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40일의 꿈은 해피엔딩

글 입력 2024.07.3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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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했던 시드니의 겨울에 안녕을 고하고 서울로 돌아온 지도 한 달이 됐다. 이 후덥지근한 여름의 정점을 버틴지도 벌써 30일이나 지났다니.

 

귀국하기 전 기숙사 친구들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야". 호주에서 한국의 삶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보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생활의 괴리감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한여름 밤의 꿈같았던 140일을 보냈다. 삶에서 가장 용감했던 나날들이었다. 태양이 삼바 댄스를 추듯 정열적이었던 첫 여름의 2월. 가장 따스하고 선선했던 초가을의 3월. 멜버른과 퍼스 여행으로 여행 마니아가 된 가을 중순 4월. 난생처음 생일에 단풍을 만났던 마지막 가을 5월. 사계절이 따뜻한 사랑스러운 브리즈번에서의 초겨울 6월까지. 몇 번을 꾸어도 좋은 꿈을 현실로 빚은 시간들이다.

 

기체가 하늘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그 각도를 기억한다. 몸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시에 눈에서 뚝뚝 새어 나오는 추억들로 혼났다. 귀국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 터진 눈물샘에 주체를 못 했다. 다섯 달의 모든 여정들이 필름처럼 빠르게 감기는 그 신비로움이란.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이 넓디넓은 호주 대륙과, 만난 모든 인연들이 선명했다. 내딛는 모든 걸음이 새로웠던 2월부터, 이제는 꽉 찬 추억의 부피를 감각하는 6월의 끝자락. 교환학생이라는 한 페이지를 마무리했다.

 

호주는 여러모로 활짝 트인 곳이었다. 어느 한 문화나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가능한 모든 다양성을 거뜬히 품을 수 있는 문명의 대지 같은 땅이었다.

 

조상이 호주 원주민이 아닌 이상, 호주에 사는 대부분의 인구는 모두 다문화 배경의 출신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이민자 출신이었다. 전부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대에서 호주로 이민한 경우였다. 예를 들어 마케팅 수업에서 절친이 된 J의 어머니는 레바논 출신,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혹은 가정 전체가 한 국가에서 이민을 온 경우도 셀 수 없다. 소비자 행동 수업에서 만난 H의 가족은 중국에서 이민 왔다. 심지어 호주 생활 내내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다 파키스탄 출신이었다. 덕분에 파키스탄 전통 노래와 음식들을 매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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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으로서 한 학기 지낸 사설 기숙사에서도 내가 지낸 3층에만 무려 9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지냈다. 한국, 호주, 미국, 벨기에, 스웨덴, 인도, 홍콩, 프랑스, 중국까지. 마치 지구가 둥근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다. 기숙사에서 사귄 일본, 홍콩 친구들과 4박 5일 서호주로 퍼스 여행을 함께 떠난 것도 내겐 일생일대의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영어라는 공통 언어가 없었으면 평생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을 타국의 친구들과 시드니의 태평양에서 서호주의 인도양으로 떠났다니. '다름'에 대한 현상을 불편해하거나 새로움에 대해 마냥 두려움만 있었더라면 절대 해내지 못할 도전이었다.

 

인구 구성이 이토록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5개월간 자연스럽게 모든 다양성이 몸에 배었다. 언어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 스타일의 다양성, 민족의 다양성. 그 누구도 특이한 사람이 없다. 너도 나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기에. 그래서 구태여 간섭하지도, 그 경계를 넘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생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마음의 공간감이 생겼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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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대한 유연한 적응력도 덤으로 얻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계절은 최소 10번을 넘긴 것 같다. 계절이 반대고, 한국 면적 대비 77배가 큰 호주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렇다. 호주 전역 여행을 다니며 지역마다 다른 기후를 경험하니 갑작스레 랜덤 돌림판처럼 계절감이 바뀌곤 했다. 한국만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는 없을 거라 자부하며 날씨 변화쯤이야, 하고 얕봤는데 된통 당했다. 7월 말 현재 기준, 겨울(출국 전), 여름, 가을, 겨울, 여름(귀국)까지 올해만 공식 계절을 다섯 번 겪었다.

 

다르고, 다양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그럼에도 마땅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인지하는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들이다 보니 변화가 일어났다. 삶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생겼다.


이제 섣불리 한 사람을, 한 공간을 앞서 정의하지 않게 되었다. 우주 안의 수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하듯 사람 안팎에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다는걸,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체득했다. 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건 매일 밤 기숙사에서 소곤소곤 나눴던 대화, 울먹이는 친구의 도움 요청, 이해와 설득, 때로는 실망했던 밤, 그럼에도 내밀었던 손, 우연히 만난 인연, 호기심에 질문 보따리를 내보였던 순간들 덕분이다.

 

학업에 대한 탄력성과 자신감도, 우물 밖을 완전히 벗어나 고속 성장한 기간이었다. 메인 수업과 튜토리얼까지, 총 세 과목을 통틀어 78번의 전체 수업을 모두 출석했다. 온몸이 바스러질 듯 고통스럽게 아팠던 어느 날에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갔다. 그때의 나 스스로에게는 또 미련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 나에게 이제야 고생했다는, 고맙다는 감정이 피어난다.

 

수강생 500명 과목에서 전체 성적 1등을 한 계기로 교수님께 출국 하루 전 이메일을 받은 날 아침은 평생 잊을 수 없겠다. 울 만한 사건이기보다 마냥 기뻐하기만 해도 부족했는데, 이 교환학생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스스로 뒤늦게 깨우쳐서, 그 깨달음의 바다에서 목 놓아 화산 같은 눈물이 새어 나온 것이다.

 

사실 단 한 번도 교환 생활에서 학업적으로 뚜렷한 결과를 얻을 거라 상상한 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야 분명한 건 진심의 힘은 실로 참 강력하다는 것이다. 휴학을 2년 하고도 뒤늦게 교환학생이 되어 학교 입학 후 5년이 흐른 4-1학기,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다. 10년, 20년이 지나고도 '교환학생은 놀기도 참 잘 놀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간절히 실천했고, 결국 현실로 마주한 날들의 기억을 미래로 보낼 수 있어서 벅차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무려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호주에서 사귄 캐나다 친구, 호주 현지 친구 두 명과 서울 여행을 했다. 남산으로, 경복궁으로, 홍대로. "우리 3주 전까지 시드니에 있었는데 지금 서울이라는 게 안 믿겨". 땀으로 샤워를 하는 여름 한가운데에서도 다시 만난 시드니의 가족들과 후회 없이 행복했다. 

 

교환학생을 계기로, 오래전 꿈꿔왔던 순간들이 오늘의 이야기로 엮어지고 있다. 이 추억을 품고 다음 꿈의 페이지로 넘어가야지.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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