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이 싫습니다만, 제 작품은 10억원이 넘거든요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맑눈광 아이가 건네는 이야기
글 입력 2024.07.30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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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예술을 싫어하는 작가가 있다. 스페인 출신 작가 하비에르 카예하다. 오죽하면 전시 제목이 '이곳에 예술은 없다(No Art Here)'일까. 그는 진짜 예술을 싫어할까? 엄밀히 말하면 그는 '현학적이고 난해한 예술'을 싫어한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염증을 느낀 카예하는 직관적인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가볍지만 무겁다


 

카예하는 심플함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는 작업 초창기부터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Simple but No easy)'는 모토를 지켜왔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니? 말장난 아닌가 싶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을 원하진 않아요. 그저 관람객이 작품을 선입견 없이 감상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 하비에르 카예하


그의 작품에는 항상 캐릭터와 함께 짤막한 메시지가 등장한다. 형식만 보자면 참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하기에 더욱 '상상할 여지'가 많다. 작품 속 맑눈광 아이가 알쏭달쏭한 말을 톡- 내뱉는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물음표를 던지니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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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 작품은 'Faith'였다. 머리에 꽃을 단 순수한 아이가 초록색 물체에 위태롭게 서 있다. 아슬아슬한 모습과 달리, 아이는 신념을 읖조리며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신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 빛을 볼 거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카예하는 예술가로 성공하기까지 자신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지 않았을까. 나 자신, 자신감 둘다 해당한다. 현생에 치여 창작 활동에 소홀한 내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였다.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Think outside the box. (상자 밖에서 생각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라는 뜻이다. 상자 밖 대회를 하면 1등을 할 것 같은 카예하는 전시장 곳곳에 기존 예술의 틀을 깨려는 시도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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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No Art Here' 팻말을 든 손이 벽면을 뚫고 나와 있다. 해당 공간에는 작품 하나 없이 텅 빈 액자만 놓여있다. 이곳엔 정말로 아트가 없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액자가 마구 쓰러진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액자가 꼭 가지런해야 해?' 카예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벽면의 거침없는 드로잉, 바닥에 나뒹구는 스케치도 있었다. 실제로 카예하가 본 전시에 직접 현장 드로잉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이 하지 않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최대한 특이한 척을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독창적이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 하비에르 카예하


인터뷰 영상에서 카예하가 직접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영상이 무척 인상 깊었다. 예술가로서 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교훈적이었다. 호흡이 있는 영상이었는데 전시장에 벤치가 있어 편하게 앉아서 보았다. 다른 작품은 웃고 떠들며 보아도, 인터뷰 영상만큼은 진득하게 앉아서 끝까지 보기를 꼭 추천한다.


카예하는 작품 속 모든 인물에 자화상을 반영했다. 솔직한 나를 드러내며 비로소 '유일한 나'가 된 것이다. 카예하의 작품은 순수하고 유머러스하다. 실제로 카예하는 유년기 자신과 누이 캐롤라이나가 함께 놀던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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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카예하가 짜놓은 판에 조금 딴지를 걸어보고 싶다. 카예하의 증조부는 다름 아닌 피카소다. 피카소가 한 말 중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런데 카예하는 나라 요시모토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카예하는 말라가 현대 미술센터의 어시스트로 일할 당시 나라 요시모토를 만났고, 그의 전시 공간을 꾸며주며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즉, 카예하 역시 시작은 모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도시, 말라가가 이제는 20세기 피카소의 도시가 아닌 카예하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카예하는 예술계의 큰 손이 되었다. 단순한 모방에서 한층 나아가,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며 완벽하게 훔친 것이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나 자신이 되라'는 말조차 부담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예하도, 피카소도, 시작은 모방이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그들의 성공에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내 작품이 진정한 나 자신이 될 거라 믿고 일단 시작하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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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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