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도시 산책자의 뷰파인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난 오늘도 뷰파인더를 닦는다
글 입력 2024.07.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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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그건 착각일지 모른다. 모든 건 제 눈에 안경이라 조금씩 편집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름 수박을 좋아하지만 난 박과 과일에서 물비린내를 맡아서 잘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설명한다는 건 세상을 산책하듯 살아가며 느끼는 자잘한 왜곡을 읽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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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망우삼림

 

 

나의 보물 1호는 카메라다. 성인이 되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처음 산 전자기기라는 점에 큰 애착이 간다. 그 당시엔 카메라의 작동 방법이나 기본 상식도 없이 그저 손목에 걸고 다니며 셔터를 찰칵 누르는 언니들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직접 중고 매장 쇼케이스에서 데려온 ‘캐논 오토보이 루나’. 달 모양 덮개를 밀면 렌즈와 플래시가 주둥이를 내미는 귀여운 외형을 가졌다. 그래서 제품명을 딴 ‘루나’라는 애칭도 지어줬다.

 

손때 묻고 낡아 버튼 표시가 흐릿했지만, 애초에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나에겐 마음 편히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더 편리한 선택지도 있지만, 한순간을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하는 필름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겐 또 다른 매력이라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한 롤을 다 채울 때까지 맺힌 상을 확인할 수 없다는 시간적 간극과 원본을 포토샵처럼 손쉽게 수정할 수 없다는 번거로움은 단 한 장의 사진에도 마음을 담아야 할 것만 같은 작은 책임감을 부여한다.

 

특히나 필름은 고유한 감도에 따라서 색감이 쉽게 달라지고, 현상하는 스캐너의 종류에 따라서도 입자 크기가 많이 차이 난다. 나에게 맞는 온도와 마모도 혹은 질감을 찾아 계속해서 필름을 경험하는 여정은 꽤 즐겁다(혹여 필자의 취향처럼 높은 채도에 맑은 느낌을 원한다면 로모그래피 필름-후지 스캐너의 조합을 추천한다). 하지만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 답안은 없다는 것. 그래서 사진은 찍는 사람의 세상이 투영되는 창이라고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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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年.2月.5日 – 시즈오카 이토

 

 

고운 꽃무늬 종이와 리본 끈의 존재로 보아 선물을 받은 걸까 추측할 수 있겠다. 거의 근접하다. 사진은 올해 2월, 나의 23번째 생일에 친구가 여행 중 사준 조각 케익의 포장지다. 낯선 언어로 쓰인 문구들에서 알 수 있듯이 시즈오카의 이토라는 소도시에 여행을 간 추억이 담겨 있다.

 

생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던 지라 들떴던 마음이 사진을 볼 때마다 상기된다. 사실 너무 작은 도시라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고, 묵었던 료칸 주위는 암흑이라 베이커리를 찾아 나서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비바람인지 눈보라인지를 뚫고 동네에 딱 하나 있는 베이커리에서 옷을 배려 가며 사 온 조각 케익들은 특별한 퀘스트 보상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생일을 기념하는 의식의 도구가 아닌, 함께 사냥해 온 양식들은 우정 이상의 전우애를 다져준 것이다.

 

친구가 나를 생각해 주던 마음씨가 듬뿍 담겼는지 실제로 봤던 것보다 색감이 따스한 듯 비장하게 찍혔다. 그 묘한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포장지를 곱게 접어 한국으로 챙겨 오고, 사진은 한동안 노트북의 배경 화면으로 사용했었다. 사진에 담긴 모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짚어낼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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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임이 어색한 토슈즈

 

 

근력 제로, 유연성 제로, 끈기 제로지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이 있었다. 예쁜 레오타드와 스커트가 입어보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한 성인 발레. 그러나 처음 입성한 발레 학원에는 태어날 때부터 발레하려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목이 길고 팔과 다리가 가늘어 마치 백조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발레 동작이 너무나 어색해서 갓 태어난 기린이 백조 흉내를 내는 것처럼 기묘해 보였다. 동작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유연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고 유지할 힘과 기본기가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 과정을 건너뛰고 우아한 발레리나의 수면 위 모습만을 상상했다. 그것이 저 사진 한 장에 여과 없이 드러난다. 발에 맞춰지지 않아 뻣뻣한 슈즈에 제대로 된 방법을 몰라 마음대로 묶은 리본.

 

노력 없이 결과만 갖고 싶어 하는 내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무엇이든 꽂히면 쉽게 찍어 먹어 보지만 마무리를 짓는 뒷심이 부족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완성하는 게 없다. 기타를 배울 때 F코드를 짚는 게 힘들어 흥미를 잃었던 것처럼 턴을 돌 수 없을 땐 큰 위기였다. 나의 한없는 가벼움 과시욕이 그럴듯해 보이게 감추어져 있는 조금은 부끄러운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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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벚꽃 / 상수역 골목길

 

 

인간은 물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느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나가는 김에 분리수거를 할 수도 있고, 장을 볼 수도 있고 동시에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산책하며 카메라로 사진 찍기다. 소소한 장면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인 양 걸어 다니면 혼자라도 즐겁다. 평범한 주인공이 스파이라는 임무를 맡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의미를 붙이게 되는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도 좋지만 작고 남에게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원석들을 발굴해 주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풍성한 벚꽃 나무 다발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한 송이가, 골목길의 돌담에 지워지고 있는 시 같은 것에 더 마음이 쓰인다. 어디서나 주목 받는 온전한 것들보다 중심에서 멀어진 것들이 내 처지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새에 조용히 사그라들 것 같아 가끔은 눈물이 차오른다.

 

그러나 나의 모순적인 점은 작고 안쓰러운 것 중에서도 미형을 따진다는 것이다. 떨어진 꽃 한 송이라도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은, 잎이 모두 붙어 있는 것을 찾았고, 벽면을 찍을 때도 골목길의 쓰레기가 모여 있는 구석은 프레임 안에 걸리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이런 선택적인 보듬음은 작은 것들을 위한 것 같았지만 결국 스스로 만족에 기댄 기망이었을지 모른다.

 

*

 

내 뷰파인더에 걸리는 모든 장면은 저마다 비하인드를 갖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다양한 레이어의 감정들,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욕심, 작은 것들을 돌아본다는 거짓된 만족감이 은은하게 배 있다. 이렇듯 사진은 언제나 이유 있는 왜곡이 존재하기에 모순된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오늘도 창 너머 상을 선명히 하기 위해 뷰파인더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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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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