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감각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7.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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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에 수록된 각각의 시편마다 등장하는 화자는 공통적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끊임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화자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 다만 화자가 하는 사랑은 멈춰있지 않고 흐른다.


시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에 수록된 시는 다양한 감각을 내세워 사랑을 전하고 또 말한다. 평소 시를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에 수록된 「연말상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시집을 소개하고자 오피니언으로 가져왔다. 자, 이제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를 통해 시인이 말하는 사랑을 분석해보자.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中 「실루엣의 시」


 

시를 읽으며 눈에 들어왔던 것은 ‘흐른다’라는 표현이었다. 「실루엣의 시」에서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서술하며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언급한다. 화자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있거나 고여 있지 않고 계속해 흐르는 것이라 정의 내렸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와 2부, 그리고 3부에 걸쳐 시집에 수록된 시를 읽으며 공통적으로 눈에 띄었던 단어는 ‘사랑’이었다. 더불어 화자가 정의내린 사랑을 비유하는 ‘눈’, ‘비’, ‘시간’, ‘공간’, ‘어둠’, ‘사라짐’과 같은 단어와 감각들이었다.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中 「플루트」


 

화자는 결이 비슷해 보이는 사랑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이야기를 파고들면 그 이야기는 제각각 다른 감각과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

 

화자가 이야기하는 사랑 속에는 다양한 감각들이 깃들어있다. 내가 그중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감각은 ‘사라짐’이다. ‘사라짐’의 감각은 시집의 1부에서 잘 드러난다. “사라지고 있다.”라는 문장이 직접적으로 등장한 시 「플루트」에서는 언니와 화자, 사물인 플루트가 나온다. 물론 이 시에는 직설적으로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없지만 언니와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플루트를 향해 가졌던 감정이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시의 화자가 사람이 아닌 사물에게도 ‘슬픔’을 느끼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어떠한 것에 슬퍼하려면 그 슬픔의 바탕에는 사랑 혹은 애정이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자가 슬픔을 느꼈던 이유는 플루트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언니와 화자의 과거에서 비롯된다. 사랑과 애정이 있었던 과거는 플루트를 통해 재현되며 그 재현은 화자에게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플루트가 창고에 박혀 사라지는 시간은 기억에서 잊히는 시간이고 그 시간 속에는 그들의 과거가 담겨있을 것이다.

 

사라진다는 감각을 통해 사랑의 뉘앙스를 말하는 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연말상영」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사라짐의 감각은 화자의 사랑을 더욱더 감각적으로 이끈다. 이 시의 첫 행은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이다. 여기서 “녹아.”에 초점을 맞춰 ‘녹는 것’을 떠올리면 ‘사라짐’이 동시에 연상된다. ‘사라짐’은 곧 ‘녹는 것’이며 그렇게 녹아버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자취를 감춘다. 이 시에서 화자는 시에 등장하는 ‘너’를 사랑한다. 화자는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끝이 보이는 사랑을 짐작하며 ‘너’를 떠올린다. “엔딩크레디트가 끝없이 올라가는 티셔츠를 입고 싶어.”라는 말의 뜻은 화자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영화의 엔딩처럼 끝나지 않는 너와의 사랑을 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너’와 함께 있는 어둠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 어둠으로의 변화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화자의 사랑이 끝났음을 짐작하게 할뿐더러 결국 그 사랑이 녹아버리는 것과 같은 형태로 화자와 ‘너’ 사이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라는 행의 의미는 사라지고 난 후 남겨진 화자의 시간이 곧 처음의 모습과도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화자에게 남겨진 처음의 모습은 ‘너’와 사랑을 나누기 전의 모습이다. 이렇듯 시에서 돋보이는 ‘사라짐’의 감각은 화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며 그 사랑의 전개를 독자에게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플루트」,「연말상영」과 같은 시를 통해 시집의 시적 세계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더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中 「연말상영」


 

시에서 사용된 감각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준다. 감각에서 비롯된 다양한 해석의 여지는 화자의 사랑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시에서 말하는 사랑의 감각에는 이별의 감각 또한 깃들어 있다. 사랑이 끝난 뒤 남는 이별의 형태는 앞서 보았던 시 「연말상영」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연말상영」에서 시간의 형태는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난다. 화자는 영화가 끝났지만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독자들은 이별을 짐작할 수 있고 독자가 아닌 사랑의 주체인 화자 또한 이별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제한된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전 화자와 ‘너’의 이별은 제한된 시간 밖에 있다.


하지만 엔딩크레디트를 올리는 순간부터 화자와 ‘너’의 이별은 제한된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점에서 보아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언급하는 동시에 화자 앞에 서 있는 이별을 짐작하게 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의 관계에서 시간의 흐름은 절대적이다. 화자는 이별을 피하고 싶어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고야 만다.


이별을 두려워하는 화자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면 자연스레 올라오는 엔딩크레디트만큼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다. 이별하기 전과 이별한 후의 극장에 깔린 ‘어둠’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너’와 함께 했던 ‘극장’에서의 ‘어둠’은 ‘사랑’을 의미하지만 ‘누구’로 전락해버린 타인과 함께한 ‘극장’에서의 ‘어둠’은 ‘사랑’이 아닌 ‘이별’을 의미한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감각과 ‘영화’라는 매개체가 갖는 감각은 화자와 ‘너’와의 이별을 그리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집에서 형성된 다양한 감각들은 화자의 사랑을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 시집 특유의 시적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시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말하는데 시집의 1부에서는 사랑의 ‘사라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2부를 거쳐 3부로 진행될수록 ‘사라지지 않는’에 대해 노래하는 시가 많아진다. “작고 불 켜졌고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시집은 ‘사라짐’과 ‘사라지지 않는’것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사라지지 않는’은 다시 말하면 ‘지속되는’을 뜻할 수도 있다. 1부에서 영원하지 않았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화자는 2부에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3부에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은 언제나 불분명하고 그 사랑을 하는 주체 또한 불분명하다. 시집은 이러한 지점을 포착하여 사랑의 부재나 부재하려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들은 다양한 시적 언어로 표현되는데 시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에서 표현된 시적 언어는 ‘감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 경험을 층층이 쌓는 감각을 깨닫게 된다. 이별이 앞에 있지만 이별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경험에는 그 이별을 다루는 감각이 존재할 것이고 이별을 직감하고 이별한 후 옅어지는 기억에는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다루는 감각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시 「유저 인터페이스」에서 등장하는 행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사랑은 조용히 해야 해.” 시집에서 화자의 사랑은 「유저 인터페이스」에 등장하는 행처럼 조용하고 고요하다. 이 조용한 사랑 속에서 꽃피우는 사랑의 감각은 화자가 행하는 사랑의 형태만큼이나 조용할 것인가, 소란스러울 것인가.

 

 

[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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