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죽이고 지켜본 시대의 여성상, 여자야 여자야 [무용]

글 입력 2024.07.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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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금요일, 지역공연으로 투어를 하고 있는 안은미 안무가의 <여자야여자야> 공연을 보기위해 금천구청 앞 위치한 금나래아트홀에 방문했다.


<여자야여자야>는 작년 8월달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주최하는 공연으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초연 무대에 올랐는데, 이번에 투어공연으로써 다양한 지역 공연장에서 이번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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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 여자야


 

처음 무대에 들어서면, 기존의 무대와는 조금 다른 광경을 느껴볼 수 있다. 막과 뒷 배경에 안전모 같은 흰색 원들이 배경을 채우고 있고,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서 할머니 한 분은 검정색 큰 보자기 모서리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이후 공연이 시작되면 할머니가 가고 난 자리는 빨간 불빛으로 바뀌고, 신선처럼 보이는, 담뱃대를 문 선비가 흰 소복을 입은 여성을 손전등으로 비춘다. 여성은 자신의 몸보다 큰 항아리를 머리 위에 메고 있고, 그 뒤에선 자전거를 타고 무대 위를 빠르게 지나가며 시대가 흐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빨래터에서 빨래를 짜는 두 여인, 곧 결혼을 앞둔 새색시, 그의 남편까지. 점차 무대를 채우며 시대의 변화상을 빠르게 나타낸다.

 

이후, 그동안의 수많은 여성의 이름들을 호명하는 안은미 안무가의 음성과 함께 가방을 들고 한 여성이 비틀대며 걸어나온다. 그러고선, 마치 당시 신문에 나오는 여성과 동일시되어, “머리를 깎은 여자는 이 여자가 처음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역사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무대에 내려온 그녀의 머리를 관객들이 한쪽씩 잘라주는데, 마치 관객들을 과거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느낌이 든다.

 

이후 흰 소복을 입은 여자와 남자 무용수가 등장하고, 비틀거리는 걸음거리, 튀어오르는 군무와 땅을 치는 동작들. 남자의 허리춤을 붙잡고 끌려나오는 무용수, 무대로 등장하는 빨간색 확성기는 일종의 무기가 되어 무용수들에게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을 내뿜고, 그 고통의 강도만큼 더욱 강해져가는 움직임의 크기를 볼 수 있다.


처음 무대에 펼쳐져 있던 검은 천은 세월의 역사를 기록하고 계시던 뜨개질 할머니의 역사가 아닐까. 이어지는 안은미의 솔로 파트에서 그 무거운 시대의 역사는 한국 왕비의 저고리를 걸친 안은미 무용수를 뒤덮기도 하고, 검은 치마가 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질며든 듯 보인다. 이 파트를 소화해낼 수 있는 안은미 안무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후 가슴을 치며 나오는 일본군의 모습과 함께 파이프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 마치 독립운동가를 연상케하는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신의 몸보다 길고 큰 파이프를 들고 땅을 짚고 위로 튀어오르며 춤추는 무용수들은 난장판이 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간중간 울려퍼지는 총성소리는 더이상 총소리가 아닌 춤의 비트가 되고, 파이프는 무용수들이 땅을 짚고 하늘로 튀어오르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모습은 태극기 하나에 목숨을 걸고 튀어오르던 당시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리기까지 한다.

 

 

 

신여성의 현주소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신여성’, 안은미 안무가가 재정의한 한국의 신여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간의 여성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인간다움이 아니었던 여성, 사회에 얽매여 억압받던 여성의 모습과 그 안의 용감하고 대담한 ‘신여성’의 역사를 몸의 언어로 다시 써내려가는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진행될수록, 점차 무용수들의 의상에 색이 더해지고 해학적인 움직임을 선보인다. 80분 간의 러닝타임에 녹여낸 많은 장면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짧은 필름테이프를 감은 듯 머릿속에 스쳐간 여운이 남는다. 화려한 의상 안에 숨겨진 검은색 치마, 그리고 그 속안에 숨겨진 땡떙이 무늬의 형형각색 의상을 보니 겉으로 보이는 건 가짜고 진짜를 두 눈으로 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오히려 무대에서 몸을 날리고, 가고 싶은 방향대로, 보고 싶은 시선 그대로 선보이는 무용수들의 자유분방함이 안은미가 정의하는 신여성의 정의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부터 안은미의 작품에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는 살아 있는 역사, 시간성을 언급해왔다. 어찌보면 이번 작품 또한 안은미만의 색을 담은 무대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물결처럼 앞으로 이어질 세대를 끌고나갈 여성을 고대하며, 무대를 마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은미의 색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색을 가졌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색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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