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법소녀가 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만화]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
글 입력 2024.08.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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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문을 외우면 강해지는 존재들이 있다. 환상적인 변신의 순간, 보석 같이 반짝이는 요술봉과 코스튬은 각성을 시각화다. 크고 작은 불의에 맞서 평화와 꿈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그녀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새벽녘 같은 희망이 어둠을 천천히 몰아낸다. 그래서 만약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아마 마법소녀가 천직일 거라 생각해 왔다.

 

 

 

마법소녀 지망생의 메모


 

내 장래를 위해 알아본 마법소녀의 조건은 크게 3가지다.

 

1. 변신을 통해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될 것

2. 힘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할 것 

3. 조력자 역할의 캐릭터와 함께할 것

 

1번 조건의 베이스는 ‘마법’이겠으나, 영상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따라 ‘변신’의 측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이다. 몽환적인 배경에 나신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모습은 다소 세레머니적이면서도 여자아이의 판타지적 니즈를 충족한다. 동시에 남성의 관음증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며 양성의 수요를 골고루 끌어냈다.

 

사실 가장 포인트라 생각하는 조건은 2번이다. 내가 권력을 쥔다면 과연 이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 난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달랐다. 악에 맞서 세상을 구한다거나, 행복을 모두와 나누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변신한다. 그런 타자 지향성이 필자의 눈엔 일종의 성녀 모티브로 비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의 설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의 목숨을 걸고 타인, 그리고 인류를 위한 희생을 동반한다는 건 최고의 사랑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법소녀의 조력자란 흔히 작은 몸집에 날개를 달고 공중을 떠다니는 수호천사의 형상을 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세계와 현실을 이어주는 존재로 관리/감독을 수행하면서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이에 소녀는 선택받은 존재로서의 당위성을 부여받으면서도 아직은 미숙한 존재임을 상징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마법소녀 캐릭터는 비슷한 규칙들 위에서도 변주하며 고유한 이야기를 갖는다. 위의 조건들을 충족하면서도 서로 다른 케이스의 소녀들을 만나보자.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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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슈가룬> (2005)

 

 

두 세계를 오가는 비밀스러운 존재인 마녀 쇼콜라는 현실 세계에서 신비로운 마법으로 곳곳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아그랑 디스망, 슈가슈가룬 쇼코룬-”

 

‘달콤하고 달콤한 주문’이라는 한 마디만 외치면 된다. 그럼 상대의 사랑의 무게를 확인하고, 그마음의 결정체인 ‘하트’를 가져올 수 있다. 하트가 가진 사랑의 힘으로 돌아가는 마계는 언제나 보랏빛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는 아름다운 상태로 낮과 밤 구분이 없다. 발푸르기스의 밤에는 마계의 모든 종족이 모여 가면무도회를 펼치고,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서로의 하트를 교환하며 맹세해야 한다는 동화 같은 설정도 로맨틱하다.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쇼콜라는 친구 바닐라와 마계 차기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여왕의 조건은 인간계로 내려가 하트를 더 많이 모을 것.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마녀의 기본 소양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목표를 위해 두 초보 마녀는 이성의 호감은 사는 것은 물론, 동성 친구들과 즐거운 순간을 만들며 하트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물론 이 일은 조력자인 개구리 시종 듀크, 쥐 시종 블랑카가 함께 한다.

 

두 사람이 마법소녀가 된 계기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마계 출생에 마법사 부모님을 둔 선천적 순혈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마력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소녀가 대의가 아닌 자기 꿈을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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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천사>(2002)

 

 

12살의 루나는 선천적으로 병이 있어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조차 없다. 하지만 루나는 보육원에서 만났다 헤어진 첫사랑 에이치가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저승사자 타토와 멜로니는 그녀가 자신들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꺼낸다. 이에 루나는 마지막 남은 기간만이라도 가수가 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며 16살 풀문으로 변신하는 아슬아슬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대의를 위해 미지의 악의 무리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도도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불러서 소중한 사람을 찾기 위해 무대에 선다. 그러나 루나의 작은 소망은 그녀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도 희망을 전한다. 자기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모습과 사연이 담긴 노랫말은 진심을 전하기 충분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메시지가 저승사자 듀오, 그리고 대중들에게까지 넉넉히 전해졌다.

 

주인공이 직접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은 아니지만, 꺼져가는 목숨을 회수하려는 저승사자가 마법을 사용하여 되려 그녀의 변신을 돕는다는 구조가 굉장히 독특하다. 조력자 캐릭터인 저승사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마법적인 신비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사전적 정의인 ‘마법을 사용하는 여자아이’뿐만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고자 하는 눈부신 특별함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캐릭터까지 마법소녀의 범위는 넓혀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 마블 히어로가 아닌 마법소녀인가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 자본, 무력 등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먼치킨적 스토리 라인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먼저 마블 세계관에 빠지는 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난 내 의지로 영화관에서 마블 영화를 본 일이 손에 꼽는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내 삶에서 동떨어진 듯한 거리감’이다. 내가 캡틴 마블, 헐크가 되는 장면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뭉친 최정예 히어로 ‘팀 어벤져스’가 벌이는 액션신은 나 아니어도 봐줄 사람이 많다.

 

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박서련 작가님은 참여 가능한 환상에 대해 말했다. 일반적인 마법소녀물의 서사는 ‘평범한 소녀가 마법이라는 힘을 갖고 타자를 위한 일을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내가 따라 하고 싶은 존재 혹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리 빼어난 인물일지라도 빠져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메타포를 심어주는 건 여성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어리고 미성숙한 여성 캐릭터가 주변인물이 아닌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또래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 준다. 근 몇 년간 여성 서사 작품들의 흥행, 여덕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여자 아이돌들의 주체적 마법소녀 컨셉. 이미 오래전부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흐름은 유구했다. 내일의 내가 될 수도 있는 캐릭터의 일상성 부조리함을 환상적 이미지로 타파하는 모순적 서사는 유쾌하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소녀는 계속 변화한다. 시대적 요구에 응하며 조금씩 수정되어 수동적인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과거의 향수와 미래의 요구를 두루 살피는 트렌디한 장르가 되었다. 이제는 능동적인 나다움을 추구하는 내가 마법소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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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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