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번 정류장은 유토피아 역입니다 -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히어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7.29 20: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10.jpg

 

 

아 잠시만요. 티켓 확인은 여기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늦으셨다고요. 괜찮습니다. 여기 대부분 퇴근길에 오신 분들이에요.

 

아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유토피아 역까지 여러분을 안전하게 안내할 가이드입니다. 오늘 저와 이 여정을 함께 할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갈 이곳은 유토피아 세계입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은 잠시 잊고 마음의 짐과 걱정도 모두 내려놓으세요. 행복과 안락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9.jpg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이 문만 열면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만 해왔던 혹은 아예 없다고 단정 지어버린 유토피아 세계가 펼쳐집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흥분하지 마시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차례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 첫 번째 도착지입니다. 한 분씩 천천히 내려가시면 됩니다. 푹신하죠? 우리의 발이 닿은 이곳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닌 구름이거든요.


흔히 우리는 일상에서 기분이 좋을 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비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진짜 구름 위를 걸어보며 그에 따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름이 주는 푹신함과 안락함, 이것에서 오는 안정감을 모두 느껴보세요. 하늘의 빛깔과 빛나는 태양의 모습도 더 가까이에서 담을 수 있습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1.jpg

 

 

아 저기 사람이 보이네요. 조금 위험할 것 같다고요? 전혀요. 이 사람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기에 매우 익숙합니다. 하늘 아래 앉은 곳이 곧 그들의 집이 되고 대화를 나누는 곳은 구름 위가 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행복을 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죠. 그들이 나누는 기쁨과 대화, 긍정의 마음은 모여서 또 하나의 구름이 됩니다. 혹여나 넘어져도 아프지 않게 그들을 지탱해주는 구름이 이토록 풍부한 것도 모두가 행복의 말을 담아내기 때문이겠죠.


좀 더 가까이 와서 구름에 발을 담그고 시원함과 포근함을 만끽해보세요. 이곳에 사는 이들의 삶의 태도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조금 더 깊은 자연 속으로 갑니다. 우리밖에 없어서 그런지 되게 조용하네요. 물과 풀, 구름, 하늘만이 가득한 잔잔한 곳.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8.jpg

 

 

매우 익숙한 곳이죠. 일상에서도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입니다. 최근 무더위가 지속되며 곳곳에 폭염 경보가 들려오는데요. 그렇다고 무더위만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장마와 태풍 등으로 많은 비가 내려 침수 상황도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여름에 이러한 사태를 실제로도 그리고 뉴스에서도 많이 접하지 않으셨나요? 자연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지하철이나 영화관, 식당 등이 모두 물에 잠기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서운가요. 우리는 분명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곳은 유토피아 세계입니다. 지하철 안이 물에 잠겨있어도 그것이 우리를 위협하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윤슬, 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결합해 나른한 오후의 느낌을 조성하네요. 이 물은 여기서 더는 차오르지 않을 거란 믿음마저 안겨 줍니다. 가볍게 족욕을 하거나 물장난을 칠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7.jpg

 

 

좀 더 다가와 보세요. 일상의 터전에서 벗어나 더 깊숙한 자연으로 갑니다. 하늘과 구름과 풀밭이 있는 곳으로요.


본격적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될 시간입니다. 누워있는 저 사람은 누구냐고요? 놀라지 마세요. 사람의 형태를 띤 자연입니다. 이곳은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없습니다. 구름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인간의 그림자가 물웅덩이가 되기도 하는 곳. 기존에 우리가 알던 모양은 아니어도 그 무작위성 속에서 친숙함을 찾아보세요.


자연을 개발해 편의시설에 활용하는 인간, 자연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은 모두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피부에 닿는 햇빛을 느끼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네요.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6.jpg

 

 

어느덧 이곳도 밤이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사방은 어두워졌지만,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여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과 걷는 사람들도 있고 저쪽 너머에는 함께 노를 젓는 이들도 보이네요. 덕분에 이 밤이 무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연 속에 사람이 걸어 다니고 그 위에는 달빛이 있기에 색감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동안 초록이 우거진 산만을 봐왔는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산도 존재한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이 드넓은 곳을 지나가면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만약에 이곳 유토피아 세계가 일일권으로 체험하는 공간이 아닌, 삶의 터전이 되어 일상의 거처로 자리 잡는다면,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은 남겨두고 자신만 오는 것이라면 계속 이 세계에 남으실 건가요?


아무도 없네요. 살아가는 세상은 그 환경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는 유토피아로 가는 표를 한 장밖에 얻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아름다운 세상을 혼자 보며 눈에 담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목적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의지도 포함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하는 정서적 연결은 경험 공유의 아름다움을 몇 배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어쩌면 유토피아 세계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기변환]벽.jpg

 

 

네 계속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 잠시만요, 어떡하죠?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길이 맞았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마세요. 유토피아 세계에서는 혼란과 외로움, 안정감이 모두 공존합니다. 다시 말해 길을 잃어버린 것이 불안할지 즐거울지는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죠. 오히려 길을 잃었기에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기회가 되기도 하지 않나요? 우리에게 펼쳐질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환상을 계속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렇다면 그 환상의 이면에는 진실이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어떤 행위를 하는지 알 수 없고 표정도 모호한 사람들을 섬뜩하게 여기지 마세요. 공간이 주는 어지러움과 거대함에 압도감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분열과 대칭, 몽환 속에서는 그만큼의 생생함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아래나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가 보이는 세상만이 과연 전부라고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 서 있는 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5.jpg


 

다시 밝아지네요. 거봐요. 다시 길을 찾았잖아요. 우리는 올바르게 오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 세상은 여름이 저물고 가을의 선선함이 막 시작된 때인 것 같네요. 해가 질 무렵 파란 하늘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멀어져 가는 여름날의 추억을 회상할 때입니다.


저 멀리 떠나가는 돛단배를 바라보며 여름날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최근의 기억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의 순간도 모두 좋습니다. 다행히 늦여름의 저녁은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이네요. 여기서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어릴 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날이 떠오르네요.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의 특성을 이용해 옷이 땀에 젖을 때까지 뛰어놀았었는데.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하나둘씩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그려집니다. 현실에서 경험한 순간이 한여름의 꿈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요? 현실 세계 속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일몰의 순간과 파스텔톤 배경이 어우러진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때 그 순간이 한없이 먼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날의 순간이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상상 속의 세상으로 여겨집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44159.jpg

 

 

자 여러분, 어느덧 마지막 도착지에 다다를 예정입니다. 유토피아 세계와 가장 맞닿아 있기도 한 이곳. 과연 얼마나 황홀한 세계가 펼쳐질까요. 이 창문을 지나면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시작됩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따뜻한 배경 한가운데에 서 보세요.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이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세요. 이 거대한 자연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껴지시나요?


한 그루의 나무, 만개한 꽃들, 광활한 대지는 우리의 다채로운 경험과 무수히 겪어온 시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 속 하나의 퍼즐 조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삶은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가요.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는 그 순간을 살아가기에 현재를 포용하되 너무 작은 것들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거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좀 더 구경하고 오셔도 됩니다. 이곳을 자유롭게 거닐며 막연하게 동경했던 세상을 상상하고 지루한 일상의 한계를 극복해 보세요. 그 후 여러분 각자가 진정으로 꿈꿨던 유토피아 세계를 그려보세요. 이곳은 그 세상과 얼마만큼 일치하나요?

 

 

[크기변환]KakaoTalk_20240729_204633175_04.jpg

 

 

이제 모든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떠셨나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다 얻었나요? 생각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이었나요? 이곳까지 오기가 분명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만큼 기쁨과 놀라움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이 유토피아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히 머무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이제 현실 너머의 세계를 안내해줄 저도, 꿈같았던 유토피아 세계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 올 수 있게 도와준 정류장도요.


다만 오늘 여러분이 체험한 이 세계를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며 외면하지 마세요. 이 세상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며 허황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유토피아 세계가 여러분이 막연하게 그려오던 세상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듯이, 불완전한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상향의 세계와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현실의 유토피아를 찾아 나설 여러분의 우주가 마냥 차갑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부디 안전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컬쳐리스트.jpg

 

 

[이지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