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림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 무서운 그림들

글 입력 2024.07.3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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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사신은 무심하게 낫을 휘둘렀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직관적인 이 문장이 바로 「무서운 그림들」의 첫 시작이다.

 

확실히 옛날보다 담력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도 조금 후회했다. 책을 읽을 때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오래, 깊이 상상하는 나는 마치 소설 문장처럼 묘사된 텍스트를 허공에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머릿속은 낫을 든 사신, 사람의 영혼을 빼앗기 위해 찾아온 귀신, 부인의 목을 베어버린 남편 등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잠들기 직전 새벽에 이 책을 읽은 것은 나에게 있어 꽤나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어릴 적에는 무서운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문구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오백 원짜리 괴담모음집 따위를 구매해서 친구들끼리 돌려보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괴담모음집 시리즈는 여덟 살 초등학생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이후 공포 라디오, 공포 게임 시청 심지어 공포 유튜브 영상으로 넘어가며 나름 호러 장르의 마니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기’에 집착했는지 잘 모르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서운 이야기가 끌린다', '어린아이는 원래 본능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등 확실한 근거 없는 소문은 많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지 공포 장르에만 끌린다기보다는 그냥 공포 장르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무리 오백 원짜리 괴담모음집이라고 한들, 주인공 설정이 흥미롭거나 친구들 중 누구 한 명쯤은 겪어봤을 법한 내용이 있으면 초등학생 한 명의 관심쯤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흔하거나 익숙한 소재라 할지라도 말이다.


「무서운 그림들」에는 우리가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 봤을 법한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로 살인, 범죄, 기괴함 등과 연관되어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그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얼핏 보면 보통 미술 작품이나 다름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미묘한 감정이 들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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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들에 모두 공포라는 장르와 감정만이 남게 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 작품만 마주했을 때는 무섭다는 감정이 일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짧게라도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면 처음에 두려워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샌가 묘한 그림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이 그렇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유대인 출신으로, 홀로코스트를 거쳐왔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작품 안에 거침없이 녹여냈다. 누스바움은 독일 아카데미 장학금을 받을 만큼 총망받는 예술가였으나 유대인이었던 그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곳에 남아있는 건 지독한 악취와 절망뿐이었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지옥 안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가스실로 끌려가기 직전, 그는 가까스로 철로 위에 몸을 던졌다. 기적적으로 벨기에로 돌아가게 된 그는 다시 한번 붓을 잡았다.

 

<수용소에서의 자화상>은 살기 위해 그림을 붙들게 된 그의 심정이 담담하게 잘 표현된 작품이다. 그의 한쪽 얼굴에는 이미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언뜻 보면 무표정으로 그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누스바움의 얼굴에는 그 누구보다도 굳건하고 강인한 눈빛이 담겨있다. 그의 모습 뒤로 검은 먹구름과 철통 안에 배변을 보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과거 그가 얼마나 참혹한 환경에서 견뎠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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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아있는 내내 살기 위해 온몸으로 그림을 끌어안았다. 1944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좁디좁은 다락방에서 <죽음의 승리>를 완성했다. 작품에는 비쩍 말라 앙상한 뼈가 드러난 인간과 해골이 곳곳에 보인다. 폐허가 된 땅 위에 신문, 시계, 악보, 주사위, 삼각자 등이 널브러져 있다. 멸망한 세계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해골들은 각자 악기를 들고 있다. 누군가는 하늘 위로 치켜든 채, 또 다른 누군가는 품에 안은 채로 말이다.

 

[‘이렇듯 누스바움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정신 착란을 겪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림은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런 그에게 창작 활동만 하지 않는다면 더 수월히 숨어다닐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역설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도망 다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누스바움에게 예술은 그가 살아 있는 증거이자, 후세를 위한 유산이었다.‘] (「무서운 그림들」 본문 中 62.p)

 

이처럼 「무서운 그림들」은 그림 속 인물의 사연이나 작가의 삶을 빌려 작품을 말하고 있다. 그림의 겉만 보면 모른다. 작품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어떤 말을 전하고자 하는지 말이다. 조금만 더 그림을 눈여겨 보고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감정에만 머무르는 것아 아닌 더 깊은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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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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