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 울타리는 어디쯤 있나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글 입력 2024.08.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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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운명같은 만남이다. 이 책과 말이다. 집에 30년 전에 발간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책이 있다. 똑같은 시공사 출판에 공경희 옮김의 저서이다.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에 선물 받아서 읽었다고 한다. 한글판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빨간 옷으로 나를 되찾아 온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나눈 대화는 그래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엄마와 나를 새로운 대화의 창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누군가와 연결될 다리가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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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가진 매력이 엄청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끌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두 사람의 매력은 서로만 끌어당기지 않았다. 만지거나 볼 수 있는 특질들이 하나도 없지만, 활자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가 가진 아우라와 매력, 분위기가 독자들을 압도한다. 글자만을 가지고 독자들을 추억의 감상에 혹은 아직 느껴보지 또 다른 세계로 떠나게 해준다. 입으로 전해지는 한낮 주인공이 밝혀지지 않은 설화로 끝날 수 있었다. 공기 중에 결국은 흩어지고 마는 소리가 될 이야기는 기록의 힘으로, 책의 힘으로 전 세계의 읽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활자에서 더 나아가 사랑의 형상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마저 훔쳐서 뮤지컬과 영화로도 제작되어 그 매력을 전 세계적으로 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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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택하고 영혼의 사랑을 택한 이야기는 자식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자신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켜낸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활자로 전해지도록 했다. 문학작품으로 탄생시킨 사람들의 결정으로 이 로맨스는 마을의 가십으로 남지 않고 그동안 독자가 몰랐던 세계로의 초대장이 되었다.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사랑이야기가 자식의 손에서 전달되는 마무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지닌 초대장이다. 프란체스카와 킨케드의 나흘간의 사랑이 남긴 세계로 떠나보자.

 

 

 

사랑이 남긴 이야기


 

흔히들 이 시대 대표적 로맨스 소설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문학용어로서 로맨스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프랑스 고어에서 유래한 로맨스는 사랑의 의미가 다양한 만큼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장르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기사도 정신과 용맹함을 다룬 서사들이 로맨스 장르로 분류되곤 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왕과 국가에 대한 사랑에 로맨스라는 단어가 붙여지기엔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현재 우리는 로맨스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현대엔 행복한 결말을 갖는 사랑이야기가 현대 로맨스 소설로 분류된다는 정의를 읽었다. '행복한 결말'만 로맨스라는 카테고리를 얻을 수 있다니! 남녀 주인공들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결말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이젠 해피 엔딩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필요하다. 결말만을 놓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질문하고 싶었다. 사랑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주인공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들이 과연 있을까요?


나는 이루어지는 사랑만이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긴 사랑 모든 것을 행복한 결말이라고 내 마음속 단어 사전은 그 의미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전적 해석과 개개인의 단어 정의를 뛰어넘어 대표적인 로맨스 고전소설이라는 타이 톨로 큰 사랑을 받은 이유엔 자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기로 한, 책이 되기로 한 책 속 선택에 있다고 믿는다. 이 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이 책이 사랑 자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보다 사랑이 남긴 것들을 더욱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감정은 타인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그랬다. 사랑이 남긴 것으로 자신의 현실을 지켜냈고 사랑이 남긴 가치는 추억이 되어 현실을 지탱하게 했다.


 

 

옛 열정에 사로잡힌 유령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친구, 스승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 하지만 대상에 따른 분류가 아닌 사랑의 종류엔 크게 3가지가 있는 듯하다. 남을 위해 나의 어떤 부분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사랑, 내가 아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지켜나갈 수 있어서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사랑,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하는 사랑. 프란체스카와 킨케이트의 만남은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정말 운명 같은 상대를 만나면 책 속 둘의 표현대로 '제3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둘의 사랑은 토마스 울프의 말 '옛 열정에 사로잡힌 유령(150p)'에 비유되었다. 왜 현재의 열정이 아닌 옛 열정일까. 왜 현실에 형체가 없는 유령이었던 것일까. 현실에서는 짓눌렸던 자아로 영혼의 차원으로 나눈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타인을 내 삶의 일부로 들인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볼수록 실로 어려운 과정이다. 현실이라는 울타리 범주에서는 그 둘의 짓눌린 자아를 둘 순 없었지만, 아직 조직화하지 않은, 마법이 존재하는 영혼의 세계는 이를 허락한다. 그래서 이 둘의 헤어짐은 물리적인 멀어짐에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연결된 영혼으로 서로 항상 돌보고 있지 않았을까? 보이는 세게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남겨지는 것들과 더불어 사라지는 것들을 노래하는 사랑 시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와 킨케이드는 마법, 열정, 꿈과 같이 정의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가 불분명한 것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파멸하기 직전의 서로를 구하기 위해 운명적인 만남이 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존재가 나의 말과 행동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세계화할 수 있다.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는 자신도 몰랐든 혹은 알고 있지만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가치를 서로에게 꺼내 보여줄 수 있었다. 


킨케이드는 점점 효율과 편리성으로 단어로 형용하지 않는 소중한 형상들을 추억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유나 용기, 잊혀 사라지는 것들과 쉽게 잡히지 않는 것들을 사진으로 혹은 본인 자신이 그 가치를 내재화하여 표현해낼 수 있다. 프란체스카는 단조로운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지만, 한때는 꿈이 있었던 소녀의 자아가 있다. 마을과 주부라는 현실의 공간적, 신분적 제약으로 사회에서 외면받았지만, 그녀만의 감성과 활기는 늘 그녀 마음속에 있었다. 이 둘은 짓눌렸던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을 통해 확인한 것 같다.


킨케이드는 “내가 완전히 시대에 뒤처져서 심각한 피해를 보기 전에 좋은 사진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마지막 카우보이로 소개한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카우보이란 별종 또한 머지않아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말하며 인생에 대한 그의 감각을 예찬하고 또 추억한다.


 

 

우리에게 건네는 대화


 

짓눌리는 세계 속에서 울타리의 범주를 필수적이고 보이는 것들만 담을 수 있도록 좁히지 마세요. 대신 마음의 울타리를 넓히세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쁨을 위해 다리를 놓아 타인의 마음과,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세요.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마음의 울타리를 넓히라고 말하는 거 같다. 현실을 생각하면서 애매한 가치들을 뒷전에 두고 명확한 것들만 울타리에 넣고 타인과 나를 경계 짓는 그 범주를 좁히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는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만의 울타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킨케이드 같은 유랑자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유랑자 또한 우리 문명사회가 잃어가는 것이다. 경계를 구분 짓기 어려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담을 수 없는 울타리 속에 살지 말고 그냥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유랑자처럼, 카우보이처럼 사는 것은 어떨까? 눈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킨케이드는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세계에서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프란체스카에게 말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도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확실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한 번쯤은 더 의심한 것이 사실이다. 울타리를 넓히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번은 더 다가가도 괜찮다는 용기를 줄 책이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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