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증후군 [음악]

서울에서 함께한 서울 노래들
글 입력 2024.08.0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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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차 한잔을 함께 마셔도 기쁨에 떨렸네
내 인생에 영원히 남을 화려한 축제여
눈물 속에서 멀어져 가는 그대여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오 오 오
Never forget of my lover 서울
 
서울 서울 서울 - 조용필
 
 
지금 들어도 고전의 정수인 이 노래는 1988년 발표되었다. 인간처럼 햇수를 세어보자면 36살 사회인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서울의 화려함과 빠른 속도와 그로 인한 강렬한 추억들을 20대인 나의 머릿속에서도 필름을 돌리게끔 한다. 가왕이라 불리는 조용필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으로 지방 출신인데, 이러한 타지 생활을 통한 이방인의 경험이 가사와 곡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준 것일까?

서울의 이방인에서 거주민으로 그러나 실향민으로, 그리고 서울의 혼종성을 하나둘씩 포용해 가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려 한다.
  
 
 

1. 서울 - 쏜애플


 

나의 고향은 충청도의 '청'에 해당하는 청주, 도심이라 하기엔 집 앞에 쌀농사 하는 논이 너무나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 마음먹고 실제 라이브 밴드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청주에 공연할 만한 장소는 방송국에 딸린 홀이나 청주 예술의 전당 정도였는데, 이 장소에서는 유명한 트로트 가수나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공연 이외의 수요층이 한정적인 인디밴드 공연은 올려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작고 개성이 뚜렷한 공연이 많이 열리는 서울로 향했다. 청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버스에서 처음 내렸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계절은 가을이었음에도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로 감각들이 얼어붙어 버렸다. 앞사람의 머리를 따라 바쁘게 달음질하는 발걸음들과 묵묵히 앞에 둔 시선들이 당시엔 참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쉽게 말해 낭만을 찾아 서울에 내려온 나의 심경은 복잡미묘했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 이 복잡함 속에 남아있고 싶었다. 모르기 때문에 아름답고 무서운 세계였지만 그때는 빛나는 것이 더 반짝였다.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3호선에서 약수역을 건널 때 비쳐오는 한강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쏜애플의 '서울'을 재생했다. 반드시 이 세계로 돌아올 것을 다짐하며.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네
그대론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몇 개의 다리를 끊었네
 
서울 - 쏜애플
 
 
 
2. 잠수교 - 라이프 앤 타임

 

12월 대학발표가 났을 때, 나는 울었다. 주위에서는 너는 이 대학보다 좋은 곳이 많은데 울 필요까지 있냐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저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다시 당도한 한강에서는 버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지막이 친구와 맥주 한 잔씩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술 취한 날의 한강에서라면 다음 날이 걱정되지 않을 만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강남에서 바라본 강북의 모습으로 내가 살고 있는 위치를 떠올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나도 살아가고 있구나 하면서.
 
 
집에 가긴 그래서 그냥 뚜벅뚜벅 뚜벅뚜벅
건너편 다리 위 한가운데 해가 뉘엿뉘엿 뉘엿뉘엿
한강은 검었네 생각보다 크게 꾸물꾸물 꾸물꾸물
왠지 한참 보는데 이런 이런저런 이것저것
 
잠수교 - 라이프 앤 타임
 
 
 
3. 서울의 달 - 김건모

 

김건모의 10집 앨범인 '서울의 달'은 동명의 드라마가 존재하는데, 김건모의 '서울의 달' 뮤직비디오와 드라마의 내용이 꽤 비슷하다. 1994년 방영된 드라마 '서울의 달'은 한석규, 최민식, 채시라가 출연하며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1994년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약수동과 옥수동을 배경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서울의 달 - 김건모

 

 

지금의 약수동과 옥수동은 재개발되면서 한강을 낀 부촌이 되었기에 1994년의 달동네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장소가 이동했을 뿐 서울에는 아직도 달동네가 살아있다.


서울의 화려함은 홍대, 이태원, 종로, 을지로, 건대 같은 클럽, 술집 거리에서 정신이 어지럽게 발광한다. 서울에 올라온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처음 아르바이트했던 종로의 호프집은 유흥의 중심지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사람이 몇십에서, 많을 때는 몇백 명씩 붐볐던 그 가게는 단체 회식을 하기 좋은 세계맥주 집이었다.


1년 반 정도 일한 그 가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고 같이 힘든 일을 하다 보니 빠르게 친해졌다. 다들 이루고 싶은 꿈 하나씩 갖고 서울로 올라왔던 그들과 나는 일이 끝나고 나면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씩 기울였다. 다들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사는 불안감과 외로움을 조금씩 토로하면서.


그 탁한 모습들이 술 취한 사람들에게서 유난히 잘 보였다. 멀끔한 정장을 입고 외국계 회사의 마크가 빛나는 명함을 바닥에 흘리며 술에 잔뜩 취해 맥주컵을 자꾸만 깨던 사람들. 아직도 종로 술집 거리를 거닐다 보면 한밤중에도 한낮처럼 번쩍이는 입간판 사이에 서울의 어둠이 보였다. 마치 달의 뒷면을 본 듯했다. 

 

 

 

4. 상수역 - 검정치마



 

누군가 궁금한 적 있다면

난 늦은 밤 상수역만 맴돌았죠

왜냐고는 내게 묻지 말아요

싱거운 내 웃음이 다 지워진 게

그댄 안보이나요

 

상수역 - 검정치마

 

 

상수역에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술집이 되는 장소가 많다. 친구들을 따라 처음 상수역 주변의 거리를 걸을 때, 이런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들을 보며 '참 신기하고 낭만적인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웹툰에서만 보던 연인들의 둥지이자 주광색 불빛으로 아늑한 공간들은 자꾸만 그 거리를 따라 걷고 싶게 했다.


상수역에서 위로 올라가면 홍대 클럽 거리, 아래로 내려가면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한강, EDM과 어쿠스틱 기타에서 흘러나오는 K-발라드 한가운데에 끼어 산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축 처지지도 않는 혼종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장소다.


을지로에 갔을 때도 비슷한 혼종성을 느꼈는데, 을지로 철물 거리와 높은 빌딩을 가진 대기업 회사들, 그사이에 포진한 개성 넘치는 바와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그곳엔 다양한 생활양식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장소들이 가진 혼종성 덕분에 더 넓은 범주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가진 이방인 적인 정체성에 움츠러들 필요도 없었다.

 

 

 

5. 서울의 찬가 - 패티김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낙엽은 지고 눈 보라 쳐도

변함없는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마오

헤어져 멀리있다 하여도 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서울의 찬가 - 패티김

 

 

이제 서울에서의 2년 반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간다. 서울에서 일어난 나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몇백 개씩 우수수 쏟아진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월셋집을 구했을 때,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받는 주민등록증 뒤편에 새로 붙여진 스티커를 문질렀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툭 떨어트리며 '아, 진짜 나 서울에 사는구나.' 하고 긴장이 풀렸다.


은평구는 혼자 삶의 터가 되었다. 커다란 산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없었던 나의 경험으로선 산에 둘러싸여 사는 삶이 적응되지 않을 때도 있었으나, 백련산이나 북한산 자락에서 바라본 서울은 참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내 자취방의 별명은 '하얀 동굴'이다. 집이 5평도 안 되다 보니 최대한 깔끔하고 물건 없이 사는 게 가장 쾌적하다는 것을 깨닫고 최소한으로 물건을 모으되, 내 취향에 대한 소비는 확고하게 했다.


또한 은평구의 장점은 3호선 라인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비 오는 날 북촌 거리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현대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홍제천에서 밤마다 달렸다. 학교, 일, 만남, 여가를 향하는 입문이었던 3호선은 언제나 꿋꿋이 달렸다. 서울을 벗어나면 떠오르는 이 익숙한 풍경들은 내가 정말 서울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게끔 했다.


 

 

6. 구기동 하늘 - 서울 전자 음악단


 

잔잔한 게인을 건 기타가 들어오며 '구기동 하늘'은 재생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역 높은 일렉과 드럼 소리. 학교 가는 버스에서 들리는 정류소인 '구기터널', 높은 지대에 있는 아날로그적인 카페들과 화이트 큐브의 갤러리.


학기 중 야작하던 참에 잠깐 숨돌릴 겸 바라본 하늘은 어쩐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서울에 계속 남아있기 위해 이유를 지어내고 이유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또한 내가 걸어가길 원하는 방향이 서울에서 지속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서울에 연고 없이 올라와서 느낀 불안정함 때문이었는지, 바라는 예술과 인생은 이 넓은 세계를 더 아는 것이었는데 서울에 갇혀버린 느낌이 들었는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나는 자꾸 어디로만 떠돌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러한 역마驛馬는 현대에서는 점점 당연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역마의 불확실함을 견디게 만들어준 것은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들이다. 앞으로 걸어갈 많은 갈림길 속에 파고든 후 다시 바라본 구기동 하늘은, 서울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서울의 하늘은 그대로지만 서울의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생각이 변하게 될 것이다.


 

 

변의정.jpg

 

 

[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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