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의 존재, 사람의 온기를 실감한다 - 뮤지컬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글 입력 2024.07.31 03: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연남동빙굴빙굴빨래방_포스터_최종 copy.jpg

 

 

사람은 가끔 슬플 만큼 타인을 갈구한다. 마음속에 가득 담긴 이야기가 나 자신을 잠식할 때, 이걸 어딘가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그가 발목에 걸린 족쇄가 되어 나를 끝없는 물속으로 가라앉힐 것만 같을 때가 꼭 있다. 그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선택의 문제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고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안의 경중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살펴보지만 각자 지닌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로 인한 짐마저 지우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혼자 삭혀 보고자 하지만, 그러다 보면 또다시 굴을 파고 저 밑으로 들어가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에 나타난 것이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의 중심 소재가 되는 연두색 노트다. 빨래방 한쪽에 무심하게 놓여 있는 노트 한 권. 일종의 연남동판 '익명 게시판'이나 다름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얘기할 데 없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그 노트에 손이 갈 것이다. 이걸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 대한 갈구가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쓰는 사람의 심정이 저렇다면, 읽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쿼티 자판을 통해 모든 텍스트가 오가는 이 시점에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감히 생각해 보건대, 이 글 너머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이야말로 인터넷에 혼재하는 수많은 익명 게시판 속에서 꽤 자주 잊히는 것이다.


익명 게시판에서 날카로운 말, 험한 말이 유난히 더 오가는 것은 텍스트 너머의 사람이 '실재'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누군가가 직접 힘주어 써 내려간 손글씨에서는 이 글을 쓴 사람의 존재감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느껴진다. 손글씨 너머의 사람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게 되는 것도, 그 진심 어린 위로에 다른 사람들마저도 위안을 받게 되는 것 모두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공연이다. 화려한 무대도, 앙상블도 없지만 사람 냄새로 가득한 이야기가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녹여내다 보면 산만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노트로 대표되는 '사람'의 존재가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어 공연의 집중도를 높인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관객을 울고, 웃고, 설레게 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매력을 불어넣는 연기가 많은 인물들 모두에게 정감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공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러스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개그는 남녀노소 모두 이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한다. 듣기 편한 넘버들 역시 매력 요소다.


단언컨대, 누구와 함께 해도 좋을 공연이다. 특히 내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유지현.jpg


 

[유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