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름끼치는, 기묘한, 두려운, 불안한 그림의 이야기 – 무서운 그림들

『무서운 그림들』(이원율)이 들려주는 그림들에 숨겨진 이야기
글 입력 2024.08.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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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서운 그림들 –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은 이원율 기자가 출판사 빅피시에서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한 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그림에 얽힌 일화나 화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이해를 위해 그 그림이 미술사에서 어떠한 맥락에 위치하는지도 설명해주며,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언급하며 또 같이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은 곧 그 그림에 내포된 그 시대의 상황과 미술의 역사,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소름돋는 것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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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떨게 만들고 두렵게 하고 불안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이 그림들에는 어떠한 가치가있을까? 책 속에서는 소개된 작품들이 객관적이라고 믿어온 기존의 미학적 취미판단의 문법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전유하거나 활용하는지에 대해서 탐구한다. 이러한 ‘무서운 그림들’에 의의가 있다면, 기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와 이에 대한 정당화를 뒤흔드는 부정성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가치론의 분야인데, 아름다움의 가치를 자연화하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뒤흔드는 그림들의 사례가 많이 소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 신체의 균형과 비례, 그리고 엄격한 구도를 중시했던 고전적 전통에 적응하지 못했던 미술가들은 이러한 질서에 저항하거나 질서와 비-질서를 혼종적으로 병치하기도 하면서 미학의 문법에 도전했다. 또한 중세의 성화나 (주로 완벽한 신체로 표현되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고전적 화가처럼 성스럽고 도덕적인 것만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들라크루아 같은 화가처럼 인간의 고통과 추함, 어두움을 그림으로써 가치 체계를 의문시하기도 했고,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처럼 묘사 대상이 되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은폐된 것을 고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무서운 그림’은 미학과 미술사, 그리고 사회의 지배적 질서에 일종의 안티테제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림들의 이면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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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된 ‘무서운 그림들’은 다양한 대상을 다루고, 다양한 맥락에 위치해 있다. 즉물적인 감상이든 알레고리와 상징이 겹겹이 쌓여 분석을 필요로 하든지 간에 이 예술 작품들은 관찰자로 하여금 다양한 정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림들의 이면에 쌓인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하다. 먼저 ‘삶과 죽음 사이’라는 첫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와 죽음의 이미지를 다루는 작품들은 실존주의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하면서 이미지에 더욱 몰입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 가장 처음으로 소개된 뵈클린의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질병이 창궐한 이후 전염병의 공포를 그린 작품이며, 서양 문화권에서 흔히 등장하는 해골의 형태를 하고 낫을 든 사신의 이미지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1장에 소개된 그림은 아니지만 귀스타브 모로의 <유령>은 세례 요한의 목을 든 살로메를 묘사한다. 성경에는 짧게 언급되지만 서구 문화권에서 여러 예술가들의 ‘팜므 파탈’로서 영감이 되어 온 요한의 목을 원했던 살로메의 모습은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기존의 성경적 해석에 반기를 든다. 성경에서는 헤로디아의 딸에 불과했던 살로메를 새롭게 해석하여 잔인한 집착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살로메의 존재를 (마치 레이디 멕베스처럼) 여성의 파괴적 주체성으로 해석하는 후대의 학자나 예술가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살로메를 묘사한 <유령>처럼 신화나 문학을 소재로 한 그림들도 눈에 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스핑크스를 소재로 한 그림인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와 귀스타브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같은 스핑크스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전자는 이집트 땅의 스핑크스 석상을 그림으로써 문명의 흥망성쇠를 표현했고, 후자는 오이디푸스 신화 속 스핑크스의 모습을 여성의 얼굴을 한 존재로 그리며 오이디푸스 이야기 속 한 장면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또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는 브테바엘의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등이 있고, 신화 속 존재 세이렌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을 유혹해서 죽도록 하는 인어나 독일 전설의 존재 켈피를 소재로 삼았던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나 <물의 요정>이 있다.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등장하는 오필리어를 소재로 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다. 진실을 깨닫고 미쳐버려 결국 익사한 오필리어를 소재로 한 그림인데, 아름다움과 죽음을 병치하여 기묘한 분위기를 이끈다. 이 아름다움 역시 생략과 압축을 통한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끈질긴 관찰을 통한 사실적인 추적의 결과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또한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여 엮어낸 그림도 등장한다.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들을 소재로했던 한스 홀바인의 작품들과 일리야 레핀의 <알렉세예브나 소피아 황녀>는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인 암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결말을 아는 후대의 입장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또한 홀로코스트 속 유대인이었던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이나 들라크루아의 <히오스섬의 학살>처럼 예술가들은 역사적 부조리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이 작품들에 얽힌 일화를 알아가다 보면 공포와 불안, 두려움, 비극은 인류의 역사를 이끈 동력이면서 동시에 그 역사의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그림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서서히 읽다 보면 공포와 으스스함, 기묘함이라는 정동이 인류의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왔고, 그 감정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가 닿는다. 모범적 삶, 정상적 삶의 이면을 인식하게 하고, 미와 추가 함의하는 도덕과 비-도덕이라는 상식이자 사회적으로 합의된 영역을 의심하고, 어떠한 인식 대상이 인식의 시야 아래 진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쾌와 불쾌라는 정동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 이것이 예술과 미학이 할 일 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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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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