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벼랑 끝에 기적이 - 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드라마]

우리는 모두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글 입력 2024.08.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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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말을 잘하는 친구를 보면 센스 있게 말 잘하는 친구로 살아가는 나를 상상해봤고, 미래 계획을 세워 흐트러짐 없이 스펙 쌓는 친구를 보면 타율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고 싶은 나'는 그저 먼 소망일 뿐. 현실은 상상의 그림을 그리는 이상주의자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하느님은 내게 무슨 달란트를 주셨을까,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할까.

 

이는 어쩌면 취업준비를 하는 20대와 앞으로 노년기를 마주할 50대 역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헌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정형화된 규칙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상대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빨간불일 때 잠시 멈추고,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 것,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것 등.

 

학교에서도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명확한 구분을 지킬 것, 수업시간에는 딴짓을 하거나 떠들지 않을 것, 친구를 때리거나 친구에게 험한 말을 하지 말 것, 급식 먹을 때는 새치기를 하지 않고 줄을 맞춰서 걸어갈 것 등. '상점과 벌점' 제도처럼 명시적인 제도도 있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학교와 사회의 약속도 많다.

 

이외에도 우리는 사회 안에서 학교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다시 공부하고 집에 간다. 이때 곧장 학원으로 가는 사람, 집으로 가는 사람 갈리겠지만. 그런데도 개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각자만의 개성이 타고난 것일까? 우리는 똑같은 장소에서 학습을 받고 생활하는 데도, 생김새뿐만 아니라 재능과 능력, 체력, 취미, 가치관까지 전부 다르다. 또한, 사회가 만든 틀에 꼭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억지로 틀에 맞추려는 사람이나 아예 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틀에 꼭 맞는 사람만 사회 구성원으로 봐야하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개개인의 모양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모양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가치는 인정받는다. 그 점을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를 통해 배웠다.

 

 

 

낮에는 50대 '임순'으로, 밤에는 20대 '이미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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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 그대로다. 낮에는 50대 '임순'으로, 밤에는 20대 '이미진'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다. 장르는 수사추리극이면서 로맨스코미디라고 할까?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부모님 소원으로 열심히 8년 째 공시 준비를 하고 있지만 번번히 시험에 떨어지다 취업 사기를 당한 이미진이 있다. 취업 사기를 당하고 집앞에서 술 먹다가 웬 고양이를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가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자, 고양이 구해주려고 따라간 것이 낮에는 임순, 밤에는 이미진으로 살아가게 된 비결이다. 참고로 '임순'은 어렸을 적 실종된 이모의 이름을 빌려 낮의 이미진이 사용하게 된 이름이다.

 

 드라마 몰입도가 상당하다. 정은지, 이정은, 최진혁, 백서후, 윤병희 등의 배우들의 연기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이 찾아올 때 이미진(정은지)에서 임순(이정은)으로, 임순(이정은)에서 이미진(정은지)로 변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배우는 바뀌었고 인물은 달라졌지만 결국 낮의 임순도, 밤의 이미진도 똑같이 '이미진'이라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 연출의 역량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드라마 최고 시청률은 12화에서 9.4%를 달성했다. OTT플랫폼 시대에 10%에 육박한 시청률을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수사추리극보단 로맨스코미디에 각본이나 연출적으로 좀 더 치중해, 나온 증거에 비해 수사가 좀 더디게 흘러간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린 점, 복잡하지 않은 서사 덕분에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계지웅은 독기 있는 차가운 검사로, 이미진은 발랄하고 체력 좋은 취준생으로 두 인물을 대비되게 그려낸 것은 뻔한 그림일 수 있다. 그러나 '낮에는 임순, 밤에는 이미진'이라는 드라마의 메인 서사가 있으므로 계지웅과 이미진의 이미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임순이 된 이미진은 검찰청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해, 검사실 및 건물 청소를 하다가 '임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타자 빠르고, 체력 좋고, 시력과 청력도 좋고, 일도 성실하게 잘 해내 계지웅 검사와 계속 일을 같이 한다. 임순과 이미진은 동일 인물이지만, 나이, 모습, 상황, 배경 등이 다르다. 기적 같은 일이 있은 후, 둘다 각자의 위치에서 인정을 받고 사랑받는다. 비록 20대의 이미진은 취업 사기로 공무원에 합격한 게 아님에도 임순으로 생활하면서, 그리고 계지웅과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사무관 일에 재미를 느낀다.

 

이미진 친구 도가영과 임순/이미진의 케미도 돋보인다. 가영은 임순의 메이크업을 손수 해주기도 하고, 밤마다 미진이 가영의 집을 찾아가면 잘 받아준다. 한번은 아랫집 사는 계지웅이 미진의 가방을 가져왔는데, 이미 일출이 지나 임순으로 변한 뒤였으므로 임순은 가영의 이모인 척 연기한다. 가영과 임순의 연기는 계지웅을 속이는 데 성공했고, 미진은 이렇게 또 한번 자신의 비밀을 숨긴다.

 

로맨스코미디일 뿐만 아니라 '수사추리극'이기도 하다. 계지웅의 엄마가 피해자였던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그 사이에 작은 사건들이 나오고, 그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계지웅은 이미진의 정체를 언제 알게 될까? 그리고 길고 길었던 미제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명랑한 이미진과 ???한 나


 

언제나 드라마를 보고 나면 내 삶에 꼭 대입해보게 된다. 내 미래에는 늘 물음표만 동동 떠다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할지 몰라 차라리 누가 내 미래를 점지해주었으면 싶다. 그러나 미래를 감당해야하는 건 나기에 하루를 목에 알약을 넘기 듯 하루를 넘긴다.

 

이미진은 왜 '이미진'일까. 게임에서 혹은 인생에서 이미 '진'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8년을 쉬지 않고 공무원을 위해 달려온 취준생 이미진이 또 한번의 실패와 사기를 겪고 주저 앉아 펑펑 우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꿈을 위해, 목표를 향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취준생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얼마 후면 취준생이 될 나도 머지않아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미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뭐지'라는 고민과 '너무 막막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진 캐릭터가 좋았던 이유는 '당당해서'다. 실패했다고, 취업 사기를 당했다고 바로 풀이 죽어있고 좌절하지 않고 취업 사기를 친 사람 잡으려고 한복을 입은 채 소리지르며 거리를 뛴다던가, 계 검사의 전화를 보이스피싱 전화인 줄 알고 쌍욕을 날렸다던가, 혹은 (낮의 임순일 때) 고원 등을 유심히 관찰한 후 고민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조언을 해준다던가. 이러한 이미진의 당당하고 진정성 있는모습은 시청자에게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적어도 내겐 감정이 바닥을 칠 땐 바닥을 칠 때까지 내려가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슬퍼할 땐 미친 듯이 슬퍼했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쌓았던 실력을 이용해 해내야 할 일을 전부 해냈다가. 행복과 불행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 그것이 이미진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조금은 그녀의 명랑함과 당당함이 부러웠다.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진 '학생'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조금 치명적일 수 있는 약점이 있다. '독기'가 부족하다는 것.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그들만의 아우라가 있다. 이 아우라는 독기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아직 큰 실패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아서, 아직은 나약해서 독기가 없는 걸까. 미진에게도 독기는 있었다. 이미진도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찾지 못했어도 공무원이라는 꿈을 놓지 않고 매일 펜을 잡고 공부를 했다. 이에 반해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조금씩 건들여보며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어 끝내본 적은 드물다. 아직도 상당 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해 내 삶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15~16회 방영을 앞두고 있는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낮에는 임순, 밤에는 이미진으로 사는 삶은 곧 끝날 것이다. 그 이후에 이미진과 계지웅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미진은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까? 아니면 적성과 꿈을 찾아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해볼까? 전자든 후자든 간에 이미진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16화까지 모두 정주행하고 나면 더 아쉬워,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로 돌아오겠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미진과 반대로, 난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정작 취업을 위한 꿈이 없다. '뭐가 되고 싶지?'라는 고민만 할 뿐, 이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현재는 방송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 직업조차 흔들리는 중이다. 그래도 내일이 되면 또 내일의 하루를 살아가겠지.

 

이처럼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 퇴직 이후의 미래를 고민하는 50대 중장년층에게 어줍잖은 위로가 아닌 웃음과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준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거나 현실의 틀에 몸을 맞추거나 어떻게든 꿈을 이루겠다고 몸을 부딪치는 사람들 모두 근심걱정한다. 실패를 경험하고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면서, 사회가 정한 기준에 나를 맞추더라도 결국 나의 개성 있는 모양은 언제든, 어디서든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참에 나도 한계의 벽을 부수고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 가보자.

 

 

[양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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