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력형 분노 스터디에 초대합니다 - 까마귀 클럽 [공연]

글 입력 2024.08.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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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으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포스터] 연극_까마귀 클럽_예술공간 혜화.jpg

 

 

분노라는 감정은 원초적이다. 좋으면 웃는 것처럼, 싫으면 화를 내며 불쾌감을 표출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속 시끄러운 일이 가득한 지금 세상에서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한 것은 같은 것에 분노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서로 공감하며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분노할 것이 너무 많지만 모든 일에 화를 내며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지금 당장 이것에 분노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보다는 애초부터 시선이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덜 피로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 같은 사람, 나와 다른 사람을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선을 그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나는 왜 같은 것에 분노하고 싶어할까? 분노란 뭘까? 왜 같이 화를 내야 하지? 함께 하는 분노가 왜 중요하지? 이런 질문을 떠올리던 찰나에 날아온 것이 연극 <까마귀 클럽>의 문화 초대였다. 연극의 짧은 설명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극중에서 같은 문장의 모집 공고를 본 '지원'처럼, 초대 알림을 받은 나는 눈을 반짝였다. 분노 스터디? 혹시 내 질문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작은 실마리라도? 작은 희망을 안고 나는 곧장 초대에 응했다.

 

 

 

화를 낼 수 없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섞여들어본 적 없는 '지원'. 서글서글하게 굴며 친구들에게 다가가도 어쩐지 지원을 반기는 이는 없어 보인다. 온라인에서라도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SNS를 떠돌던 그에게 수상한 모집 공고 하나가 보인다. 눈 딱 감고 '까마귀 클럽' 가입을 결정한 지원은 그곳에서 세 명의 분노 스터디 메이트를 만난다. 이들은 각자를 닉네임으로 소개했다.


스터디를 이끄는 '별'은 공무원으로 일을 하며 화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잊도록 강요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거칠게 다가온 민원인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인 적도 있지만, 돌아온 것은 얼얼한 뺨이었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오히려 멋쩍게 웃으며 이해를 강요당했다.


말수는 적고 눈물은 많은 '프로틴'은 기간제 체육 교사다.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들이 쉬이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 외모를 가진 그는, 오히려 그러한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지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식 교사로 부임한 것이 아닌 기간제라는 사실에, 그의 자리는 더더욱 위태롭게 위협받는다. 그렇게 프로틴은 분노하기를 포기했다.


수다쟁이 '워리'의 이야기는 길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극의 막바지에서 드러난 것은 그와 프로틴이 연인 사이라는 것이다.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스터디, 회장 마음대로 진행되는 불편함 가득한 모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그는 한껏 투덜대면서도 까마귀 클럽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공간을 붙잡고 놓을 수가 없다. 그의 모습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우리'일 수 없는 그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지원 역시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무시와 홀대를 견디고 화장실 한 번 갈 때에도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나날을 보낸다. 귀찮다고 쉽게 폭언을 내뱉는 고객에게 화 한 번 낼 수 없는 위치에서, 화를 내야 하지만 화를 낼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게 당연한 직업도 있다. 그렇게 속으로 곪아만 가던 이들은 까마귀 클럽에 모여 서로를 다독인다. 화를 내도 된다고. 아니, 화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속에 눌러왔던 분노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이들은 훈련을 시작한다.

 

 

 

'잘' 분노하는 방법


 

화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 먼저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상대방의 어떤 모습을 이유로 마음이 상했는지, 어째서 그것이 속상할 만한 상황이었는지 설명하고, 상대방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과일 수도 있고, 행동 변화일 수도 있다.


내용을 알차게 구성했다면 이제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하면서 울먹이거나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또박또박해야 할 말을 한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말을 쏟아내서도 안 된다. 표정을 다양하게 하며 감정을 표현하고, 때때로 적절한 제스처도 섞어가며 자신의 분노에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회원이 무대에 서서 분노할 때는 잘 듣고 피드백을 줘야 한다. 힘들었겠다는 공감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더 잘 화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건설적인 조언이다. 서로 감정적으로 보듬어주는 것이 아닌데도 왜 이들은 이곳에서 안정감을 느낄까. 그것은 아마 "분노해도 된다, 분노할 만한 일이다"라는 암묵적 합의 덕분일 테다. 이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분노를 응원하고,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이들에게는 서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이 분노 공동체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데, 까마귀 클럽은 말 그대로 '스터디'이다. 여느 스터디처럼 목표가 있다. 토익 900점을 달성하면 끝이 나는 토익 스터디, 취업에 성공하면 끝이 나는 취업 스터디. 분노 스터디는 당연히, 분노할 줄 알게 되면 끝이 날 테다.

 

 

 

화를 내는 우리가 우리로 남으려면


 

극을 보는 내내 우리의 삶은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누구나 좋고 싫음을 느끼지만, 사람을 마주하는 매 순간마다 내가 상대방에게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 위치인지를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둘 사이의 관계 계산이 끝나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내뱉거나, 참거나.


분명 다 같은 사람이고 서로를 이해하면 되는 일인데도 누군가는 터뜨리고 누군가는 억누른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모두가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고, 누구를 마주하는가에 따라 그 위치가 계속해서 뒤집힌다.


분노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분열시킨다. 함께 분노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아군, 상대가 적군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들어주는 이가 마치 든든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까마귀 클럽의 회원들처럼 '우리'라는 집단 자체, 화를 내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실제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다같이 모여 상상 속에서 분노하고 격려하고 끝나는 이 모임은 이들을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물론 스스로를 누르고 누르다가 막다른 곳에 닿은 이들을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들면 허울뿐인 경청도 간절할 때가 있으니. 그러나 어떤 감정은 추스르고, 어떤 감정은 흘려보내고, 어떤 감정은 표출해야 하는지 배워야 하는데 사회가 무작정 억누르기만을 요구하니 이들은 무작정 허구의 표출만을 요구한다.


워리도, 프로틴도 이미 알고 있다. 까마귀 클럽에서 이야기하는 우리는 진짜 '우리'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놓지 못하고 있다. 분노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고, 우리인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미 곪아버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지키며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화를 낼 수 있게 된 후에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도록.

 

 

 

컬쳐리스트 명함.jpg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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