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이 보이는 전시 -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

글 입력 2024.07.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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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과 입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7월 12일부터 열린 하비에르 카예하 특별전에 다녀왔다.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넓은 공간에 툭 튀어나와 있는 표지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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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이곳에 예술은 없다’라는 문장은, 카예하의 뼈 있는 농담이자 이 전시 전체의 제목이다. 팸플릿이나 포스터 등에서 먼저 보았던 이미지를 입체 작품으로 만나니 그 이미지 안으로 걸어 들어간 느낌이 든다.


평면과 입체의 조화는 본전시에서도 이어진다. 회화로 그려진 작품을 입체 오브제로도 다시 한번 만나는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데, 카예하의 스케치북, 그러니까 그의 작품세계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에 마음이 들뜬다.


책상 위에 올라갈 만한 귀여운 피규어 크기의 작품도 있지만, 성인의 크기를 훨씬 뛰어넘고 방 하나를 채우는 커다란 작품도 꽤 많은 게 이 전시의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장난감이 주인공인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동화 같은 세계로 떨어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납작했던 그림이 내 눈앞으로 튀어나오게 된 과정이 담긴 스케치도 종종 볼 수 있어 더 흥미롭다. 

 

 

 

입체와 공간



이 전시를 보며 내내 생각한 것은 ‘참 입체적인 전시다’라는 것. 그렇게 느낀 이유에는 3D로 제작된 오브제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물론 포함되겠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하비르 카예하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이 전시장을 꾸몄고, 그 덕에 곳곳에 묻어있는 그의 손길이 이 전시의 별미다. 어쩌면 별미가 아니라 메인디쉬일지도. 


액자를 뛰어넘으며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의 그림을 보면 이곳이 그저 하나의 전시장이라기보다도 그의 무대, 그의 놀이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그가 모래성을 쌓다 간 놀이터라고 생각하면 ‘이곳에 예술은 없다’는 그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문구가 더 재밌게 느껴진다.


또 하나 숨은 포인트는 바로 이 나라의 바로 이 전시에서만 볼 수 있을 요소들이다. 추측일 뿐이지만,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캐릭터 아래에 ‘MR. KANG’이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가 한 장 있는데, 전시를 꾸미는 과정에 같이 참여했을 국내 전시 기획자의 모습을 카예하가 자기 스타일대로 그려서 전시에 함께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군데군데 적혀 있던 한글도 이 강씨 성을 가진 기획자의 필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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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공간과 사람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굳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가에 대한 설명은 영상으로 조금 보완한다. 전시실에 작게 마련된 공간에서는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예술을 시작했음에도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된다.


개인의 고통과 노력과 예술성을 위주로 이야기하는 예술가의 다큐멘터리에 익숙하던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기억하고 감사해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카예하의 인터뷰가 신선했다. 카예하에게는 생계보다도 예술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파트너 알리시아가 있었고, 이 영상을 보고 나면 그의 작품 속 알리시아에게도 괜히 더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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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vier Calleja Courtesy of NANZUKA

 

 

카예하는 비운의 예술가도, 고독의 예술가도 아니다. 물론 그도 그만의 비운과 고독을 갖고 있겠으나 적어도 그것이 이 전시나 인터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고 그것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는 그의 전시장을 놀이터로 만들고, 현지 기획자를 그의 전시에 그려 넣을 수 있는, 예술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다.


완성된 예술 작품을 그대로 옮겨놓기만 한 전시가 아니라, 이 모래성을 쌓은 사람들이 보이는 놀이터였기 때문에 감상하는 나로서도 더 부담 없이 전시장을 거닐 수 있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았고 평소라면 전시 감상에 방해가 된다 속으로 불평했을 나인데, 이번에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이 전시는 그렇게 작은 소란함이 있는 분위기에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 즐기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전시 내 영상의 한글 자막에 오타가 많이 눈에 띄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어린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는 전시임을 고려하면 자막보다도 더빙을 추가하는 것이 적절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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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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