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왜곡된 공간, 길 잃은 분노 - 까마귀 클럽 [연극]

글 입력 2024.08.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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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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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문화재단 청년 예술 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연극 <까마귀 클럽>이 7월 25일부터 7월 28일까지 예술공간 혜화에서 공연됐다. 연극 <까마귀 클럽>은 이원석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화를 낼 수 있는 사람


 

지원초이의 직업은 텔레마케터이다. 2015년 한국고용정보원은 국내 주요 직업 730개 직업종사자 2만 5,555명의 감정노동 강도를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 중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직업이 텔레마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인 접촉 빈도, 민원인 대응 중요도, 불쾌하거나 화난 사람을 대하는 빈도가 종합적으로 평가된 결과였다. 고객은 보통 문제가 있을 때 전화한다. 그리고 텔레마케터는 고객의 분노를 받아안는다. 심한 욕설과 비난이 난무할 때조차 이들은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다. 감정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장해를 예방하는 조처를 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일명 ‘감정 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018년부터 시행되었지만 현장에서 감정 노동자들을 즉각적으로 보호해 주기에는 미진하다. 더 들어가면 이런 문제들이 있다. 텔레마케터는 공공과 민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여성·저임금·비정규직이 집중된 직종이다. 그래서 고객은 얼굴도 모르는 말단 직원에게 그 직원과는 상관없는 사소한 불만도 분노로 바꾸어버린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무원 준비에 실패하고 서른이 넘어서 텔레마케터를 계속하고 있는 지원초이는 화를 내도 되는 대상이 된다.


프로틴의 직업은 기간제 체육 교사이다. 그는 프로틴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운동을 좋아하고 근 손실을 두려워한다. 우락부락한 겉모습과 달리 학생들 생활지도 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활지도가 과도했다는 학부모 민원을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불쾌하게 한 선생이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를 막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긴다. 학생조차 자신의 부모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학교에서 반복하며 프로틴을 무시한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보호는 없었다. 2023년 7월18일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2년 차 교사(23)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학년 담임이던 고인은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학부모의 지속적 괴롭힘이나 폭언·폭행, 협박 등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다만 올해 2월 고인에 대한 순직(재직 중 공무로 사망)이 인정됐다.


별의 직업은 지방직 공무원이다. 별은 화를 내는 연습을 할 때도 평상시에도 무표정함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지방직 공무원으로서 별의 주요 업무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이다. 민원인은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기도, 그 요구대로 안 되었을 때는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별이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 것은 크리스마스에 한 민원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이후부터였다. 웃으며 민원인을 상대했지만, 민원인은 자신의 기분이 상했는데 뭐가 그렇게 우습냐며 별의 뺨을 쳤다. 다행히 담당자가 출근해 해당 민원인의 민원을 처리해 주었고, 그제야 민원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아까 일은 자신이 흥분해서 그랬다며 작은 선물을 건넨다. 상부에서는 일이 시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라 고소 고발을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그렇게 별은 매일 민원인을 상대하면서도 그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임을 생각한다. 별은 더 이상 웃지도, 찡그리지도 못한다. 올해 3월 경기도 김포시청 9급 공무원이 악성 민원인을 반복적으로 상대하다 자살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인의 컴퓨터에는‘악성 민원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장 글이 다수 발견됐다.


악성 민원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없으나 2022년 7월 행정안전부가 개정·배포한 ‘공무원 민원 응대 매뉴얼’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행위를 특이 민원으로 분류한다. △폭언(욕설·협박·성희롱 등) △폭행 및 신변 위협 △장시간 통화 및 반복 전화 등이다. 2021년 악성 민원은 5만 1,833건에 이르는데, 2018년(3만 4,484건)에 비해 약 1.5배 증가한 수치다. 주로 인허가, 각종 불법영업 단속, 주정차 위반 단속, 복지 지원금 선별 등의 업무를 맡는 부서에 악성 민원이 몰린다. 과태료 혹은 지원금 같은 재산상 이해관계가 얽힌 업무를 다루기 때문에 격앙된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대표적 ‘감정노동’ 부서다. 여성과 연차가 낮은 청년 공무원이 많이 배치되는 부서이기도 하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국가공무원법 제59조)를 지닌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고소·고발·불친절 민원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시사인, ‘공무원 죽음으로 내모는, 무한 악성 민원의 시대’ 인용)


일명 분조장(분노 조절 장애의 약칭)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시대이다. 실제 분노조절장애는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인 정신 장애이지만, 일상적으로는 사소한 것에도 크게 분노하는 사람을 우스갯말로 비유하기 위해 사용된다. 나는 그런 단어를 마주할 때 상대가 최소한 솔직해지길 바랄 뿐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분노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을 뿐 아니냐고.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그 화를 받아내는 것이 직업이 된다. 분노의 원인이 된 무언가는 쏙 숨어버리고 어떤 인간은 그 분노의 값싼 방패가 된다. 서로는 서로가 그 분노의 원인이 아님을 모르지 않지만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곡된 공간, 길 잃은 분노


 

그렇기에 멀쩡해 보이는 <노력형 분노 스터디>라는 이 연극의 설정은 그 자체로 왜곡되어 있다. ‘노력’과 ‘스터디’라는 그럴듯한 수사를 붙인다고 하여 그 기괴함이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반복적인 감정노동으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니까 사실은 자신의 현실에서는 결코 분노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끼리 모여 그들끼리 화를 분출한다. 치졸하게도.


스터디원들은 이 왜곡된 공간에서조차 각자 다른 것을 본다. 지원 초이는 이 스터디에는 착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며, 드디어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 같다며 기뻐한다. 스터디 자체보다도 스터디를 마친 뒤 별의 집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워리와 프로틴은 게이 커플이다. 수더분한 프로틴과 다르게 워리는 말이 매우 많은 인물인데, 그는 노력형 분노 스터디라는 이 형식과 별이라는 인물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클럽을 나가지 않는다.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의 분별없는 분노를 건너뛰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별은 스터디의 장으로서 분노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며 어정쩡하게 모여있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는 자신이 바보이지만, 분노를 노력까지 하며 연습하려는 이들을 은밀히 까 내리고 통제하며 얻는 쾌감으로 분노 스터디를 운영한다.


그러므로 까마귀 클럽은 분노의 공간이지만 그 어떤 분노도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는 공간이 된다. 치졸하고도 성실한 우리는 내가 느끼는 분노와 함께 살기 위해서 같은 처지의 이들과 스터디까지도 만들지만,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은 회복이 아닌 또 다른 분노일 뿐이다. 분노는 길을 잃었고 우리의 관계는 왜곡되어 있다. 이것이 까마귀 클럽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이 문장이 다르게 읽히기를. 우리가 아직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고 길 위에서 외쳐본다.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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