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직도 담장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글 입력 2024.07.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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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는 곳곳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추모하는 메모리얼이 있다. 도시 한복판에는 2700개가 넘는 비석이 펼쳐진 추모공원도 있다. 처음 출장으로 갔을 때는 먹먹해진 마음으로 그 앞에 한참을 머물렀으나 일상이 지나갈수록 추모공원은 그저 하나의 큰 건물에 불과하게 됐다.


매번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경건할 필욘 없다고 생각하면서 무언가에 무뎌지는 데는 단 일주일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 일이 아닌 일엔 모두가 기꺼이 무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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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ZONE


 

영화는 철저하게 두 구획으로 분리된다. 담장을 중심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수용소를 관리하는 관리자인 루돌프 회스의 집으로 구분 짓는다. 누구도 넘을 수 없고 넘을 생각도 하지 않는 계급의 담장이다.


어둠이 밀려오고 나면 두 구획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통해 그 경계가 흐려진다. 회스가 하나하나 끈 집의 조명들은 잠깐 집 안을 암전으로 몰아 넣었다가 곧 담장 너머 수용소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받아들이는 장치가 된다.


밤새도록 돌아가는 수용소의 시뻘건 불빛이 잠든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는 동안 어두운 밤 한 중간을 하얗게 빛나는 소녀가 쏘다니며 열심히 무언가를 숨긴다. 무엇을 숨겼던 것인지, 소녀는 누구인지 영화가 끝나고 해석을 찾아볼 때까지 알 수 없었지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빛'으로 등장한 소녀를 쫓아가면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실제로 이 빛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인물의 온기이며 당시 유대인 노역자를 위해 음식을 숨겨놓았던 폴란드 출신의 비유대인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우오제치크를 모델로 한 연출이었다.


분리되는 것은 화면과 관객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단 한 번도 친절히 누군가를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마치 이것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이야기에서 배제당한 상태로 어리둥절하게 화면을 따라가게 된다.


등장인물 구분조차도 힘들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 회스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회스가 강에서 무언가를 보고 놀라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서 벗어나는 장면, 회스의 장모가 말도 없이 집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 등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비춰주지 않는다. 관객은 철저히 이 모든 디테일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관객의 상상력이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각자의 구역에서 영화를 해석하게 된다. 영화의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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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OF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회스에게 부여된 서사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의 폭로도 아니다. 그저 흘러간 역사에 대한 '보여주기'다. 아주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식의 보여주기.


영화의 처음에는 매우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불그스름한 얼룩이 묻은 검은 화면이 몇 분가량 지속된다. 그리고 아주 평화로운 화면이 지나가는 동안 총소리, 비명소리, 무거운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등이 곳곳에서 매우 어색하게 끼어든다.


소음만 없다면 너무나도 평화롭고 따스한 계절과 풍경이다. 관찰자로서 조금 더 그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소음은 멀어진다. 마치 건너편의 상황을 모르는 척 바쁘게 돌아가는 회스네 집의 일원이 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 우리는 무감각하게 된다. 영화 초반부터 극 끝까지 깔려 있는 폭력의 소리는 놀랍게도 희미해진다. 시각과 청각이 교차하는 영화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알게 된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던 헤트비히의 어머니, 내내 찢어질 듯이 우는 아기...우리가 놓친 것들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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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INTEREST


 

interest는 보통 관심이나 흥미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에 더 익숙하다. 영화 내에서의 의미는 '이익'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das interessengebiet'를 번역한 것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지역을 뜻한다. 유대인 포로들로부터 몰수한 금품, 그들의 노역으로 풍성해진 접근금지 지역.


영화는 한 번도 담장 너머를 비춰주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그 너머의 풍경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온실, 미끄럼틀이 있는 풀장, 번듯한 2층짜리 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금니, 헤트비히가 걸쳐보는 모피 등과 같은 interest가 어떤 것을 짓밟고 생긴 것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헤트비히의 정원은 수감자들을 태우고 남은 재를 비료 삼아 자라났다. 눈부시게 자란 꽃들의 용도 중 하나는 담장을 가리기 위함이다.

 

페튜니아, 달리아, 해바라기, 장미...하나씩 클로즈업 되는 꽃 중 하나가 화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울부짖는 목소리도 커진다. 그리고 소리가 끊어진다. 영화관 안에는 사람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석도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꽃이 무엇을 먹고 자랐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전쟁터에서도 꽃이 핀다는 말은 그들의 엄청난 생명력을 치하하는 말이기 이전에, 전쟁터에도 생명은 피어나고 있다는 희망의 말이기 이전에 그들이 무엇을 양분으로 하고 자라났는지를 돌이키게 되는 섬뜩한 경고처럼 들린다.


영화의 감독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영화에 대해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영화 속에서 헤트비히의 어머니가 수용소 옆 낙원을 보고 다음날 황급히 나간 이유에 대해서 "스테이크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지만 소가 도축되는 곳에 가거나, 냄새를 맡거나, 신발에 피가 튀기는 것을 원치 않는 것과 같다. 이 영화는 뉘우침이나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제는 '유대인 학살을 잊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글레이저 감독은 역사의 되풀이를 지적하고자 했다.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시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지금은 가해자가 된 가자지구의 현실을 끌어왔다.

 

벽은 그제서야 깨진다. 영화는 영화만으로만 남지 않았다. 아직도 담장 너머에는 사람들이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암전된 영화관 안에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의 두려움에 대해 느낀다. 세상엔 불가항력이 너무 많으니까. 나는 내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 '청소'를 맡았던 회스가 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처형 당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비극은 예고하고 온 적 없다. 불행은 선택 당한 적 없고,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음이 참 어려운 날들이다. 이런 영화에서 여러분의 행복과 평화를 빌어서 미안하다. 무딘 마음으로 살지 않고 조금 더 세상을 바로 보면서 살고 싶다는 책임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P.S 좋은 영화를 수입해주신 소지섭 배우님 이번에도 신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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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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