예측하며 작업할 순 없다. 작품이 무엇을 담든 결국은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무수한 감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카예하의 신념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읽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커가면서 관점과 사고방식이 벽돌처럼 굳어지는 어른의 마음은 닫힌 문 같다.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지 말고, 엉뚱해도 말랑말랑한 마음의 관성을 지닌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전시를 마무리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줄평이 되지 못한 두세 줄 평] 커가면서 새로운 게 보이는 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원하지 않는 삶을 위한 선택을 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에 대해 그림으로 보여준다. 명확한 무언가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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