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노하는 우리 - 까마귀 클럽

글 입력 2024.07.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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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연극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스터] 연극_까마귀 클럽_예술공간 혜화.jpg

 

 

연극은 연락할 친구조차 찾기 힘든 ‘지원초이’가 ‘까마귀 클럽’의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까마귀 클럽’의 구성원은 ‘지원초이’, ‘별’, ‘워리’, ‘프로틴’으로 총 네 명이다. 그들은 화를 잘 내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까마귀 클럽’은 화내는 연습을 하는 모임으로, 클럽 회원들은 자신이 화를 내야만 하는, 화를 낼 수 있는 정당한 상황에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화를 내기 위해 연습한다. 화를 낼 때 지어야 하는 표정, 자신의 화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단어, 호흡이나 문장의 짜임. ‘지원초이’와 ‘별’, ‘워리’, 그리고 ‘프로틴’은 자신의 감정, ‘분노’를 마주하며 그것을 최대한 잘 꺼내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한다.


‘지원초이’는 ‘까마귀 클럽’에 소속된 후 처음으로 ‘우리’라는 단어 안에 들어온다. ‘우리’. ‘지원초이’가 ‘까마귀 클럽’을 좋아했던 이유는 화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닌,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다는 소속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클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누군가와 자신을 한데 묶어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재밌게도 ‘지원초이’는 클럽 회원들의 본명을 알지 못한다.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까마귀 클럽’을 나오는 회원은 ‘지원초이’뿐만이 아니다. ‘프로틴’과 ‘워리’는 클럽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까마귀 클럽’을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이다. 극중 ‘워리’는 ‘까마귀 클럽’의 회장인 ‘별’의 태도와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음에도 누구보다 ‘까마귀 클럽’ 안에서 많은 말을 하고 열렬히 참여한다.


그들은 왜 이럴 수밖에 없을까?

 

이유는 그들이 속한 이 사회에 있다.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배척되었기 때문이다. ‘지원초이’, ‘워리’, ‘프로틴’은 사회로부터 배척된 이들이다. ‘지원초이’는 연락할 친구조차 없어 ‘까마귀 클럽’을 지원한다. ‘워리’와 ‘프로틴’은 연인 관계이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우리’ 안에 들지 않기에 그들을 ‘우리’라고 표현해 주는 ‘까마귀 클럽’을 나온다. 그렇게 사회에서 배척된 이들이 화를 내기 위해, 클럽 안에서 ‘우리’가 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화내는 연습을 지속한다.


그중 ‘지원초이’는 클럽의 회장인 ‘별’과 모임 이후에도 만난다. 모임이 끝나면 둘은 ‘별’의 저택에 남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원초이’는 이 시간을 데이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둘의 만남은 ‘지원초이’가 화를 잘 내게 되었을 때 끝난다.


화를 잘 내기 위해 모였던 클럽 회원들은 화를 잘 내게 될수록 ‘우리’라는 단어 안에서 더 상처받는다. 대상이 명확했던 분노는, 그것이 지속될수록 이유 없는,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행위로 거듭난다. 결국 ‘지원초이’가 화를 잘 내 칭찬받았던 날, 사건이 터진다.


‘지원초이’를 향해 회장인 ‘별’이 입에 담지 못할 욕과 화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날 후, ‘지원초이’는 ‘까마귀 클럽’을 나가지 않는다. 그들이 연습했던 분노는 방향과 무게를 잃은 채 상처만 남기고 휘발되었다.


연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화내지 말자’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분노하면 그 분노에만 집중한다. 분노의 내용과 분노하는 사람의 표정, 단어, 호흡.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분노하는 사람. 분노하게 된 사람.

 

분노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도, 분노를 받는 사람도 상처를 받는다는 것에 있다. ‘별’은 ‘지원초이’에게 분노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분노로부터 상처받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별'이 '지원초이'에게 분노했을 때, 과연 그녀는 분노하게 되어 행복했을까?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까마귀 클럽'은 분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상 회원이 분노하게 된 경위,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노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을까?

 

‘까마귀 클럽’의 회원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또 상처를 받기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했던 연습이 사회를 향한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지기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화를 잘 내게 될수록 관계에 금이 가는 모순을 표현한 ‘까마귀 클럽’은 ‘분노’라는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뒤에 가려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우리’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분노하는 사람들. 분노하는 사람들에 또다시 상처받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굴레.


분노는 누군가를 향한 공격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어떻게 휘둘러야만 우리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간절한 사람에게 간절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함부로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원초이’의 말대로 ‘까마귀 클럽’은 우연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모임이 아닐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그가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길 바랐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라는 단어 안 사람들도 막연하게 표출된 분노로부터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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