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복되는 우연성은 필연성을 수반한다 - 연극 까마귀 클럽

글 입력 2024.08.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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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까마귀 클럽>은 이원석 소설가의 동명소설 [까마귀 클럽]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지난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예술공간혜화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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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클럽은 왜 만들어졌는가


 

연극은 주인공인 ‘지원초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사람을 사랑하지만 사랑받지는 못하고, 온라인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그는 어느날 한 모집공고를 발견한다. 그 공고는 함께 믿고 분노할 사람을 찾는다는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이다. 사람이 그리웠던 지원은 고민 끝에 DM으로 모임에 신청한다.


모임 첫날, 지원은 까마귀 클럽에서 세 명의 인물을 만난다. ‘워리’와 ‘프로틴’ 그리고 ‘별’이 이 클럽의 구성원이다. 모임의 목적과 걸맞게 이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화를 내지 못했으며 매번 2명씩 짝을 지어 상대에게 화내는 연습을 한다. 연습이 끝나면 화를 내는 방법과 표정, 말투 등을 언급하며 피드백을 하는 것이 모임의 주 내용이다.


모임에는 규칙이 있다. 화를 잘 내는 것이 목표인 만큼 분노에 방해가 되는 말은 사절한다. 죄송해요, 감사해요, 괜찮으세요? 이 세 개의 말 중 하나라도 입 밖으로 꺼낼 시 벌금 5만 원을 내야 한다. 화를 잘 못 내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그들은 이 규칙을 지키는 걸 어려워했다. 특히 구성원 중 한 명인 워리는 무의식중에 이러한 말들을 내뱉어 벌금을 내는 상황도 적지 않았다.

 

 

 

모임은 어떻게 존속되는가


 

화를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이들은 스터디 중에도 서로에게 화 한번을 내지 않는다. 항상 온화한 표정과 밝은 행동,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 피드백을 제시한다. 화내는 연습은 시간이 지나도 그다지 발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화내는 것에 미숙하고 화내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별을 제외한 세 명은 함께 술자리를 갖는다. 매번 함께 스터디를 진행해도 모임이 끝나는 순간 흩어지는 게 아쉬웠는지 워리가 술자리를 제안했다. 지원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이런 자리가 처음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왜인지 그날따라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화를 못 낸다고 생각했던 워리와 프로틴은 생각보다 낮고 단호한 어조를 사용했고 상황에 따라 화를 내는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워리는 술에 취해 별을 험담하기 바빴고 그녀의 실명과 더불어 지원이 들어오게 된 과정까지 발설한다. 그 전 모임에 있던 구성원은 잘린 거였으며, 그들이 말하는 별은 남의 말을 듣지도 않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지원에게 워리는 말한다.


“우리가 진짜 목적을 이루면요, 우리일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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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스터디를 진행했음에도 서로의 실명을 궁금해한 적도 없었고 모임이 끝나면 각자 흩어지기에 바빴다. 늘 술자리를 갖자고 해도 그들을 막아서던 별의 모습은 서로의 일상을 궁금해하지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알고 보면 나머지 구성원은 화를 참고 있었으며 그것이 ‘우리’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화를 잘 내면 그들은 더이상 이 모임의 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우리’를 지키려고 노력했을까. 대표적으로 별에게 가장 불만이 많으면서도 이 모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워리는 프로틴과 동성 커플이다. 까마귀 클럽을 벗어난 세상에서 그들이 받는 시선은 생각보다 차가웠을 것이다. 더구나 둘만의 사랑으로 극복하기에는 사람들이 꽤나 오지랖이 넓다. 지원 역시 화를 못 낸다는 특징 이전에 사랑이 고팠던 인물이다. 사람과의 교류를 그리워했던 그가 까마귀 클럽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화내는 연습만이 아니었을 테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이 모임에 참여해 ‘우리’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다.

 

 

 

분노는 왜 표출되는가


 

당연히 극의 후반부는 별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술자리 이전에 지원은 별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좋았던 인물이다. DM으로 보낸 지원서 정보의 사실확인을 어떻게 하냐는 지원의 질문에 별은 그냥 믿는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우리끼리는 다 드러나는 뭔가가 있다며 무한 신뢰를 하는 그녀에게 지원은 따뜻함을 느낀다. 그 따뜻함은 모임 밖에서 벌어진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텔레마케터인 지원과 지방직 공무원인 별은 둘 다 많은 사람을 상대한다는 점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다는 점, 그럼에도 손님에게 화 한 번 낼 수 없었던 직업적 상황이 같았다.


특히 별은 민원인에게 맞아가면서까지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까지 털어놓는다. 자신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경험을 상대에게 공유했고, 지원이 그것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함으로써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돈독해진다.


그러나 이내 그 유대감은 걷잡을 수 없는 화로 번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터디 시간이 다가왔고 지원은 놀라울 만큼 실력이 발전하여 별에게 화를 잘 내는 모습을 보인다. 쏟아지는 칭찬과 함께 그 방법을 묻는 구성원에게 지원은 많은 것이 익숙해졌고 당신들이 조금은 편해진 것이 그 이유라고 말한다.


이후 별의 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 없는 표정과 말을 쏟아낸다. 눈이 충혈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입에도 담지 못할 말을 쏟아내며 고함을 친다. 이후 지원은 다시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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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후반부가 관객에게 어리둥절하게 다가왔다면 그것은 당연히 별이 화를 낸 모습에 있다. 애초에 까마귀 클럽의 목적은 화를 잘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으며, 화를 잘 낸 지원에게 이 모임은 대성공이다. 모임의 대전제를 완수하였음에도 그것이 오히려 이상해지는 극의 흐름은 순간적으로 관객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별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지원에게 내뱉은 심한 말의 내용은 자신을 호구로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만해져서, 편하게 대해주니까 호구로 느낀 게 아니냐며 온갖 상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대사는 별의 직업적 트라우마와 연결된다. 


화를 내는 것이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분노의 대상이 자신이 되고, 그 이유가 나를 편하게 봤기 때문이라니. 지원을 믿기 때문에 DM의 사실 검증도 하지 않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모임을 벗어난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믿지 못한 별의 모습은 모순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했을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여러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을 때가 있는 법이다. 지원에게 화를 내는 별의 정체성은 까마귀 클럽의 구성원이 아닌, 민원인에게 화 한 번 못 낸 억울함과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분노는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가


 

까마귀 클럽의 목적은 화를 내는 것이지만, 화를 내면 모임은 유지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에 있다. 이 연극의 설명을 돕는 작은 책자 뒷면에는 원작소설가 이원석의 에세이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해야 할 감정은 분노라고 주장한 그는 정확하지 못한 분노가 만들어낸 힙합 모임을 언급한다.


이원석 작가가 느끼기에 힙합이란, 가사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 숨긴 가시 돋친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악을 쓰며 욕을 하다가도 연습이 끝나면 손에 손잡고 고깃집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에 그는 의문을 품는다. 이후 작가는 그들 중 관계를 지속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확하지 못한 분노가 가닿는 결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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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생각과 추측을 마음껏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연극의 존재 이유라면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흔히 힙합과 같은 정도는 아니어도 결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예능인데, 이 예능에서는 각 인물의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더라도 각자에게 맞는 캐릭터를 지정하여 주변 인물들과 관계성을 설정하는 것이 재미를 살리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능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행동한다. 이러한 상황은 서로에 대한 다소 모욕적인 언사, 상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에 초점을 맞춰 그들을 비난하는 시청자들에게 한 예능인은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예능적 특성을 언급한다.

 

 

“멤버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 조금의 기분 나쁨도 없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나의 리액션이 살 수 있었다. 감정 없는 코미디 따귀는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다.”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도 서로 손을 잡고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던 힙합 모임의 이유도 그 말에 상대를 향한 진심의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특정 행위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순간, 그 정체성을 평소의 자신과 동일시 하는 순간 모임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아진다. ‘방송은 방송으로만 보자’라는 말이 나온 까닭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연성과 일회성의 존중은 필연성을 이룬다


 

“이 모든 일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간절한 사람에게 간절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함부로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연에 관한 지원의 대사는 극의 처음과 끝에 수미상관 구조로 나열된다. 까마귀 클럽에 지원서를 넣을 때, 그리고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된 후 시간이 흘러 우연히 같은 공고를 발견했을 때이다.


지원이 나갔으니 다시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하는 까마귀 클럽의 공고를 보고 있자니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여전히 워리와 프로틴은 화를 참으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모임의 규칙은 여전히 하나뿐일까?, 별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어쩌면 이 모든 일은 우연성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공고를 보고, 우연히 맺어진 관계를 구성하고, 우연히 누군가에게 생각 없이 말을 뱉기도 한다. 텔레마케터와 공무원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그 관계가 단순한 우연과 일회성에서 비롯되었기에 가능한 말들이었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를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온갖 말들을 뱉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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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과 관계는 함부로 우연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까마귀 클럽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실명을 궁금해하지 않은 것도, 서로의 일상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오직 우연성에만 집중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우리’를 유지하려고 애써도 진짜를 가장한 가짜 분노 한 번에 무너지고 마는 누군가의 모습은, 우연성과 일회성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연상되어 안타깝기도 했다.


따라서 까마귀 클럽이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또한 목표를 이뤘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위해서는 단순한 세 마디 말의 금지가 아닌, 더 자세한 규칙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의 규칙


연습이 끝난 후에는 서로의 심정을 살필 것. 

화내는 연습의 기저에는 상호 존중과 관용을 담고 있을 것.

정기적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며 서로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진짜 이름을 불러줄 것. 

우연을 가장해 모임 구성원을 목적 달성 수단으로 여기지 말 것, 간절한 사람들이 간절함을 갖고 온 그 마음을 단순 우연으로 치부하지 말 것.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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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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