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말 그곳에 예술은 없었나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작품의 크기는 그 자체만의 크기는 아니에요. 작품을 둘러싼 공간 역시 작품의 일부예요."
글 입력 2024.07.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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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예술은 없다." 아마 길 가는 사람 10명에게 '미술은 예술에 해당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최소 7명 이상은 맞다고 답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미술 작품 백여 점이 모여 있는 전시회에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작가가 있다? 어떤 의도에서 자신의 작품 전시를 예술이 아니라고 정의한 것인지 궁금해 하비에르 카예하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 방문 일자를 기다리던 중 SNS에서 작가에 대한 정보 카드뉴스를 접했다. 하비에르 카에하는 알사탕처럼 큰 눈과 더벅머리의 캐릭터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 현대미술가다. 그는 친구 권유로 SNS에 작품을 올린 뒤 하루 만에 좋아요 48만 개를 얻었다고 한다. 48만 개. 시작과 동시에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얻다니. 대표 작품을 몇 개 확인했을 땐 캐릭터 작가인가 싶었는데, 전시가 더 궁금해졌다.


전시회장에 입장하니, 어두운 방에 'ARE YOU READY?'라고 손 글씨로 적힌 메모가 홀로 빛나고 있었다. 준비됐다는 각오를 보여주듯, 메모 앞에서 티켓 사진 인증 사진을 찍고 본격 전시가 시작되는 옆 방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왠 걸. 이제부터 작품들이 벽면에 줄지어 있을 거라는 예상을 뒤엎는 광경이 나타났다. 전시 기간이 끝나 철수한 것처럼 텅 빈 곳이었다. 한쪽 벽에는 표지판을 들고 있는 팔이 달랑 붙어 있었는데, 표지판에는 <이곳에 예술은 없다>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이미 이 전시의 주제를 알고 있었지만, 시작과 동시에 핵심 주제를 맞닥뜨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해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직전에 마음의 준비를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힘이 빠지기보다 킥킥 웃음이 터지며 다음엔 또 어떤 장난 같은 이야기가 준비돼 있을까 궁금했다. 사실 알고보니 표지판이 있는 방에는 액자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백지가 걸려 있었다. 예술은 없다더니.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구나. 다음 방으로 이동하려고 보니, 방향 대신 'EXIT 출구'라고 벽에 쓰여 있었다. 당연히 전시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한참 남았다고 확신했지만, 꿋꿋하게 출구라고 표현한 작가의 뚝심이 귀엽고 재치있었다.


가짜(?) 출구로 나가니 본격적으로 하비에르 카예하의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상징과 같은 엄청나게 큰 눈망울의 다양한 어린아이들 캐릭터와 검은색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전시에서 재밌었던 지점은 캐릭터 자체보다는 그 캐릭터를 다양하게 표현한 방식이었다.


크기가 큰 그림, 작은 그림은 일반 전시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액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거나 그림의 배경이 액자 틀 밖으로도 이어져 있었다. 캐릭터를 그림에 국한하지 않고 드로잉, 조각들로 표현했다. 특히 조각들은 장난감 크기부터 키를 훌쩍 넘는 길이, 두 팔로 감싸 안아도 한참 모자랄 것 같은 둘레 등 다양한 변주가 있어 보는 맛이 쏠쏠했다.


작가가 먼저 "내 작품에는 무언가 있지만 나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관람객이 그것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아요"라고 한 덕분에 전시를 보면서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그렇다. 이 전시에는 다른 전시회에는 꼭 있는 설명 카드가 없었다. 마음 놓고 낄낄거리며 가볍게 전시회를 구경했다.


게으름, 우울함 마저 귀엽고 밝게 풀어내는 그림들을 보며 유쾌함을 위한 전시구나! 홀로 결론을 내렸었다. 전시 막바지쯤 나온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보기 전까지. 인터뷰 영상은 작가가 예술을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힘들었던 순간, 유명해진 과정이 모두 설명하고 있었다. 작가의 예술관도 조금 엿볼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의 크기는 그 자체만의 크기가 아니다. 작품을 둘러싼 공간 역시 작품의 일부'였다.


예를 들어 원룸에 살고 있다고 해도 한 개의 방을 넘어 집을 둘러싼 정원, 동네 공원까지가 내 공간이다. 즉 하비에르 카예하에게 인 작품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물리적인 크기가 아닌 상상력의 크기인 것이다. 작가의 작품 성격을 잘 보여주는 주장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가 내게 커다란 흥미로 다가온 이유는 작품의 외형보다는 작품이 지닌 작가의 상상력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하비에르 카예하는 독창성이란 자신이 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전시를 보면서 나는 가지지 못한 상상력의 깊이가 부럽고 역시 독창성이란 재능인 건가, 씁쓸했는데 아니었다. 물론 나의 독창성은 하비에르 카예하의 독창성과 모습이 다르겠지만 나도 내가 되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독창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계속해서 인터뷰에서 희망을 이야기했다. 25살,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해 주변에서 이야기가 많았지만 삶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으로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예술을 하면서 실패하고, 그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지만 한편으로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좌절 후 포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규모를 작게 시작해 점점 작품 세계를 키워간 하비에르 카예하. 행복하기 위해 행복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신념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희망을 품고 세상을 표현한다. 몇 분 남짓의 인터뷰 영상을 다 보니 비로소 전시 감상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누구나 알 만큼의 인지도를 쌓은 작가는 아니지만 방문이 후회되는 전시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꼭 작품을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작품이 다양해 사진 찍기에도 좋은 전시였다. 아직 미술 전시회에 장벽을 느끼고 있다면, 이곳에 예술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 힘입어 새롭게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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