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카고 공공도서관 여정 1. 한국 책을 발견하다. [여행]

Budlong Woods Branch 버드롱 우드 브랜치 편
글 입력 2024.08.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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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지낸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다. 밖은 내가 지금껏 경험한 날씨 중에 가장 춥다. 심지어 아침이란 시간대가 무색하게 도통 해를 보기는 어려운 흐림에 눈은 수시로 펑펑 쏟아져 내린다. 2024년 1월 내가 피부로 느낀 시카고 겨울이다. 겨울이란 단어가 흔히 지닌 문학적 뜻을 가장 잘 느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시리고 추운 외적인 요인들이 나의 마음마저 시리게 하게 둘 순 없었다. 그래서 겨울잠을 자야 할 것만 같은 악조건 속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을 향했다. 그리고 그 어려웠던 한 발걸음은 '원 북 원 시카고' 찾아 시카고를 선택했던 내 첫 마음을 확인할 기회의 시간을 주었다.


Chicago Public Library는 줄여서 CPL이라고 불린다. 시카고의 도서관은 Central, Regional, Branch의 총 3가지 명칭을 가진다. Central 한 곳, Regional 3곳, Branch 77곳으로 총 81개의 지점이 있으며 책 보관량에서 미국에서 9번째로 크다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내가 처음으로 찾은 CPL의 도서관의 정식 이름은 ‘Budlong Woods Branch’이다. 학교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제일 가까운 공공 도서관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그렇지만 발걸음을 멈추기 아쉬워 가로수길 나무 따라, 공원 따라, 즐비한 가정집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니 찾았던 도서관이 나왔다. 어떤 지점을 생각하면 그 지점만이 지닌 특별한 테마가 떠오르는 것이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매력이다. 각각의 지점들은 개성이 있다. 특별한 테마를 찾으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발견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지점이 가진 특징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공동체


 

이 도서관이 보여주는 또 다른 테마는 시카고 그 자체이다. 마을 공동체가 하나의 테마이다. 지역 도서관이 응당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피부로 우리 모두 시카고 사람이다를 책으로 느끼게 한다. 지역을 알리는 방법에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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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리노이 시카고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안내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16명의 일리노이주 작가들과 그 책들을 소개하는 구역이다. 그런데 사진 하나도 그냥 담기지 않았다. 작가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정보 읽어내기가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쓴 이야기가 나와 더 가깝게 느껴져 호기심이 생긴다. 무심코 지나쳤던 배경이 이 인물들에겐 이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싶고, 작가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생각해 보며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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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가 되었든, 그 역사가 되었든 도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상징을 보여줄 수 있는 지역지들의 존재도 한몫한다. 지역 신문만 떠올리면 안 된다. 시카고 관련 역사부터 문화예술 및 스포츠까지 섭렵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잡지들도 주제별로 매체성격대로 분류되어 있다. 역사와 관련된 사건도 정리되어 있지만 ‘시카고에서 즐길 수 있는 167가지’와 같이 흥미로운 주제도 많다. 시카고 하면 떠오르는 옛 가치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현재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전한다. 그래서 지역 소식을 알고 싶은 주민에게도 좋은 장소이지만 관광객에게도 한 번쯤은 권하고 싶은 장소가 된다. 과거에 파묻히지 않고 더 나아가려는 미래지향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서관이 가진 긍정적인 공간의 의미는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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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원시카고 독서운동도 빼먹을 수 없다. 말로만 듣던 한 도시 한 책 운동의 전개를 눈으로 확인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021년 20년을 맞이했기에 그동안의 선정된 도서들은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만큼 독서운동이 도서관 방문객에게, 도서관 운영 둘 다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023년의 책은 그 홍보지와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작은 도서관에서 거대하게 홍보되고 있었다. 해당 연도의 그 한 책은 매년 9월 선정된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2023년의 책은 '원 북 원 시카고'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는 방문객, 찾으려던 책을 아쉽게 손에 쥐지 못한, 손이 조금은 남는 방문객이라면 선정 도서를 한번 읽게 될 거 같다. 관심을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날로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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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들은 지역 전단들과 광고 소식지였다. 게시판과 지역지들은 저마다의 새로운 소식을 주민에게 알리기 바쁘다. 난잡하게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것들이 오히려 정리되지 않아 활기차게 느껴졌다. 짧게 머물다 가지만 나 또한 지역 주민으로서 마을에 어떤 새로운 이벤트가 있는지, 어떤 모임이 구성되고 있는지 한번 훑어보게 된다. 홍보지부터 지역지까지 다양한 종이 매체의 향연 그 자체다. 손수 꾸며진 게시판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아무리 상대가 친절해도 다른 문화권이라는 함수 속에 친절이 들어가면 미국 생활 동안 친절이 정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전자와 기술로 갖춰진 최첨단 맞이해주는 것이 아닌, 사람 손의 흔적이 묻은 도서관 입구에서 한국에서만 느껴지던 ‘정’이 느껴졌다.

 

 

 

익숙한 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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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라고 생각했던 예감이 적중했던 것일까. 내가 잘못 봤나 싶은 그리운 글자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한국인을 위한 한국 도서들만이 따로 마련된 책장이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고 있는 유명하고 뻔한 책들만 있지 않았다. 한국 순수 문학 작품부터 번역서, 수필까지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유명세에 따라 책이 선정되어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다. 또 옛날 책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책들도 많다고 느껴졌다. 미국에 오기 직전에 한국에서 읽던 책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나는 그리운 감정을 달랠 수 있었다. 한국어로 된 종이 책을 읽을 기회가 그동안 없었다. 종이 질감을 느끼며 한 자 한 자 읽을 수 있는 한국어책에 감사한 마음이었고 잠시나마 향수병을 달랠 수 있었다.

 

세계의 독자들을 홀렸던 한국 문학 작품들의 번역서도 물론 만나볼 수 있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다른 책 'Greek Lesson'(원제: 희랍어 시간)과 김금숙 작가의 한국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룬 만화 'The Waiting'(원제: 기다림)'이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있어 반가웠다. 내가 알고 지내던 한국 도서의 세계와 미국 도서관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 못지않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신문을 읽고 계신 한국 어르신들이었다. 열심히 한 자 한 자 한국과 관련된 소식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타지에 있으면서 내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지역의 소식에 충실해지고 싶다가도 동시에 고향의 소식과 계속 연결되어 있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어서다. 동시에 두 세계의 소식과 보폭을 맞추어야 한다는 나의 마음을 달래는 데 한국 신문들은 제격이었다. 이전에 이 마을이 한인타운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더 이상은 그 의미를 잃었지만, 가끔 마을에서 한국어 표현들을 보면 그 잔재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오니 잔재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있는 마을의 문화였음을 느꼈다.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 도서관의 시작은 이민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전엔 한국어가 이미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지식의 향유를 제공하는 도서관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한국어가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도서관이 한국어 관련 행사의 장소 제공 역할을 하면서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구심점이 되어준다. 왜 한국어책이 많은지 궁금증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면서 한국드라마 팬 페이지들의 도서관 소개 글들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이 도서관은 한국 드라마 팬들에게 종이 콘텐츠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한국어가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이 흥미롭게 접하는 모든 제2차 콘텐츠의 뿌리가 되는 원형 자료를 미국 작은 마을의 공공도서관이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술과 만난 책이 갖는 의미; 왜 한국어책이 많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인타운이었던 과거가 있어도 곳곳에 공공도서관이 여럿 있는데 왜 이 지점만 한국어로 된 책이 많은 걸까? 그 답을 미술 작품에서 찾았다. 버드롱 우즈 브랜치 지점은 예술 사업의 지원을 받아 설립과 함께한 미디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제작된 벽화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책 나들이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도서관 외관의 큰 벽화는 도서관 건물을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책 세계로의 여행과 감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작품의 제목은 ‘Learning to Fly’로 벽화 예술가 Hector Duarte에 2023년 7월 헌정했다. 이 벽화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2022년 여름 도서관 이웃들과 함께 도서관 앞마당에서 예술가와 함께 만들어졌다. 이웃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과정 또한 특별하다.


벽화 마저 왜 중요할까? 강렬한 색채와 건물 전체를 뒤덮은 압도적인 크기로 한번은 지나가면서 더 보게 된다. 숨겨진 의미를 알고 보면 벽화가 가진 외적인 크기를 넘어서는 감동을 할 수 있다. 벽화를 보면 도서관을 중심에 두고 책들이 날개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벽화가 상징하는 것은 이민자와 포용성이다. 벽화의 책장은 꽃과 나비로 변하는 서사를 갖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도서관을 둘러싼 동네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고 전했다. 지역 주민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일명 공공도서관은 지역카드, 주민혜택으로 지역공동체만 이야기하기도 바쁜데 특별하게 세계성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책은 함꼐를 만들기 위한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고 그 책이 담긴 공간, 도서관도 마찬가지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예술적으로 보여준다.


책과 시대의 고민 또한 담겨 있다. 벽화의 책의 첫 페이지는 목재 펄프로 만들어졌다. 태블릿으로 책이 읽히는 시대적 변형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도서관 지점장 Tom Stark는 기술의 변화로 말미암은 두려움과 정치적 반향을 표현하고자 함이라고 전한다. 지식은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는데 시대 변화로 종이책은 점점 잊혀 가는 응어리가 표현된 것이다. 하루의 시간대별로 조명의 크기를 달리하며 멀리서 볼 때 보이는 것과 가까이서 보이는 것이 또 다르다는 것까지 생각하며 만들어진 작품이다. 조명이 어디를 비추는지에 따라, 계절별로 무엇과 어우러져 함께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꽃, 나비, 박쥐와 같이 세세한 것들도 보이기도 했다.


벽화의 해석은 열린 결말이다. 지점장은 시간대에 따라 벽화는 다른 감상을 제공하며 누가 어떻게 벽화를 보느냐에 따라 벽화는 달리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들어갈 땐 낮이었지만 나올 때는 밤이었이게 조명이 켜진 벽화를 보면서 나올 수 있었다. 책의 해석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듯이 관점에 따라 벽화에 대한 감상도 누구에게나 다르게 열려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화가 Duarte는 벽화를 작업하며 다양한 공동체의 도움을 잊지 않고 표현했다. 벽화에 대해서 ‘우리는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모두를 위한 언어입니다’라고 말했다. (“We think with the heart. Love i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human beings. It’s the language for everyone.‘)


활자로 된 언어를 쫓으러 간 도서관에서 책이라는 언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소통의 기회를 주고 함께의 가치를 위해 타인과 나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벽화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알고 보면 도서관은 책 한 권을 빌려줄 수 있다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지식과 마음마저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한 번의 외출로 도서관은 언제나 내 편이다는 감정이 생겼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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