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자. [드라마]

드라마 '언내추럴'이 부조리한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
글 입력 2024.07.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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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조리한 죽음이 너무 많다. 매일 아침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 탭을 누르면 죽음에 대한 내용이 쏟아져서 하루도 빠짐없이 무력감에 휩싸인다. 아동 학대, 학교 폭력, 열악한 노동 환경, 권력형 범죄, 차별과 혐오, 전쟁과 학살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간절히 빌어도 이미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부당한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고작 노트북 앞에 앉아 그들의 죽음에 비탄하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고 보잘것없어서 오늘도 어김없이 무력감을 느낀다.

 

수많은 죽음에 한 번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하니 회복이 더디다. 억울한 죽음에 분통스러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다시 뉴스를 봐도 부조리한 죽음을 은폐하거나 무마하기 급급한 사회의 끔찍함에 분노만 커진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세상이 괴롭지만 살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마음을 가다듬고 할 일을 해보려고 해도 정신이 멍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조리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찾으려 한다. 절망이 끊임없이 이어져도 현실에 맞서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굳센 이들을 본다. 동시에, 어렵지만 다짐한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기 위해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는다.

 

“살아있을 때도 못 구했는데 죽은 다음에도 모른 척하자고요?”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며 위 문장을 함께 떠올린다. 일본 드라마 ‘언내추럴’의 대사다. ‘왜 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멀쩡할까, 어째서 나만 살아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쉬지 않고 머리를 맴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담긴 물음이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모른 척하지 않기 위해, 똑같은 부조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살아있는 한 지지 않는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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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アンナチュラル)은 주인공 미스미 미코토와 동료들이 부자연스러운 사인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시체들의 억울함과 진실을 규명해 나가는 미스터리 의학 드라마다. 부자연사 사망 연구소, 통칭 UDI(Unnatural Death Investigation) 랩에서 일하는 법의학 부검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의문사에 대한 부검률이 현저히 낮은 일본에서 피해자와 남겨진 유족을 위해 부조리한 죽음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밝혀나간다.

 

두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먼저 미스미 미코토는 쉽게 절망하지 않고 누구보다 강인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릴 적 살해 후 자살(세상은 그녀를 ‘일가족 4명 동반 연탄 자살’의 피해자라고 부르지만 동반 자살이 아닌 이기적인 범죄일 뿐이다) 사건을 겪고 홀로 병원에 이송되어 목숨만 겨우 부지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단단한 삶을 꾸려 가고 있다.

 

어린 자신을 데리고 죽으려 했던 친모에게 지지 않기 위해 더욱 굳은 다짐을 갖고 살아간다. 법의학자로서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은 그녀를 지탱해 주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다.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법의학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정성스레 일에 임한다.

 

그리고 나카도 케이는 미코토만큼 뛰어난 실력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닌 부검의다. ‘영원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평생 반복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것이 법의학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몇 년 전, 이러한 신념의 계기가 된 사건을 겪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했지만 범인은 끝까지 잡히지 않았고 부검을 통해서도 죽음의 진상을 규명할 수 없었다. 입에서 발견된 붉은 금붕어 표식 하나에 의존하며 살인범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겨우 버틴다.

 

자신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미제 사건의 유족들을 보며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일에 집중한다. 철저한 수사와 부검을 통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시신을 화장하면 주변 사람들은 두 번 다시는 당사자가 죽은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왜 죽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영원한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부조리한 죽음에 맞선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일에 매번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매일 억울하게 죽은 시신을 마주해야 하기에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한데 나만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한 죽음의 반복을 직접 목격하면서 고통스럽고 이겨내기 힘든 순간들을 수도 없이 겪는다.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사람이 죽고, 그만큼 누군가는 슬퍼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증오하고, 또 슬픔이 늘어나. 법의학자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조금이야. 질 것 같아.”

 

미래를 위한 학문인 법의학도 죽은 이들을 되살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슬픔을 이길 수 없을 때, 법의학의 힘이 약하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결국 져버릴 것만 같을 때 미코토는 절망을 느낀다.

 

케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뻔뻔스럽고 혐오스럽게 삶을 계속 영위해 가는 가해자의 존재다. 누군가를 죽게 만들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증거를 없애고,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삶을 지키기 바쁜 괴물들이 법으로 정당하게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참을 수 없다. 법의학자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의 손으로 가해자를 찾아 벌하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덮칠 때 그는 견딜 수가 없어진다.

 

그럼에도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한은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체를 아무리 조사한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진실을 파헤쳐서 그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 그리고 답이 없는 영원한 질문을 반복해야 하는 유족의 인생을 구할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자.”시신을 조사하고 검사를 통해 적확한 사인을 파악해서 진실 그대로를 감정서에 쓰는 일로도 세상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지옥 같은 가혹한 현실이 가끔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해도 굳은 믿음을 되뇌면서 이겨내는 태도가 무한한 용기를 준다.

 

 

 

각자의 자리에 굳게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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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 공식 X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고, 죽이고, 그래서 슬픔이 늘어날 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작고도 작아서 현실에 질 것만 같을 때. 무력감 때문에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을 때. 절망할 틈도 없이 바쁘지만 무너질 수밖에 없을 때. 또 수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죽음을 맞게 될까 봐 두렵고 무서워질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자는 언내추럴 속 인물들을 기억해 보려 한다. 미래를 위한 일의 가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법의학자들처럼,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형법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형사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믿어 보려 한다.

 

어쩌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작은 것이 모이고 또 모이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지지 말고 살자. 미코토처럼 자신의 일을 좋아하진 못하더라도 싫어하지는 않으면서,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칠 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라고 외치면서.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면서, 그래도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행위는 멈추지 않으면서. 그렇게 우리 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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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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