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빗속의 로큰롤’, 트래비스(Travis) [음악]

글 입력 2024.08.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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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영국을 말한다. 밴드 음악 마니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미국 밴드들을 조금 더 좋아하거나, 영국 밴드들을 조금 더 좋아하거나. 필자는 후자다. 영국계 밴드들이 공유하는 특유의 비 내리는 감성을 사랑한다. 가끔 상상한다. 영국의 잿빛 날씨에 둘러싸여 있으면, 오아시스의 ‘The Masterplan’같은 명곡을 쓸 수 있을까. 때문에 요즘같이 장마가 지날 때면, 더욱 자주 ‘브릿팝(Brit Pop)’을 찾아듣곤 한다.


지난 7월 27일은 정말이지 영국과 날씨가 비슷했다.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이날 일산 킨텍스를 찾았다. 해브 어 나이스 트립 페스티벌(Have A Nice Trip 2024)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간만에 티켓을 예매한 이유는 단 하나. 트래비스(Travis)의 내한이다.

 

 

 

‘빗속의 로큰롤’, 트래비스(Tr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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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는 최근 정규 10집 ‘L.A. Times’를 발매하고 투어 일정을 소화 중이다. 내한 당일 역시, 일본에서 넘어오자마자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오르는 바쁜 일정이었다. 트래비스는 대표적인 친한파 밴드로 언급된다. 첫 내한 당시, 팬들이 준비한 종이비행기 이벤트에 감동해 한국을 잊지 못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이들이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오랜 팬으로서, 이번 공연이 단독 콘서트나 다름없을 거라는 걸 단번에 예상했다.


밴드의 출신지는 영국보다 더 비가 많이 내린다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Glasgow). 덕분인지 촉촉한 감성이 기저에 깔린 사운드가 특징이다. 적어도 필자의 아카이빙 안에서는, 가장 서정적인 음악을 하는 팀이다. 트래비스의 커리어 하이는 브릿 어워드 수상을 안긴 2집 The Man Who’(1999) 시절. 이후에도 버릴 곡 없는 탄탄한 앨범 구성을 선보이며 어느덧 결성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연차에서 짐작할 수 있듯 멤버들의 나이는 내 또래의 부모님 뻘이다. 공연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순간이 그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글래스고의 빗속으로 젖어들었다.

 

 

 

트래비스와 함께한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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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밴드는 지난 활동기를 총망라하는 셋-리스트로 찾아왔다. 최근 그들의 타국 공연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비교되는 구성이었다. 특히 라이브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1집 수록곡 ‘More Than Us’를 즉석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트래비스가 한국을 얼마나 아끼는지 다시 알 수 있었다. 팬들 역시 성의에 화답했다. 대표곡 ‘Closer’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일제히 종이비행기를 무대로 날렸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준 보컬 프란시스 힐리(Francis Healy)의 반응 또한 재밌었다.


내게 트래비스는 특별한 밴드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팀이자, 가장 먼저 들었던 팝-송의 주인공이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영어 시간, 영어 노래 부르기 수행평가로 트래비스의 ‘Sing’을 불렀다. 아무도 모르는 노래를 선곡한 탓에, 조원이 모아지지 않아 혼자 불러야 했다. 10여 년이 흘러 ‘Sing’을 다시 불렀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열창하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익숙한 목소리와 수만의 목소리가 같이 울려 퍼지는 광경에, 낯선 희열을 느꼈다.

 

 

 

비를 부르는 노래


 

 


언제나 그랬듯,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였다. 이 곡은 현지에서 ‘비를 부르는 노래’로 유명하다. 1999년 영국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에서 이 노래가 연주되니 실제로 비가 내렸다는 일화는 트래비스를 더욱 비와 어울리는 팀으로 만들었다. 마침 장마철 끝물, 상징적인 노래가 연주되자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뛰었다.

 

 

Sunny days

맑은 날들

Where have you gone?

다 어디로 간 거지?

I get the strangest feeling you belong

이 알 수 없는 기분이 느껴지시나요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왜 내게만 늘 비가 내리는 거죠?

Is it because I lied when I was seventeen?

고작 17살 때 한 거짓말 때문인가요?

 

 

보컬 프란시스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를 속이고 술집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노래는 스스로를 둘러싼 불운에 대한 이야기다. 한편 투덜대는 가사와는 달리, 따뜻한 코드 진행이 화자를 감싸고 있다. “지금 내리는 비도 언젠간 그친다.” “모든 것이 잘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트래비스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이 곡을 가장 먼저 추천한다. 어떤 록밴드도 흉내 낼 수 없는, 비에 젖은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추신

그리고, 정말로 비를 맞을 수 있음을 유의하자. 공연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믿거나 말거나. 노래가 비를 부른다는 전설은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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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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