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나의 그림과 수많은 이야기 - 무서운 그림들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
글 입력 2024.08.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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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얽힌 이야기들


 

뻔한 말이지만, 고전 회화 작품을 볼 때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때가 없다.

 

신화와 종교를 다룬 그림부터 초상화까지, 하나의 고전 회화 작품에는 반드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가 있다.

 

<무서운 그림들>은 그림에 얽힌 배경부터 모티프,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개인사와 작업 과정까지 다양한 지점을 짚어준다. 하나의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독자는 그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보는 방식을 안내받는다. 그림 속 묘사된 요소들과 상징들의 의미를 샅샅이 살펴보고 나면 한 폭의 그림을 예전의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살로메와 오필리아


 

그 중, 그림은 익숙하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두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신약성서 속 살로메와 희곡 속 오필리아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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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유령>

 
 

화려하게 몸을 휘감은 붉고 푸른 장신구들, 분노와 더불어 언뜻 복수의 희열이 담긴 표정, 그리고 꼿꼿하게 뻗은 팔이 가리키는 피가 흐르는 목. 피가 흐르는 요한의 목은 후광을 내뿜으며 살로메를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헤로디아 왕비의 딸로 알려진 살로메는 신약성서 속 인물이다.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유령>의 주요 등장인물은 요한과 살로메, 두 인물이다.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는 본래 남편이었던 빌립의 이복형 헤롯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부와 권력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여 헤롯과 헤로디아의 부정을 낱낱이 폭로한다. 요한을 체포하여 회유하면서도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던 헤롯과 헤로디아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헤롯 왕의 생일날, 그의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약성서 속 한 장면을 묘사한 모로의 그림에서 살로메가 팜므파탈처럼 묘사되고 요한이 기괴한 유령처럼 묘사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헤롯 왕과 헤로디아 왕비, 그리고 그들의 적인 요한이지만 살로메야말로 모로를 비롯한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였음을 말이다. 

 

왕의 생일을 맞아 아름답게 단장하고 춤을 춘 뒤에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살로메는 어머니를 위해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착한 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머니 헤로디아를 부정한 존재로 보며 살로메 역시 멸시의 눈빛으로 쳐다봤을 요한의 상황을 짐작한다. 그토록 극적인 방식으로 요한의 목을 요구했을 살로메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하다.

 

더불어 상징주의자의 시선에서 재해석 된 모로의 살로메가 창작된 19세기 말 당시 시대상을 살피며 왜 향락적인 그림을 추구했는지 설명한다. 20세기가 다가오는 시기에 사람들이 느낀 불안과 초조함이 향락과 쾌락의 추구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한 폭의 그림 속 이야기는 화가와 뮤즈, 시대상 등을 포함한 적극적인 해석으로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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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헤롯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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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습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물가에 반쯤 잠겨 있는 흰 드레스를 입은 오필리아. 목에 걸린 제비꽃과 주변에 떠다니는 양귀비, 아도니스, 데이지, 팬지꽃들. 물비린내와 함께 풍기는 나무 내음.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등장인물 오필리아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으로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한 존재다. 화보부터 일러스트까지 수많은 콘텐츠에서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오마쥬했고, 꽃과 함께 물속에 반쯤 잠긴 여성의 이미지는 이 그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과장된 묘사에서 벗어난 그림을 추구했던 화가 밀레이의 내력은 런던 왕립예술원에서부터 시작된다. 1840년에 역사상 최연소로 입학한 그는 학교가 추구하는 화풍에 실망하고 만다. 인간과 자연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과장과 생략을 하는 그림은 그가 추구하는 방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밀레이의 다른 그림에서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존재들도 현실에 있을 법한 존재처럼 묘사된다. 요정 역시 과장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난 존재료 묘사된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를 묘사한 그림에서도 밀레이는 목공소를 배경으로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가족들처럼 화폭에 담았다.

 

저자는 밀레이가 오필리아를 그리기 위해 쏟았던 노력들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오필리아가 빠져 죽었을 법한 강가를 찾고, 그곳을 반년 넘게 관찰하며 후원자에게 쓴 글에는 '이곳의 파리는 근육질이예요.' 와 같은 문장이 담겼다. 화가 밀레이가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편으로는 그림에 너무 집중하느라 욕조의 물을 덥혀주는 램프가 꺼진 줄 몰라서 '오필리아'를 그릴 당시 그림의 모델이 폐렴에 걸렸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저 그림만 봤을 때는 짐작도 못 했을 사실들이다.

 

이처럼, 그저 아름답다는 것에서 그치는 감상이 아니라 그림에 얽힌 인간적이면서 때로는 오싹한 이야기를 통해 풍부한 감상을 하고 싶은 독자에게 저자는 아주 자세한 안내를 펼친다.

 

이 밖에도 90년대생들에게 만화로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이 인간과 빚어낸 갈등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부터 역사 속 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그림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저자와 함께 살펴보다 보면 그림 속으로 짧은 여행을 하게 된다.

 

 

[안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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