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축축한 여름날 보내는 인사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7.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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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도서관을 떠난다.


기분 좋게 선선한 5월부터 장마를 지나 후덥지근한 7월까지 약 2개월간의 근무였다. 처음부터 도서관에 지원한 것은 아니었고,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청년 문화예술 분야 일자리 사업에 합격한 뒤 배치된 곳이 이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도 서울의 북쪽인데, 지하철 6호선에서 1호선으로 한 번 환승을 거쳐 경기도와 가깝게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이름 그대로 ‘작은도서관’이 있다.

 

*

 

도서관 오픈 업무는 정해져 있다.

 

문을 열고 조명이나 온도를 세팅한 다음, 컴퓨터를 켜고 전날 무인 반납함에 쌓인 책을 반납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 영업일을 기준으로 소급해서 진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화요일에는 월요일로 소급해서, 월요일에는 휴무일을 제외한 지난주 금요일로 소급한다. 업무 초반에 소급 적용하지 않았다거나, 반납을 완료한 후 전산 시스템을 원래대로 설정하지 않아 약간 엉키기도 했다.


반납을 완료했다면 자관의 책을 외부로 보낼 준비를 한다. 무인 대출 그리고 상호대차 서비스를 말한다. 전자는 도서관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용이한 시스템이다. 후자는 구에서 관리하는 도서관 간에 책을 서로 빌려주는 즉, 본인이 원하는 도서관에서 타관 책을 빌릴 수 있는 일종의 배달 서비스다. 직원으로서는 오배송이나 분실 염려 때문에 골치 아프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할 듯싶었다. 나도 한 번 이용한 적 있다.


합법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


도서관에서 근무의 이점이라면 단연코 독서를 꼽을 수 있다. 소설 4권, 비문학 3권. 짧게 근무하면서 이만큼 읽었다. 근무태만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방문자가 적어 딴짓을 방지하기 위한 자체적 특단의 조치였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과장 조금 보태서 책 읽을 생각에 근무를 기대한 적이 있다.


직원 못지않게 도서관에 매일 같이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녔던 도서관의 규칙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라 그런지 독서실처럼 노트북도 이용하고 책도 읽고 유아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오고 갈 때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과묵하게 눈맞춤만 하는 분도 있다.


연령대별로 경향성이 있기는 하다. 중고등학생들은 쭈뼛대며 부끄러움을 타며 질문도 조심스럽게 해서 귀엽다. 한편, 등장부터 시끌시끌, 우당탕하는 어린이들은 주로 보호자와 동행하는데 그들로부터 아무리 ‘쉿’ 경고를 받아도 참 해맑다.

 

*

 

디도스(DDos)의 공격으로 인한 국립중앙도서관 전산 시스템 오류 때문에 딱 하루 업무가 마비되었던 때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권이 드나드는 곳이 운행을 멈춘다는 것은 꽤 큰일이다. 오늘 못다 한 업무가 강제적으로 내일로 미뤄지는 것이기에 그때만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선반과 바닥을 쓸고 닦지 않으면 벌레가 꼬이고, 서가에 꽂힌 책을 살펴보지 않으면 청구기호 순서에 맞지 않게 흐트러져 버린다. 사서 선생님과 행정 직원분들의 보이지 않는 ‘유지관리’ 노동에 감사하다.


작고 소중한 도서관에서 책과 더 친해졌고 그곳을 드나들던 주민들, 의자 뒤편 창을 통해 들이차는 햇살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크기변환]도서관.jpg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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