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서운 것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 무서운 그림들

무서움에 대한 무수한 갈래
글 입력 2024.07.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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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

 

무서운 그림들이라고 한다. 무섭다는 건 뭘까. 어쩐지 꺼려지고, 두렵고, 피하고 싶어지는 그런 감정. 너무 현실적이라서 무섭기도 하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무섭기도 하다. 괴기스러움이 직관적인 무서움이 되기도 하고, 평온한 모습 뒤로 심오한 이야기가 예상되어서 무서울 때도 있다. 무서움은 다양하다.

 

이 책에서 본 이야기와 그림 중 인상적인 무서움이 몇 가지 있었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무서움, 화려한 그림 뒤에 있는 위험한 이야기, 무력함이 느껴지는 무서운 현실, 그리고 현실의 확장판이 된 화폭.

 

 

 

1. 아르놀트 뵈클린


 

스위스에서 태어난 뵈클린은 독일과 벨기에에서 그림을 배우고 프랑스에 입성하게 된다. 초기 작품을 보면 인상적인 무언가는 없더라도 실력이 쌓아 올린 안정적인 풍경화가 있다. 평온해 보이는 풍경에 어쩌다 죽음이 서리게 되었을까.

 

유럽의 장엄한 풍경에서 사신을 그리기까지, 많은 이별과 상실이 있었다고 한다. 전염병과 전염병, 하나둘씩 떠나는 품속의 자식들. 저자는 작가의 말년작 ‘페스트’를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왜 당신은, 왜 이곳은 예외여야 하는가.”라고 표현했다. 어떤 죽음은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뵈클린은 하나의 상실을 소화하기도 전에 다른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죽음이란 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죽음과 죽음, 그리고 다시 돌아온 전염병.

 

무섭다. 예외 없는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더 자주 찾아올 수 있다는 현실이, 그 현실이 누군가의 관점을 바꾸어놓았다는 결과물이.

 

 

 

2. 제임스 휘슬러


 

제임스 휘슬러와 그의 뮤즈 히퍼넌의 이야기. 유난히 화사한 연백색의 드레스가 캔버스를 뒤덮고 있다. 그렇게 밝게 빛나는 차림새의 히퍼넌이 등장한 작품이 여럿. 드레스를 수놓은 연백색 안료에는 반짝이는 납이 은밀하게 숨어있었다.

 

히퍼넌을 향한 애정이 담길수록, 그림이 화사해질수록 휘슬러는 납중독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납 중독은 사람의 성격을 바꾸어버린다. 그 결과 불안증과 잔병치레에 시달린다. 납 중독에 따른 증상 때문인지 어쩔 수 없는 흐름인지 히퍼넌도 그의 곁에 남아있지 않는다.

 

애정과 낭만을 담은 화사한 그림의 뒤에는 그늘진 작가의 삶이 남아있다. 알지 못하면 아름답기만 하다. 실제로 보면 더 매혹적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작가를 갈아 넣어 빛이 나는 연백색. 비하인드를 생각하면 어쩐지 오싹하다.

 

 

 

3.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는 작품 중 하나. 금색의 그것. 클림트가 오랜 시간 걸려 완성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다. 수많은 스케치가 증명하는 정성, 결과물에서 보이는 섬세한 시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나치의 손에 넘어간다.

 

아델레의 남편 페르디난트는 돈이 많은 유대인이었다. 어디론가 몸을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클림트의 그림을 챙겨갈 수 없었다. 히틀러의 사후, 2차 대전이 끝나고서 아내의 초상화를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가치 있는 작품은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아델레와 페르디난트의 귀염을 받고 자란 조카 알트만. 성공한 사업가는 숙모의 초상화를 되찾아오기로 결심하고 소송을 준비한다. 그녀의 나이 여든두 살에 시작한 일, 60년째 남의 것으로 존재하던 그림은 8년 뒤에야 제 자리로 돌아온다. 이미 연로한 알트만은 그림을 처분하고 기금을 마련하여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후원하고 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숙모의 초상화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조건을 내건다.

 

알트만에게 재력이 없었다면 클림트의 그림은 주인에게 되돌아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빼앗긴 그림이 될 뻔했다.

 

 

 

4. 외젠 들라크루아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바이든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는 폭군이었던 사르다나팔루스가 성군으로 바뀌었다. ‘사실은 이러했다’는 이야기에 들라크루아는 반란군이 가져온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왕을 그렸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면 나올 수 있는 모습, 그림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피 한 방울 그리지 않았지만 붉은색은 생명, 때로는 죽음이라는 공식을 보여주듯 피가 아닌 죽음을 내보이고 있다.

 

‘하오스 섬의 학살’이 그러했듯, 고상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은 꾸밈없는 죽음이 화폭에 전시되었다. 환상적이기는커녕 어디선가 말과 말로 옮겨져서 부피를 더한 이야기처럼 현실과 맞닿아있는 모습. 실재하는 것만이 생생한 건 아니었다.

 

*

 

저자의 다른 책 ‘결정적 그림’을 재밌게 읽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역시나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경 설명,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정보들. 교양서적 같은데 이야기책처럼 술술 읽을 수 있다. 처음에는 모르는 작가의 이야기를 골라서 읽다가, 아는 그림의 이야기를 찾다가 나중엔 이야기를 먼저 읽고 그림을 상상했다. 어떻게 읽어도 잘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던 이번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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