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국어가 그리워지는 순간 [영화]

자막없는 영화를 보며 느낀 것
글 입력 2024.07.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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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런던에서 생활한 지도 50일이 되어간다. 이제 현지의 분위기와 함께 녹아들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몇 주 전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인사이드 아웃 2가 런던 곳곳에서 홍보하고 있는 걸 발견했었다. 마음 한편에는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감정과 과연 내가 내용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래서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관람하기로 마음을 굳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나의 일본인 친구가 나에게 인스타로 연락을 보냈다. 바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가자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혼자보단 둘이 함께할 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곤 한다. 그런 것처럼 나 역시 런던의 영화관이 갑자기 궁금해졌고, 2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전에도 ott 서비스를 이용하여 영어 자막을 켜고 유명한 영화들을 관람했었는데,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애니메이션으로 첫 영화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시즌 2를 보기 전, 시즌 1을 다시 한번 집에서 관람하고 가면 반복되는 표현들에 더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영화를 보기 하루 전에 영어자막과 함께 복습하고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영화관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팝콘과 맥주들로만 가득해 새삼 한국의 간식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당연히 영화는 자막 없이 진행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70프로 정도 알아들었던 것 같다. 인사이드아웃은 제목과 같이 주인공의 내적 감정을 나타내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심리적인 단어들이나 나오거나, 인간의 내적 고민들을 다루는 순간에는 깊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주인공의 불안을 다루는 캐릭터인 불안이가 최종 경기 전에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없을 때, 한국어 자막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요즘 넷플릭스나 다른 ott 서비스는 위치를 파악하여 사용자가 외국에 있는지, 어떤 국가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나 역시 사용하던 넷플릭스가 갑자기 자막이 켜지지 않아 확인하니 영국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자막 없이 영화나 다른 영상물들을 시청하고 있다. 물론 영어 자막은 자동적으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자막과 함께 주인공들의 상황적 구성을 이해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휴식 혹은 힐링의 목적으로 영화를 보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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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한국어는 정말 많은 형용사적 표현들이 존재한다. 다른 언어들로 번역될 수 없는 표현들은 영화를 멈추고 단어를 찾아보면서 의미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든다. 새삼 한국어 자막을 위해 힘써주는 수많은 번역가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외국에 지내면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은 ‘불쌍하다’와 ‘억울하다’라는 단어이다. 불쌍하다는 표현은 물론 poor로 말할 수 있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단어라고 생각이 들어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니, 자신들도 ‘불쌍하다’라는 단어가 모국어로는 쉽게 설명되는데 막상 영어로 번역하자니 poor 보다 더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 아쉽다고 말해주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현재 타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는 표현적 장벽에 가장 많이 부딪힌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로는 수많이 사용했던 단어들이 막상 번역이 안 되는 것에 당황하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말해야 오해가 없을지 고민하기도 한다. 어떤 언어든 한 끗 차이의 표현으로 긍정이 되기도,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삶이든 언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국가의 정체성이다. 내가 당연시하게 여기던 영화보기가 타국에서는 장벽으로 다가오기도, 새로운 도전으로 나를 맞이하기도 한다. 정말 사소한 것들에 가끔씩은 한국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이 삶 역시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어 행복함이 나를 감싸준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리고 도전하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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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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